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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Jun 13. 2021

까만 밤, 깊은 고독, 심야 라디오의 불빛

학창 시절, 시험기간을 좋아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시험기간의 ‘루틴’을 좋아했다고 해야 하나.


게으른 데다 악착같이 뭘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중학생이 되면서 시작된 경쟁과 스트레스로 시험기간이면 거의 끙끙 앓았다.

더 기가 막혔던 건 그렇게 밤새 울면서 영어단어를 외워봤자 결과는 고작 현상유지를 할 뿐이라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다.

이해력은 예나 지금이나 유인원 수준이고 특별히 암기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내 동생은 교과서를 통째로 줄줄 외웠다)

집중력은 만화책이나 주말의 명화를 볼 때나 발휘하던 그런 아이였지만 솔직히 요령이 좋아, 운이 좋아, 어쩌다 보니 반에서 늘 5등 이내에 들었고 성적이 떨어지면 담임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워(상위권이 잘하지 않으면 반 평균을 깎아먹는다는 이유로) 매번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가슴에 돌덩이를 얹는 듯한 기분이 들어 우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지켜낸 우등생 딱지는 눈 깜짝할 새 치고 올라온 경쟁자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같잖은 우월감은 이내 패배감과 열등감으로 바뀌어 열다섯이 감당하기 힘든 멍을 온몸에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중학교 3학년 봄부터 반쯤 놓아버린 공부는 어찌 됐든 고등학교에 진학할 정도면 된다고 스스로 선을 그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재미난 것을 찾아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험기간에 실행하기 안성맞춤이었다.


하루에 두세 과목씩 시험을 치더라도 워낙 과목이 많아 꼬박 일주일 정도는 소요되던 시절이었다.

보통 오전이면 일정이 끝나기에 점심 무렵이면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일단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자는 내 옆에서는 동생이 책상에 앉아 중얼중얼 거리며 열심히 교과서를 외우고 또 외웠다.


나는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느지막이 일어나 TV를 보며 저녁을 먹었다.

(볼만한 채널은 세 개뿐이었다. SBS 서울방송, KBS 한국방송 2, MBC 문화방송)

소화를 시킨다는 핑계로 엎드려 만화책 같은 걸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같은 학교에 다니는 두 학년 아래의 동생이 다음날 시험과목의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뒤 잠자리에 들 즈음에야 겨우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켰다.

그리곤 이젠 내 차지가 된 아버지의 낡은 소니 워크맨(가오갤 소품팀이 탐낼 듯한)과 이어폰을 꺼냈다.

교과서를 폈지만 나는 라디오를 들으며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빗살무늬토기가 사용된 연대를 끄적이던 연습장에는 노래 가사가 그라데이션 되고 있었다.


그리곤 새벽 한 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MBC 라디오의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평소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외에는 들을 수 없었던 최애 방송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시험기간의 특권이었다.


독특한 말투의 정성일 평론가는 <이레이저 헤드>, <델리카트슨 사람들>, <브라질> 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영화들을 소개했고 한국판 ‘까이에 뒤 시네마’인 ‘키노’(기사들이 대부분 영화학 소논문과 맞먹는 현학적 레벨을 자랑하던)의 초대 편집장답게 틈만 나면 누벨바그와 시네마테크, 고다르, 큐브릭, 히치콕 같은 감독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인터넷을 전화모뎀으로 쓰던 시절이라 그런 정보는 값비싼 영화 잡지를 사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멀티플렉스 따위도 없고 주말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용돈으로 받은 2~3천 원과 맞바꿔 VHS 테이프 한 개를 빌려오던 때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을 신기해하며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물론 늘 좋은 순간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모두 잠들어있는 깊은 밤, 교과서의 활자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꼭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독감에 불현듯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땐 음악을 듣는 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사람의 음성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은커녕 삐삐도 없었지만 있다 한들 그 늦은 시간 친구와 통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라디오였다.


디제이의 차분한 음성을 들으면 진정이 되었다.

달도 별도 숨어버려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새카만 밤에 항해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등대의 긴 불빛을 발견한 뱃사람이 된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심야의 라디오는 이렇듯 여러모로 구원 같은 존재였다.


얼마 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아침 출근길에 고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을 찾아보았다.

그때가 2004년 여름이었는데...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간다.

서른일곱의 나이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그녀의 어린 아들이 어느덧 20대가 되었고 어느새 나는 그녀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지금도 종종 팟캐스트에 올라와있는 그녀의 방송을 듣는다.

(그녀의 아버지가 평소 모든 방송을 테이프에 녹음해 두었는데 그녀의 사후, 이를 추모사업회에 전달해 음원으로 변환했다고 한다)

고정 게스트였던 박찬욱 감독이 차분한 어조로 들려주는 할리우드 영화 <스피드>의 제작 비하인드며 <낮은 목소리>로 주목을 받은 신예 변영주 감독의 풋풋한 음성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듣지 않는다.

이제는 새벽 1시는 초저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지만(지금 시각은 새벽 4시 18분...) 이렇게 마음이 말랑해졌을 때는 별 것 아닌 자극에도 상처가 남는 법이다.

대신 시그널이었던 한스 짐머의 곡을 들으며 이 밤을 달래 본다.

마림바의 영롱한 멜로디만으로도 울컥할 것 같지만 이제 나는 어른이니까-


True Romance : Amid The Chaos Of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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