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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Sep 02. 2023

오르티세이의 ‘알페 디 시우시’에서 찾은 휴식

아이들과 트래킹을 하며 느끼는 행복 즐기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부터 확인했다. 파리에서 이탈리아로, 밀라노에서 이곳 볼차노까지 생각해 보니 엄청나게 달려왔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오늘은 우리의 두 발로 산을 오르기로 한 날이니까. 등산과 관련된 표현 중에 산을 탔다는 말이 있다. 탄다는 말은 보통 ‘그네를 탄다’, ‘놀이기구를 탄다’처럼 즐거움을 주는 도구를 탈 때 쓰이거나 아니면 ‘차를 탄다’, ‘기차를 탄다’와 같이 이동 수단을 탈 때 쓰인다. 그런데 산은 이동 수단도 아니고 놀이의 수단도 아닌데 ‘탄다’라는 서술어를 쓴다. 나는 이 말을 분명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산은 타는 것이니까.


 늦잠을 자도 자도 부족한 주말의 이른 아침에도 산에 가자면 눈을 뜨는 나를 남편은 신기해한다. 사실 나는 운동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나는 운동 중에 땀이 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어떤 운동도 땀나기 직전까지만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걷다가도 땀이 좀 나면, ‘땀난다 그만 들어가자’라고 말한달까. 그런 내가 등산에 빠지게 되다니. 나도 신기하다. 어렸을 때 아빠가 등산을 좋아하셔서 그렇게 같이 가고 싶어 하셔도 이불속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던 나였다. (요즘은 과거의 내가 후회된다. 아빠 다리가 건강하셨을 때 내가 함께 산행에 동행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빠는 아직도 내가 6살일 때 새벽에 산에 갈 때 따라와 주었던 이야길 하신다. 아빠의 추억보따리를 더 만들어 드렸다면 좋았을 걸.) 나조차도 나의 이런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무엇인가를 좋아하면 푹 빠지는 나이기에 동네 산이든 유명한 산이든 열심히 돌아다니며 산며들던 지난 몇 년이었다.


그런 초보 등산러인 나에게 알프스는 얼마나 꿈의 산이겠는가. 그러나 나에겐 등산이라는 취미가 없는 두 아들과 함께 알프스를 올라야 하기에, 가볍게 케이블카를 타고 어느 지점까지는 올라간 뒤에 2~3시간 정도 트래킹하는 코스를 계획했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티는 동쪽과 서쪽의 풍광과 산세가 다른데, 동쪽은 바위도 많고 등산 난이도도 있는 편이라면 서쪽은 초원 같은 평원의 모습을 많이 가진 느낌이다. 우리는 일정이 짧아 서쪽만 돌아보기로 했고 오르티세이 마을의 유명한 두 고개를 하루씩 트래킹 하기로 했다. 두 고개 모두 케이블카가 있고 트래킹 하기에 난도가 높지 않아 보통은 두 고개를 하루에 많이 돌지만 나에겐 협조 여부가 불투명한 두 아들이 있으니 하루에 한 고개씩 트래킹 하기로 계획했다.




오르티세이 마을에서 ‘세체다‘라는 지역이 ‘알페디시우시’라는 지역보다 풍광이 더 아름답고 난도도 높은 편이라 ‘세체다’를 먼저 가면 나머지 지역이 시시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새겨듣고 ‘알페 디 시우시’라는 지역으로 먼저 출발했다. 어제 고속도로로 이곳 볼차노까지 들어오던 길도 참 아름다웠는데 굽이 진 국도를 따라가는 길은 이곳이 이탈리아인지 스위스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였다. ‘알페 디 시우시’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케이블카를 탑승해 올라갔다. 생각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토요일, 한국에서 주말에 국립공원의 케이블카를 타려면 꽤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 여기는 산이 넓어서인지, 웨이팅 없이 바로 탑승이 가능했다.


케이블카로도 꽤 올라갔던 ‘알페디 시우시’였는데,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내리는 사람 모두‘와’하는 탄성이 나오게 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푸릇푸릇한 평원과 저 멀리 높이 솟은 바위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데 처음 보는 풍광에 넋을 잃고 감탄만 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이들도 멋진 산세에 감탄하여 이제 걸어보자는 제안에 흔쾌히 따라준다. ‘알페디 시우시’는 사실 트래킹 난이도가 하에 가까운 곳이라 실제로는 어린 아기를 동반한 등산객들도 많았다. 그만큼 평탄하고 풍경이 목가적이고 아름다웠다.

