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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Sep 28. 2023

no regret.  no, I regret.

Good bye, spring

얼마 전 열네 살 먹은 우리 집 찐막내, 봄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강골은 아니었어도 함께 태어난 마리의 형제들 중 가장 튼튼한 아이였는데 어느 날 아침, 저혈당과 패혈증 쇼크로 병원에 간 지 한나절도 못되어 영영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아침 5시였다.

그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가 좋은 소식을 가져올 리 만무했다.

약간의 짜증과 졸음이 덕지덕지 묻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였다.     


봄이가 갑자기 정신을 못 차리고 몸이 뻣뻣한 거 같아.

뭐 갑자기?     


서울이라면 당장 24시간 응급병원에 데려갔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다니는 단골동물병원에는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 인근에는 24시간 병원 자체가 없다.

결국 병원이 여는 9시에 아이를 데려가서 예약은 안 했지만 응급으로 진료를 받아보시라 말씀드렸다.


뒤숭숭한 기분으로 출근을 해서 초조하게 전화를 기다렸다.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셨지만 평소 진찰을 받던 내과 원장님이 어련히 조치를 취하셨겠지 싶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중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봄이 상태가 좀 심각한 거 같아.

선생님이 안락사 얘기까지 하시던데.

 안락사?     


당황한 나는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는 2시에 맞춰 안내데스크로 전화를 걸었다.

진료 중이셔서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는 말에 팀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려 급히 오후 반반차를 내고는 부랴부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3시쯤 되어서 겨우 통화가 되었다.

오전에 이미 쇼크 상태로 내원을 했고 수액을 맞고 약간 정신을 차리는가 싶었지만 다시 상태가 나빠져서 호흡이 안 좋고 혼수상태에 돌입했으니 급히 와보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서둘러 택시를 부르고 거의 1시간이나 걸리는 병원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아버지에게 당장 병원으로 가시라는 전화를 넣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반쯤 가고 있었을까.

휴대폰에 병원 전화번호가 찍혔다.

좋지 않은 예감에 크게 숨을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조금 전 심정지가 왔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반응이 없습니다. 오셔서 보시면 눈을 감기도록 하겠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안구 안쪽이 너무나 뜨거워서 당장이라도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자주 생리를 하던 것이 자궁 쪽 질환에 의한 하혈이었고 말랐던 것도 당뇨 때문이었다.

순하디 순한 아이였는데 광견병 주사를 놓던 선생님께 짜증을 내고 입질을 했던 것도 아파서, 예민해서 그랬던 거였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더 나이가 많고, 더 상태가 좋지 않은 언니 둘의 병원비와 약값을 대려니 외관상으로 크게 나빠보이지 않던 막내는 늘 뒷전이었다.     


15년 넘게 이 병원을 다녔지만 진료실 안으로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안내에 따라간 진료실 한편, 차가운 스테인리스 진찰대에 누워있는 봄이를 마주하자 다시 또 눈물이 흘렀다.

얼굴을 쓸어주는데 평소 같으면 귀를 뒤로 넘기고 헥헥 대며 나를 바라볼 것만 같은데, 그저 차갑고 뻣뻣한 돌덩이를 만지는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있을 수는 없어 겨우 진정을 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서둘러 빠져나왔다.

아이를 데려가시도록 상자에 넣어드린다고 했다.

다시 집에 가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가는 내내 나는 또 뒷좌석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기사님이 흘긋흘긋 룸미러로 뒤를 돌아보셨지만 무슨 일이냐고 차마 묻지는 못했다.     


그렇게 봄이를 보냈다.


인근의 반려동물 장례식장에서 제공해 준 파란색 종이박스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다시 또 눈물이 터졌다.

아, 내일 눈을 뜨고 출근을 할 수 있으려나...

이 와중에 출근 걱정을 하다니, 한심하고 짠했다.


퇴근 전, 갑자기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사무실의 모두가 놀라 달려왔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다들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비슷한 경험이 있던 동료들은 덩달아 눈가가 촉촉해졌다.


멀쩡한 얼굴로 나가서 걱정 말라고 이제 괜찮다고 말해주어야만 했다.     

괜찮다.라고 말하면 아직 괜찮지 않은 것이고

이제 좀 괜찮아졌어.라고 말하면 정말로 괜찮아진 것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누군지 참 똑똑하네.

괜찮냐는 말에 괜찮다고 했지만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그래도 별 수 없었다.


장례를 부모님과 부모님의 지인분들께 맡기고 나는 출근을 했다.

다행히 곧 주말이었다.     

어제 바로 쌍수를 한 여자 같은 눈으로 사무실에 갔다.

제일 가까운 동료가 아주 달콤한 커피와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래, 금세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인가 코를 풀었지만 금세 괜찮아질 것이다.

다만... 이 상처가 충분히 아물고 난 후에 다음 이별을 준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하얀 발목양말을 신고 항상 귀엽게 자던 우리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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