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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22. 2023

기다렸던 파리 근교 나들이

한국인만 할 수 있는 지베르니, 옹플뢰르, 몽생미셸 도장 깨기 투어

파리 여행을 계획할 때, 남편이 슬쩍 '몽생미셸도 하루 갈까?'라고 말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몽생미셸과 파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몰랐기에, '그래, 가고 싶으면 가자!'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여행기나 여행지 정보를 찾아보니, 몽생미셸은 파리 사람들도 길게, 짧아도 2박 3일은 떠나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파리에서 약 4-5시간을 이동해야 갈 수 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 부산 정도 거리쯔음 되는 것 같은데, 남편이 가고 싶다고 해 찾아본 몽생미셸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워 무리해서 한 번 가봐?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또 파리 일 년 살기를 했던 친한 선생님의 아이가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여행지로 몽생미셸을 꼽았다기에 아무래도 무리해서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개별적으로 가려면 아무래도 렌트 외엔 방법이 없어 보였고, 여행사에서 하는 투어를 신청하면 당일치기로도 가능했다. (몽생미셸을 보고 가겠다는 의지의 한국인들을 위한 투어다.) 새벽에 나가 차 타고 지베르니, 옹플뢰르를 들렀다가 몽생미셸 가서 2-3시간 돌아보고 다시 4-5시간 차 타고 돌아오는 난이도 상의 투어다. 글로 쓰는데도 숨찬 기분이다. 이 코스는 그야말로 짧은 기간 여행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에,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코스다. 그러나 나도 한국인이기에, 가능할 것도 같았는데 문제는 애들이었다. 그래서 사진을 보여주고 라푼젤 고성 그림도 보여주며, 지베르니에서 조금 더 한두 시간? 가면 있는 성인데, 갈 수 있겠냐며 의향을 물었더니 흔쾌히 간다고 한다. 유럽 여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애들도 현실감각을 살짝 내려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예약한 투어가 바로 오늘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소규모 인원만으로 구성된, 그래서 벤으로 이동하는 투어를 예약했다. 예약된 벤으로 가니 사춘기 아들 한 명을 둔 부부와 우리 가족 이렇게 7명이 오늘 동행자였다. 무심한 남자 3명의 아들들을 태우고 엄마들끼리는 서로 위로의 눈빛을 보내며 새벽부터 지베르니로 달려갔다. 가이드 선생님이 노르망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해 주시는데, 너무 이른 새벽에 승차감도 좋은 차에 앉아 있었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꾸벅이게 되었다. 선생님의 설명은 남편이 제일 열심히 들었으니, 오빠 나~중에 설명해 줘.


그렇게 달려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이곳은 모네의 그림을 좋아하던 둘째가 예전부터 가보고 싶다고 했던 곳이었는데 모네의 정원은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코스라 문 열자마자 들어가야 한다는 가이드 선생님의 말을 듣고 빨리라면 자신 있는 한국인들답게 문 열기 전부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모네가 한평생 자신의 가장 큰 작품은 정원이라고 했고 우리가 가는 시기는 정원의 야생화도 연못의 꽃도 예쁠 시기라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형형 색색의 꽃들이 불규칙하게, 그러나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는 정원은 자연 그대로이면서도, 한껏 꾸며낸 느낌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정원의 구역구역마다 꽃의 구성이 다르고 색도 달랐다, 또 주황색 꽃이라도 종류가 다양해 정원을 구경하는 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이런 곳까지 소매치기가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아 둘째에게 내 폰을 넘겨주어 실컷 사진 찍게 해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꽃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놨다. 색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 다르던, 그야말로 다채로운 꽃들의 조화는 아이 눈에도 아름다워 보였나 보다. 핸드폰에 꽃사진이 많으면 나이가 든 것이라고 했는데, 누가 봐도 내 핸드폰은 나이가 많은 이의 폰이 되었지만 아름다운 것을 보고 함께 아름다움을 느꼈으니 충분했다.

