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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24. 2023

산 넘고 물 건너 꿈꾸던 알프스가 있는 돌로미티로

유럽까지 와서 등산을 해야 하냐는 너에게 보내는 나의 사랑

 오늘은 파리에서  밀라노로 넘어가는 날이다. 런던 파리 여행을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전체 여정의 절반을 채워나가는 우리에게는 여행 두 번째 챕터가 열리는 날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두 세 도시를 여행하기로 했는데  그중 한 곳은 이탈리아 북부의 돌로미티 지역이었다. 유명한 도시들에 비해 약간 생소한 지역이지만, 유럽의 알프스 산맥의 줄기가 있는 산악지역으로 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버킷리스트가 되어주기도 하는 곳이다. 나는 그런 산악인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산에 산며든 사람으로 이탈리아 여행 계획을 짜던 그때부터 돌로미티의 어떤 지역으로 트래킹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살펴보던 사람이기에 새로운 지역으로의 여행이 설렜지만, 항상 그랬듯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무사히 해야 한다는 부담은 긴장과 불안을 더해주기도 했다.


 엄마가 된 이후에, 때때로 나의 개인적 행복만을 위한 어떤 행동은 다소 이기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사실, 엄마이면서 동시에 나도 한 사회적 인간으로, 늦은 시간까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싶기도 내가 번 돈으로 쇼핑을 실컷 하고도 싶었지만, 그런 나만의 행복을 위한 행동들은 아이들이나 가족들에게 어떠한 희생이나 기회비용을 요구했기에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놀고 있다면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려야 하고 남편은 육아를 더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시간이 더 많았음에도 내 개인적 행복을 위한 일을 할 때에는 이런 생각에 더더욱 망설여졌던 것 같다. 그러나 간혹 나의 개인적 행복을 위한 어떤 행동이 때때로 가족 모두의 행복과 일치할 때가 있었는데 한 때 등산이 바로 그랬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도 잠정적으로 제한하던 그 시절,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집에서 부대끼다 보면 아이들도 오후가 되면 사소한 일로도 크게 다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아이들을 잠재우는 방법은 나가서 에너지를 빼야 했는데, 그때 내가 즐겨하던 활동은 등산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바로 뒤에 등산로가 있는데 등산의 난도가 그리 높지 않고 또 코스도 길지 않아 한 시간 정도면 등산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했던 그 시절에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고(사람들과 마주칠 때는 다시 썼지만) 외부 공기를 맡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아이들은 ‘산에 가자!’라는 엄마의 제안을 늘 기쁘게 좋아했고, 그렇게 산에 다니면서 산며든 우리는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등 유명산들로 등산의 지평을 넓혀갔다. 산을 좋아하지만 힘겹게 올라야 하기에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아이들은 뛰어 올라가 우리를 기다리며 발견하고 알려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산은 익숙한 곳이든 그렇지 않은 곳이든 행복의 지평을 넓혀주던 배경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슬슬 자라, 이제는  엄마 아빠와 등산을 가기보다는 다른 활동을 하거나 집에 있고 싶어 하는 날이 많아져 어느 순간부터는 주로 남편과 둘만 등산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없을 때에는 좀 더 난도가 있는 산을 가기도 하고 뒷산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의 풍경이 아름다운 산을 오르기도 했다. 또 아이들이 주말 오전 방과 후 수업을 가게 되는 그런 시간에 전투적으로 산에 올라 어차피 아이들 없는 시간이니까 마음 편히 산을 누리겠다는 그런 의지로 산을 탔다. 그렇게 산에 오르다 보면 높이 올라온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아름다운 광경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의 벅참은 산을 오른 사람들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을 마주했을 때  ‘이런 광경을 아이들과 함께 보면 정말 좋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정의하게 된 사랑은 늘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힘들어도 맛있는 음식을 주고자 했고, 피곤해도 좋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마음처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주고 싶었다. 산도 나에겐 그런 것 중에 하나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러나 나한테는 그랬다.


그런데 유럽은 알프스가 있는 곳이 아닌가. 알프스의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기에 다시 아이들에게 산며들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오랜만에 산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사실 그리웠다. 넷이 같이 산에서 등산했던 그 시간들이. 그래서 돌로미티여행에 대해 아이들에게 제안했는데 역시 큰애가 유럽까지 가서 등산을 해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큰 아이들에게 산은 절대 휴식이나 힐링의 장소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름다운 알프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케이블카가 있으니 너무 걱정 말고 조금만이라도 가보자고 말하니 아이들도 예쁠 것 같기는 하다는 말로 고개를 끄덕인다. 애들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의 거점도시로 볼차노를 정하고 예약을 서둘러 끝냈었다.


그렇게 파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밀라노에 와 볼차노에 가기 위해 렌터카를 빌렸다. 그동안 계속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빌린 차지만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동하니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즐겨 듣던 노래를 블루투스를 연결해 들었는데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낯선 도시로 이동한다는 어색함보다는 편안함이 차 안을 채웠고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도착할 때까지 긴장했던 우리들은 그제야 이국적인 차창 밖의 풍경을 즐기게 되었다. 그렇게 차 안에서 편안함을 누리며 목적지로 향했다. (비록 남편은 여전히 긴장했겠지만… 우리는 남편이 고생해 준 덕에 편안하게 풍경을 즐기며 갔다.)


 약 4시간을 달려 볼차노에 도착했다. 볼차노까지 가는 길은 산이 굽이굽이 진 고속도로였는데, 가는 풍경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계속 카메라로 사진을, 동영상을 찍게 만들었다. 볼차노까지 가는 길이 걱정되어 여행 전에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감탄하며 영상을 올려둔 것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는 돌로미티의 아름다움의 시작도 아니었다. 다음날부터 엄청나게 아름다운, 아름답다는 단어로는 부족한 그 풍경을 돌로미티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알프스+운전하며 만나는 돌로미티의 흔한 뷰. 그러나 처음이라 우리는 마구 환호했다.


볼차노에 도착해서 우리가 머물 숙소 앞에 호스트가 반갑게 우리를 기다려준다. 지금까지는 호텔이나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이제는 현지 호스트가 빌려주는 아파트에서 생활하기에 사실 도착할 때까지 숙소의 상태가 어떨지 더 긴장했었다. 그러나 밝게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는 호스트는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아주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어떤 어려움도 메시지를 주면 바로 도와주겠다던 따스한 호스트의 이런저런 안내를 받고 호스트와 헤어졌다. 호스트가 빌려 준 집은 햇살이 잘 드는 환하고 깨끗한 집이었다.

우리 넷만 남게 되자 다들 덜렁 침대에 눕는다. 나와 남편도 마찬가지로 긴장을 내려놓고 소파베드에 눕는다. 여기까지 무사히 왔다는 생각에 커다란 미션을 마친 느낌이 든다. 방금 들어온 숙소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보니 비로소 우리의 유럽여행의 두 번째 챕터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곳 여행은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으로 예약된 지역이지만, 함께 하는 산행이 모두에게 행복의 순간이 되길 기도했다.

동네 산책을 나가보니, 이곳에도 큰 성당이 있었다. 성당을 보면 조용한 격려를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첫 젤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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