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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Jul 13. 2022

기억에 남는 선물

아이를 만나는 과정은 쉽게 오지 않는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빌려준 책의 페이지마다 자신이 사용하는 향수를 정성스럽게 뿌려 놓았던 남자와 결혼했다. 일 년이 지나자 주변에서 아이는 언제 가지냐며 물어왔다. 산전 검사와 부모 교육 관련 서적들을 읽으며 설렘 속에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금방이라도 부모가 될 것 같은 기대와는 달리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실망과 불안이 자라기 시작했다. 시험관 시술을 여러 차례 시도한 큰오빠네의 고통을 지켜봤기에, 난임이 결코 먼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간절하게 기다리면 더 천천히 오는 법이다.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는 순간, 아이가 찾아온다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반년이 지나자 임신과 직장 스트레스가 더해져 애가 타들어 갔다. 결국 십여 년을 다니던 병원을 그만둔 후, 난임 전문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별문제 없으니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와 불임에 대한 두려움이 있던 터라 상의 끝에 인공수정을 하기로 했다. 시술하기 전 몸을 만들기 위해 정성스레 매일 108배를 이어 갔다.     

 

한 번에 성공하는 것은 로또를 맞는 일이라는 인공수정. 설마 한 번에 될까 싶은 마음과 제발 성공해서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임신 테스트기를 성적표 확인하듯 가슴 졸이며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번번이 한 줄만 보여주더니. 그토록 보고 싶던 선명한 두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너무나 간절한 아이라서 입에 담기조차 두려울 만큼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두 개 중 하나의 아기집을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부모로 만들어 준 아이는 쫑알쫑알  예쁜 말들로 감동을 연일 선물해 줬다. 아이가 혼자 노는 모습을 보며 평생의 친구라 부를 수 있는 형제자매에 대한 생각이 같이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 과정이 떠오르자 두려웠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일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면 감사한 일이고, 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봄날, 상하수도 고지서를 받았다. 격월로 나오는 상하수도 요금이 두 배가 넘게 나와서 무척 속이 상했다. 육아만 하던 상황이라 고정비용을 아껴보려고 신경을 썼는데 허탈했다. 속상한 마음은 짜증으로 바뀌어서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깟 상하수도 고지서에 울고 있는 내 모습에 식구들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 닳지 않는 건전지라도 들어있는 걸까. 온종일 동분서주하느라 바쁜 아들의 에너지를 감당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한껏 지쳐있던 날이었다.   

   

에이 설마. 둘째가 쉽게 올까 싶은 마음에 임신 테스트기를 해봤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려 달라는 듯 어이없는 눈물 신호를 보내며 둘째가 왔다. 믿기지 않던 그 순간 너무나 기뻐서 팔짝팔짝 뛰며 현실의 기쁨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서후야, 너한테 동생이 생겼어!” 이 말을 아이에게 얼마나 해주고 싶었던지.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다. 결혼하면 누구나 가지는 아이도 당연히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기다리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쉽게 부모가 되는데 왜 나는 어려운 것일까? 그러나 길거리에 보이는 아이와 함께 있는 타인들도 결코 쉽게, 당연하게 부모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사연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관심이 없을 뿐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을 것이다.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지향하던 내가, 부모로서의 삶으로 피봇을 전환한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이 그에 해당한다.      


<<글쓰기 수업 중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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