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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레이드 걸 Mar 03. 2024

새집에서 한 달 살기

그야말로 전쟁 같은 한 달이었다.     

연말연초의 시기 탓에 회사일이 바쁘기도 했거니와 냉장고, 에어컨, 책장, 전자레인지, 밥솥- 5종세트 외 모든 가구와 가전을 새로 장만해야 했기에 도통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일단 들어가서 하나하나 사자.     


이 안일하고 게으른 생각 때문에 나는 매일 퇴근하고 무언가를 사고 택배를 뜯고 십 수개의 종이박스 안에서 갈아입을 옷을 발굴해야 했다.     

거실이고 방이고 커튼이 없는 터라 샤워를 마치면 좁은 욕실에서 낑낑대며 옷을 갈아입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우선순위를 정했다.     

세탁기와 가스레인지, 매트리스와 깔판, 렌지대와 커튼, 시스템 행거와 철제선반, 좌식의자와 입식의자... 속속들이 도착하며 난장판의 집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통근시간은 오롯이 투데이 집과 쿠X 검색에 할애되었다.

그 결과, 오늘 아침 오늘의 하우스에서 VIP 등급이 되신 것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수신되었다.

와우...     


이사한 지 일주일 만에 전자레인지가 고장 났다.

재작년 겨울의 제조일자가 찍혀있는 유명 브랜드 제품이었다.

지인들에게 말하니 모두가 입을 모아 전자레인지가 고장난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써왔던 골드스타 전자레인지가 잔고장 한번 없이 이사 때마다 따라다닌 터라 지겨워서 버린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사이 냉동실에는 데워먹지 못한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왠지 인터넷으로 배송시키는 것이 꺼려져서(옛날사람) 주말에 동네 하이마트로 달려갔다. 

예산 문제로 저렴한 모델을 샀는데 데우는 기능이 약한 탓인가, 디자인이 예쁘지 않아 그런가 다이얼까지 달린 시커먼 새 전자레인지를 보고 있노라니 왠지 시무룩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위대한 퍼시 스펜서*님.

*전자레인지를 발명한 미국의 과학자


이미 예산의 두 배를 초과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돈을 단시간 내에 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일같이 무언가를 결제하고 있었다. (물가에 대한 감각 상실도 한몫했다)

지출을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저축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허투루 사는 것은 없는 거 같은데 굳이? 싶은 것들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 구호의 손길은 흡사 전쟁터에 뿌려지는 긴급 구호물자 그 자체였다.

우선 부모님께서 이사선물로 가스레인지와 이불, 베개를 사주셨다.

지인들에게서 테이블, 식기건조대, 센서 쓰레기통, 레인지 가드, 러그, 디퓨저 등등을 집들이 선물로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Finally...

최대 난제였던 드레스룸 정리가 끝나고 나면 아마 안정기에 돌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만 하고)

연중 가장 바쁘다는 2월에 거금을 들여 포장이사를 감행했지만 한 달 내내 집정리만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며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부디 3월에는 쿠X앱과 멀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나의 소중한 새 보금자리가 To do list로 도배된 짐덩어리가 아닌 스위트홈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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