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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14. 2023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의 영국은 7월의 날씨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싸늘하다. 사람들은 경량패딩에 두꺼운 니트를 입기도 하고, 부츠를 신은 사람까지도 있었다. 오늘은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넘어가야 하는 날이라, 아침 산책을 생략하고 짐을 정리했다. 아이 둘과 함께라 만약을 대비해 이것저것을 넣다 보니, 출발할 때부터 캐리어 두 개를 꽉 채워온 우리라, 테트리스를 잘해 넣어야 했다.


영국에서 3일의 여정을 머물렀던 lse의 기숙사는 물가 비싼 영국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비록 에어컨도 없고(물론 영국에서 덥지는 않았다) 거울도 없고, 가장 치명적인 건 냉장고가 없었지만, 이 모든 단점을 상쇄할 훌륭한 조식이 있었다. 매일 아침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충분히 먹어 런던 여행을 든든히 출발하게 해 주었다. 별로 인심이랄 것을 느껴보지 못한 런던에서 기숙사 조식은 최고의 런던 인심이었다.

체크아웃하기 전 찍은 룸 사진, 진짜 기숙사였다! 그래도 책상이 있어 좋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기숙사 학식! ㅎ



나라를 옮기는 날은, 보통 체크 아웃과 체크인을 하고 이동 수단을 타고 이동하는 날이라 큰 일정을 잡아두지 않았는데, 영국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은 곳 한 곳을 못 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슬쩍 말해봤다. 30분 정도 거리에 세계에서 가장 예쁜 서점이 있는데,, 에코백도 팔고,,, 둘째가 엄마 축구 책도 있을까? 그럼 그럼 (물론 영어로 되어 있겠지만,,,) 첫째는 영국에서 이렇다 할 쇼핑을 못했기에 에코백이라는 말에 흔들리는 눈빛을 보냈다. 나와 남편은 덥석! 함께 ‘Daunt books’로 함께 가자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쌀쌀했지만, 어느덧 익숙해진 동네에 눈빛으로 작별인사를 보내고, 지하철을 타고 ‘Daunt books’에 갔다. 100년은 된 서점이라는데, 가정집 같은 느낌에 고즈넉함과 편안함이 있었다. 지하부터 이층까지 서가에 책들이 꽂혀 있고, 엽서나 카드등의 굿즈들과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곳은 관광객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즐겨 이용하는 곳 같았고, 이렇게 많은 책이 구비된 서점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게 질투 날 만큼 부러웠다. 책은 모두 영어책이었기 때문에, 나는 주로 어린이 청소년 서가에 머물며, 그림책과 청소년 소설 등을 둘러보고 있었고 큰 애는 굿즈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굿즈만 보는 줄 알았던 첫째가 나에게 아시아 국가들 섹션이 따로 있는데 한국 섹션이 없다고, 그러나 한국 책들은 있는데, 중국 섹션 밑에 있다며 투덜댄다. 함께 확인해 보자며 가본 서가에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보고 반가워하자 함께 분노해 줄 줄 알았던 엄마가 책 구경에 여념이 없자 김이 샜는지 다시 굿즈 구경에 나선다. 그러던 중 어린이 코너를 탐색하던 둘째가 나에게 슬쩍 책을 하나 주는데, 용케도 football 책을 찾아냈다. 둘째는, 여행의 중간중간 나에게 이렇게 웃음을 준다. 니가 고르는 모든 football책을 다 사주겠다고 했으나, 둘째는 들고 가기 힘들 것 같다는 말로 그중에 원석을 고르는 힘겨운 결정을 하더랬다.(그리고 결국 골라낸 책은 축구 선수 메시책이다) 나중에, 아이들과 런던에서 좋았던 순간들을 꼽아봤는데 의외로 아이들이 이 서점을 많이 말해줬다. 서점에서의 책 산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자주 하던 일이라 아이들에게 특별할 것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이들은 그때 낯선 도시에서 우리가 자주 하던 평범한 일상을 만나 반가웠던 것은 아닌지.

서가에 빼곡한 책들, 다른 서점에 비해 여행책이 많았지만, 어린이 책, 청소년 책, 영국의 베스트 셀러 등 섹션이 다양했다. 그리고 서가 가운데 꽃이라니,,,,,



그렇게 책과 에코백을 사들고 버로우에 들러 피시앤칩스를 먹고 유로스타를 타러 갔다. 아름다운 세인트 판크로스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이제 언제 다시 올지 기약이 없는 채로 런던과 작별을 했다. 떠나는 런던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날씨도 쌀쌀했는데 비까지 내리니 옷깃을 여밀 수밖에 없었고, 아까 체크아웃할 때까지만 해도 런던에 미련을 보이던 아이들은 내리는 빗방울에 점퍼의 지퍼를 잔뜩 올리고 쏜살같이 역사 안으로 들어가 다음 여정을 기대하는 듯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내가 기대했던 파리가 기다려진다. 파리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릴까. 런던보다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도 들었는데, 그렇게 조심해야 하는 곳에 왜 전 세계의 사람들은 몰려드는 것인가. 우리는 어떤 파리를 만나게 될까 설레고 두렵기도 긴장되기도 한다. 기차를 타자 아이들과 남편이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묵주를 꺼내 기도를 한다. 다들 긴장하고 있군! 그래도 같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특히 이번 여행은 둘째가 항상 내 손을 꼭 잡고 이동해 줘서, 그것만으로도 힘이 잔뜩 나는 엄마인 내가 모두를 다독인다.

아침 산책에서 만난 타워브릿지 다리 멍하고 있던 시간마저 좋았다. 항상 엄마 손 잡고 다니던 막내. 너는 귀여우려고 태어난 존재임이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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