막내가 찍어놓은 꽃사진으로 가득찬 내 사진첩


입장권마저도 예쁨


점심을 먹으러 들린 곳은 옹플뢰르라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날씨가 어찌나 좋았는지 덥지도 춥지도 않고 햇살도 따사로워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다 달력화보였다. 가이드 선생님도 이런 날은 흔치 않으니 즐기라고 하셨다. 투어 중이었기에 점심을 위한 자유시간은 딱 한 시간이었는데, 식당을 둘러보니 들어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사실 파리에 와서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약간 느끼하기도 했고, 또 어디에서나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들의 연기가 식사를 방해했기에 점심이 고민이었다. 가이드 선생님이 맛있다던 식당은 이상하게도 사람이 별로 없기에 트립어드바이저의 선택을 받은 식당에 들어가, 갈레트라는 음식을 시켰다. 여기서 많이 먹는 음식이라는데, 역시나 큰애는 억지로 꾸역꾸역 허기만 해결하는 듯했고 콜라를 가장 맛있게 먹었다. 둘째는 ‘음 맛있어 엄마’ 라며 잘 먹어주어 기특했는데 사실 돌아와서 쓴 일기를 살짝 보니, 갈레트가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고 쓴 걸 보아 가족들의 분위기를 위한 노력이었구나 싶어 미안하기도 뭉클하기도 했다.

귀염둥이, 스냅 사진 이후 사진 작가님이 알려주셨다며. 사진 잘 나오는 포즈를 취하고 찍어달라도 한다 ㅎㅎ 귀여우려고 태어난 막내



두 지역을 둘러보고도 두 시간가량을 더 달려 몽생미셸을 도착했다. 몽생미셸에서는 프랑스 현지 가이드를 만나 올라가야 한다기에 입구를 향해 열심히 올라가던 중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경호원들과 사람들의 웅성거림. 누구지? 뭐지?라고 하는 중에, 프랑스 영부인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흰색 정장에 운동화 차림이던 영부인은 여기저기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보냈는데, 나는 정말 딱 바로 앞에서 그녀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영부인이 지나가고 나서 애들에게 엄마 인사한 거 봤냐고 호들갑을 떨며 애들을 봤는데, 영문도 모른 채 끄덕이며 둘째가 근데 누구냐고 묻는다. 뉴스를 잘 보지 않는 녀석이라 누군지 몰랐을 텐데, 유명인을 봤다는 놀람과 기쁨에 아이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구나 싶어 그제야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몽생미셸 수도원은 들어가기 전에 본 그 전체의 모습도, 올라가서 내려다본 풍경도,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본 구석구석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아이들도 많은 계단과 오르막 길에도 투덜대지 않는 것을 보니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은 힘든 마음도 움직이는 힘을 지닌 것인가 보다.

정말 가까이에서 만난 프랑스 영부인, 신기해라.


돌아오는 길은 당연히 모두 꾸벅이며 잤다. 4-5시간가량을 달려 다시 파리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가이드 선생님이 우리를 드롭한 장소는 트로카데로 공원이었는데, 11시면 화이트 에펠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시나 사람들의 인파가 엄청나다. 다들 11시가 되길 기다리며 에펠탑에 시선을 고정하였는데, 그 순간, 갑자기 에펠탑 전체가 깜빡깜빡 거리며 점등이 시작되었다. 눈이 부셨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장소와 순간에 우리 가족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오늘도 꿈만 같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다들 씻고 잘 준비를 마쳐 내가 애들에게 오늘 힘들었으니 얼른 자자고 잠자리를 정리해 주는데 둘째가

“엄마 그런데 오늘 우리 평소보다 적게 걸은 거 알아? 선생님 차 타고 다녀서 훨씬 적게 걸었어.”

매일 발걸음 수를 세는 둘째가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줘 모두 웃고 말았다. 그 말을 들으니 오늘 그렇게 빡센 일정도 아니었던 것 같다. 역시 우리는 한국인이었다.    


@대문사진은 멀리서 보았던 몽생미셸의 모습.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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