평이한 트래킹 코스.큰애와 막내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계속 사진 찍던 남편, 그 남자 셋이 모두 그림같았다. 그리고 중간 중간 갈증을 달래주던 소중한 납작복숭아


열 걸음 걸으면 사진 찍고 싶어지고 또 열 걸음 걸으면 사진 찍고 싶어지는 풍경의 연속이었다. 어디에서 찍어도 그야말로 달력 사진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온 세상이 초록초록한 초원이라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가벼운 간식을 먹으며 걸어갔지만 약간 출출해지던 터에 저 멀리 산장레스토랑이 보인다. 저기에서 점심 먹기로 하고 함께 올라가 보니, 여기는 스위스 같기도 오스트리아 같기도 한 그런 식당이었다. 그리고 그 식당에서는 산양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풀을 뜯어다 주면 맛있게 먹는 자연 친화적인 식당이다.(중간에 산양 한 마리가 우리에서 탈출해 우리 아이들이 식당 점원에게 말했는데 식당점원이 괜찮다고 좀 놀다 들어갈 거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음식을 시키고 가볍게 곁들일 맥주도 한 잔 시켰다. 남편은 또 내려가 차를 운전해야 하기에 입맛만 다셨다. 그런데 높은 산에서 약간의 산행 후에 마셔서인지 맥주 한 잔뿐이었는데도 그것도 (스몰사이즈) 금세 술이 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옆에 있던 캠핑의자에 앉아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믿기지 않는 풍경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내려쬐는, 그러나 뜨겁지만은 않은 햇살과 초록색의 너른 평원, 산양에게 먹이를 주고 함께 놀고 있는 막내, 내 옆에 앉아 있는 큰애까지 모두가 다 그림 같은 풍경이다. 그림 같은 풍경에 취한 건지, 겨우 한 잔의 맥주에 취한 건지 자꾸 눈이 감겨 나도 모르게 한숨 자고 일어났다.

고산지대여서인지 금방 취하던 맥주 스몰사이즈. 그런데 진짜 풍경에 취한다. 어디서 마셔도 맛있었던 에스프레소


아들들의 호응이 좋아 ‘알페 디 시우시’에서 내려가면 ‘세체다’를 오르려고 했는데, 산장 휴식이 달콤해 트래킹 시간만큼 충분한 시간을 쉬다 보니 예상 시간보다 늦어졌다. ‘세체다’는 내일 가기로 하고 일어선다. 이제 케이블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내려가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산행하자니 아이들 얼굴이 환해진다. 등산은 진정 나만의 행복인 건지,,,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내려와 축구 게임을 하고 싶은 두 아들 덕에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며 푸릇푸릇한 산세를 눈에 담는다. 얼마나 많이 올라갔는지, 얼마나 많이 다녀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함께 웃으며 여기에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것임을 다시금 새기며 축구 게임에 이겨 신난 큰 애와 져서 분해하는 둘째를 보며 이는 웃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남편에게 애들 다 키우고 우리 둘이 열흘만 돌로미티 여행하자고 이야기했다. 오빠, 오빠마저 싫은 건 아니지? ㅎㅎ)


여행을 다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가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은 “그래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였다. 남편과 둘째는 다른 곳을 말했지만,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단연코 오르티세이를, 그것도 함께 산행하고 휴식했던 ’ 알페 디 시우시‘를 떠올렸는데 놀랍게도 큰애가 같은 곳을 골라줬다. 유럽까지 와서 산행하기 싫다던 그였는데, 산며든 것인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내가 큰애의 첫 시험이 끝나면 갈 가을여행으로 아들의 동의를 얻어 속초 여행을 예약했다. 가을가을한 설악산을 만끽하러 가보자고. 설악산 정복 아니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사실 이다음날 너무 피곤해서 ‘세체다’ 고개는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래도 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닌 그저 산을 타는 우리의 등산 여행은 계속될 것 같아 설렌다.


@ 대문 사진은 산장 레스토랑에서 휴식을 취하며, 함께 하는 즐거운 산행을 위해 한국에서 맞춰 신고 온 우리 가족의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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