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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Aug 14. 2022

14세의 에피파니(Epiphany)

1.

1994년, 유행가 제목에도 등장하는 그런 해였다.

2학기 가을이었고 교내는 격년에 한번 열리는 동아리 축제 준비로 들썩거렸다.

여고 1학년이었던 나는 지루하기만 하던 일상의 깜짝 선물 같은 이벤트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올라있었다.

그리고 아침부터 기분 나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스산한 날씨의 그날, 전 국민이 아는 그 사고가 터졌다.

어제까지 함께 교실에 앉아있던 친구가 아무 준비도 없이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모두 충격에 빠졌다.

다른 동아리 소속이었지만 나처럼 방과 후에 남아 축제 준비를 하던 친구였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너희는 앞날이 창창하고, 그렇기에 꿈을 갖고 살아야 하고... 블라블라블라~

어른들과 책, 미디어ㅡ 어디서나 그런 말을 들었지만 우리는 그저 아침잠 5분, 10분이 더 소중한 열일곱이었다.

만으로 고작 열다섯, 열여섯일 뿐인 어른도 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청춘이었다.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다들 너무나도 어렸는데 그만 모두의 영혼에 각인되어 버렸다.

굳이 귀납식 추론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나 역시 언젠가는 한 줌 흙으로 변하리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는 나이었다.

다만 그것이 당장 오늘 아침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건 그냥... 출산 예정일을 앞둔 아기의 이름을 짓느라 국어사전과 한자옥편을 뒤져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어느 휴일의 오후보다도 훨씬 더 먼 미래의 일이었을 터였다.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을 거였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겪어선 안 되는 거였다.


2.

2007년 봄, 엄마가 갈 곳 없는 개라며 웬 강아지 하나를 들였다.

한 손으로 안기에는 너무 크지만 아직 덜 자란 게 분명한 조그만 강아지는 막 이갈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태어나 한 번도 씻어본 적이 없을 것이 분명한 회색털과 어지간해서는 지워지지 않을 적갈색의 눈물자국이 또렷한, 어쩐지 인생 2회 차 같은 고단한 눈빛을 한 강아지였다.

경계를 풀고 친해지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구석에 들어가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난생처음 맛보는 강아지용 개껌을 앞발로 야무지게 쥐고 조심스레 우물거리는 모습에서 아... 이거 쉽지 않겠다,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한 번의 출산, 두 번의 개복수술을 받고 신장이 좋지 않아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이제는 갑상선 약과 신경성 진통제를 하루 두 번씩 복용하느라 약값만으로 매달 20여만 원을 꼬박꼬박 지출하게 만드는 노견이 되었다.

야생 산양 못지않게 유유자적 절벽을 타고 톰슨가젤 마냥 날렵하게 뒷산을 뛰어오르던 하얀 여우 같은 강아지는 이제 계단 한 칸도 제대로 오르지 못한다.

최근 스무 살까지도 너끈히 버티는 소형견과는 달리 진도 믹스 중형견인 우리 개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생각하곤 한다.

내년 봄에도 저 구수한 발 냄새를 킁킁 맡고 부쩍 시끄러워진 콧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지면 가슴 한쪽이 찌릿하게 아파온다.

실외배변견이라 폭설, 폭우, 폭염, 태풍, 황사, 미세먼지, 각종 전염병... 따위 무시한 채 매일 두세 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다녀야 하는 산책 노예 짓을 그만두게 되면 그 시간만큼 여유로워질까 싶다가도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의 글을 보면 반려동물을 보낸 뒤 삶의 의미를 통째로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때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매사 진지한 적 없이 살아온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졌다.

나는 삶을 영위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지만 어떻게?

실제로 무의미하지 않지만 무의미하다고 느낄 때의 절망감을 아는가?

어떻게 아는지는 그다지 설명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나는 무의미한 삶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고민해봤지만 도무지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3.

1992년, 중간고사 영어시험 전날.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식구들은 모두 잠에 들었기 때문에 나는 소리 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미처 다 외우지 못한 영어단어와 문법 따위가 거대한 돌덩이처럼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밤을 새우면 목표량을 달성하고 여느 때처럼 노력한 만큼의 만족스러운 석차가 적힌 성적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지금의 고통을, 앞으로의 고통을 감내할 것인지 아니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 괴로운 짓을 그만두고 적당히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다.

그때는 그 선택이 내 인생에 그토록 큰 영향력을 끼칠지 알 수 없었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에 내린 결론은 그래, 그만두자-였다.

이후로 나는 무슨 일이든 적당히 괴롭지 않을 정도로만 하는 것을 기조로 살아가게 된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4.

20대에 그야말로 '완전히 미쳐'있던 영화가 있었다.

1994년에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그 유명한 #중경삼림

개봉 당시에는 보지 못했지만 뒤늦게 빠져들어 캘리포니아 드리밍과 금성무와 왕정문, 그리고 그들을 하루 종일 볼 수 있었던 대만의 인기 음악방송인 채널 V에 열광했었다.

양조위에게 먼저 다가간 왕정문은 매일매일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옛 여자 친구의 흔적을 치우고 자신이 고른 물건들로 집안을 차곡차곡 채워둔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결국 그와 맞닥뜨리지만 기지를 발휘해 도망친다.

그러나 일하는 샌드위치 가게로 찾아온 그가 화를 내는 대신 데이트 신청을 한다.

약속 장소에 미리 가 있던 그녀는 비 내리는 창밖을 보다가 문득 캘리포니아 날씨는 어떨까 궁금해한다.

양조위는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가게로 찾아간다.

가게 사장인 삼촌은 그녀가 남긴 편지를 건네준다.

편지에는 1년 후 날짜가 찍힌 탑승권이 그려져 있다.

1년 후 승무원이 되어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그녀. 양조위는 경찰을 그만두고 가게를 인수해 내부 정리 중이라 어수선하다.

그리고 그 어수선함을 가중시키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다.

비에 젖어 행선지를 알아볼 수 없게 된 티켓을 들이밀자 새로 한 장 써주겠다며 종이와 펜을 꺼낸다.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어보는 그녀의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아니 저게 도대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일주일도, 한 달도 아니고 무려 일 년을?

역시나 제정신이 아닌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당하기 짝이 없던 그 행동이 이제는 얼마나 현명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으며 감탄한다.

그녀는 양조위가 전 여자 친구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감정이 갑자기 무 자르듯 쑥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도.

어느 날 불쑥 물난리가 난 집안에서 구석에 꽁꽁 숨겨두었지만 둥둥 떠서 나타나던 차마 버리지 못한 슬리퍼처럼 언제고 다시 되살아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도, 그녀 자신에게도 시간을 주기로 했다.

정말 영리한 사람이다.


나도 나에게 시간을 주면 어떨까 생각했다.

추모를 위해, 앞으로의 내 삶을 어떤 의미로 채울 것인지 고민을 할 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일 년이면 되겠지 싶다.

좋은 직장에 다닌다면 1년 정도 휴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뭐 그렇지 않아도 좋다.

일이야 어떻게든 구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다시 살기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에 돌아오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은 그때가 조금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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