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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20. 2023

파리에서 스냅사진 찍기

사진 찍기 싫어하는 아들과 가족사진 남기기

아이가 자라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사춘기가 오는 것은 당연한 섭리이다. 나는 일터에서 많은 사춘기의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부모의 고민을 듣는 일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 아이가 어른이 되려고 그러는 거예요. 기다려주세요. 잘 크고 있다는 증거예요. 어른되어 사춘기 오는 사람도 많은데 그럼 얼마나 힘들다고요.”

라며 다독이며 위안을 보냈었다.


그러나 나의 일이 되면 그게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인간은 경험하지 않으면 결국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불안전한 존재임을 절감하며, 그동안 내가 다른 이들에게 진심으로 보냈던 위안과 격려는 때때로 나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해지게 하는 것이 아이의 사춘기인 것 같다. 물론 우리 큰 애는 본격적인 사춘기라기에는 아직 크게 반항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였던 시절의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은 이제 보기 힘들고 가끔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요구에는 차가워진 눈빛을 보내 당혹스럽기도 하다. 몇 번 차가운 눈빛을 경험하고 나니, 이제는 사소한 잔소리도 조심스럽고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때에도 두 번 세 번 생각한다는 것을 아이는 알까.


 아이의 이러한 변화는 물론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는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가끔은 어린아이였던 큰애가 그립기도 하다.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어렸을 때 찍어두었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며 이 때는 이렇게 웃었구나, 이렇게 노래했구나,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이리도 쉽게 했구나 하며 혼자 추억에 젖는다. 아이의 변화는 사진으로도 나타나서 언젠가부터는 사진 속의 아이는 로봇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저 가만히 서있고 표정도 당연히 무표정이라, 사진 찍기도 흥이 안나 요즘의 사진첩에 큰 애의 사진은 거의 없었다.


 유럽 여행을 준비하며 남편과 나는 다가오는 기념일에 유럽 여행에서 필요한 것을 선물로 주기로 했었다. 결혼기념일에는 가족 모두의 운동화를 맞춰 구입했고, 남편의 생일에는 등산 의류 등을 선물했다. 나의 생일에 남편이 뭐가 필요하냐고 묻기에, 남편에게 파리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 비용을 결제해 달라고 했고, 그것은 스냅사진 촬영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여행을 가면 남편은 주로 사진을 찍고 나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바빠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 아이들 사진뿐이거나, 엄마나 아빠만 사진에 들어가 있어 가족사진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가까운 해외로 여행 갈 때나 제주 여행 때 스냅사진을 신청해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그제야 비로소 가족사진다운 여행 사진이 생기게 되어 여행 준비 중 스냅사진 예약은 우리 가족에게 하나의 필수 코스가 되었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큰애가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해 그마저도 사라진 여행 준비였다. 그런데 파리니까, 아이도 조금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을까? 라며 기대했고 남편도 흔쾌히 사진을 예약하라며 선물로 예약을 진행해 주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일부러 아침에 일찍 깨우지도 않고 아침 산책도 하지 않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게 했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해가 화창해 사진 찍기에 너무 좋은 날씨였다. 아이들과 사진 촬영 기사와 약속한 장소로 나가면서, 내내 설렘을 감추지 않았더니 아이들도 크게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다. 사진 촬영은 에펠탑 근처였는데, 에펠탑 자체가 너무나 좋은 배경이자 소품이 되어주어 더욱 기대가 되었다. 남자 사진 기사분은 유쾌한 분이셔서 농담도 잘하시고 아이들 눈높이에서 재미있게 진행해 주셔서, 기대하지 않았던 큰애마저 신나서 사진 찍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파리의 신비인가, 에펠탑의 마법인가. 큰애도 막내도 신나게 촬영하는 것을 보니 뭉클하기도 감격스럽기도 했다.


사진 촬영은 부부사진, 가족사진 촬영도 있었지만, 형제 사진 촬영도 있었는데 평소 으르렁 거리던 형제도 다정한 포즈로 사진 찍는 것을 보며, 아이들이 저만큼 자랐구나, 나와 남편이 그동안 애들 정말 많이 키웠네, 하며 뿌듯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촬영된 파일은 한국에 돌아와서 받게 되었는데 여행의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시기에 여행의 기쁨을 되새기게 해주는 추억이었다.

에펠탑 이즈 뭔들이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라니 더 아름다웠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갔다. 어느새 날이 흐려져 저 위에 먹구름도 몰려오는 듯한 날씨가 되었지만, 그 또한 어찌나 낭만적인지. 파리는 흐려도 맑아도 비가 와도 낭만적인 정말 묘한 도시다.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는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는데, 입장하려는 사람이 많아 줄이 다소 길었다. 함께 들어가 보자고 하니 아이들이 굳이 줄 서서 성당을 들어갈 필요가 있냐며 몽마르트르 언덕의 계단에 앉아 쉬고 싶어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성당에 안 들어가는 건 좀 아쉽다며 아이들을 졸라 함께 줄을 서 들어갔다. 줄 서서 들어오기는 싫다더니 성당에 들어가자 높은 천장의 성스러운 천장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까지 성당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남자 셋이 모두 기도를 한다. 무슨 기도였을까. 나는 그저 감사하다는 말 뿐이었는데….  내가 오히려 남자 셋의 기도를 기다리다 남편과 아이들이 기도를 마치자 이제 나가자며, 성당 밖으로 나왔다. 나와보니 그 사이 비가 내렸었나 보다. 비가 꽤 내렸었는지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물이 흥건하게 젖은 몽마르트르 언덕을 볼 수 있었다. 노을 지는 몽마르트르의 고즈넉한 모습은, 관광객들로 만나기 힘든 풍경인데 우리가 그 풍경 속에 있다는 게 다시금 감사하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름다웠던 성당 내부, 기도하던 남자들



“근데 얘들아 성당 들어가자고 한 거 누구지? 엄마지. 너네 다 싫다고 했잖아. 만약 안 들어갔으면 우리 비 쫄딱 맞았을 거야. 그러니까 뭐다? 엄마 말을 잘 듣자!”

못 참고 세뇌 교육을 시작했다. 얘들아 엄마 말을 잘 듣자! 우리 집에 여자는 누구뿐이다? 엄마뿐이니까. 논리도 없고, 내용도 갸우뚱한 나의 세뇌에 애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렇게 우리에게 말로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사한 하루가 더해졌다.

낭만적이던 몽마르트르 언덕. 사진으로 다시 보니 정말 비 올만한 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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