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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두건 Aug 22. 2023

자살과 자해에 대하여

학문적 지식 한 스푼에 내 경험 한 포대 끼얹은 이야기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죽고 싶다. 내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게 하고 고통을 주고 짓밟고 싶다. 내가 싫다. 왜? 왜 그러는데? 이유가 뭐야?


 이유는 없다. 그저 몇 년째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오늘의 무언가가 방아쇠가 되었을 수 있긴 하다. 우중충한 날씨, 애인과의 서먹한 기류, 친구와의 다툼, 안 좋은 사건이 가득한 뉴스 등... 그 무엇도 언제나 나타날 수 있는 평범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정확히는 '특정 시점의 나'에게는 그것들이 총을 쏘는 방아쇠가 된다. 그 순간 기분은 다운되기 시작하고, 스멀스멀 자살사고와 자해 충동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주요 우울장애는 2주의 기간을 가지는 우울 삽화(에피소드)가 나타날 때 진단된다. '(1) 우울한 기분 또는 (2)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중 적어도 하나의 증상을 포함하여 5개 이상의 이전과 다른 변화(DSM-5에서는 9가지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체중의 변화, 수면의 변화, 무가치감, 집중력 감소 등이다.)가 나타나 환자가 일반적으로 기능하던 중요한 영역들에 심각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 이때 경조증이나 조증 삽화가 나타난 적이 없어야 한다. 주요 우울 삽화는 몇 달 만에 회복될 수도, 평생 간간이 지속될 수도 있다. 주요우울장애-이하 MDD-를 진단받는 비율은 여성이 남성의 약 2배이며, 여성에게 MDD의 위험은 초기 청소년기부터 중년기 이상까지 지속된다.


 여기까지가 의학적으로 설명하는 MDD이고, 실제 경험하고 있는 환자로서 나의 MDD는 무엇일까? 나는 주요 우울 삽화, 정확히는 삽화 중에 발생하는 자살사고에 '제이슨, 존슨' 따위의 별명을 붙여준다-이것은 실제 사용되는 심리치료 기법이다. 특히 아동 대상 상담일 때, 예를 들자면 아동의 폭력적인 충동에 별명을 붙이고 그것이 왔을 때 어떤 느낌인지, 그것이 없어지면 어떻게 하고 싶은지 등을 탐색한다-. 그리고 말한다.

"내가 자살하게 되면 내가 나를 죽인 게 아니야. 제이슨이 날 기어코 죽이는 데에 성공한 거지."

그 말인즉슨, 주요 우울 삽화가 오는 기간에는 나 스스로의 생각을 통제할 수 없고 걷잡을 수 없음을 느낀다는 것이다. 당장 검은 복면을 쓴 살인범이 찾아와 "널 죽이겠어."라고 해도 반항할 수 없는 상태처럼. 또한 그 복면의 살인범이 사람을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느끼는 충동만큼이나, 내가 나를 죽이고 싶다는 자살 충동은 강하다. 요약하자면 나는 '20대 여성 살인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제이슨과 나는 지금까지 총 3~4번, 결전의 날-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날-을 거쳤고 그중 한 번은 실제 자살 시도가 있었다. 제이슨이 나를 지배한 것이다. 그런 후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폐쇄병동은 아니어서 나는 그때도 일을 했고,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바빠서 정장을 늘 병실에 걸어놨었다. 죽고 싶어 하는 환자 치고는 너무 열심히 산다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정신과 약물 복용량을 확 늘리고 좀 회복이 된 나는, 퇴원을 하고 취업을 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심리학, 정신의학에 관심이 많았고, 부모님이 내 틱 증상을 '틱 장애'라고 알지 못하던 중학생 시절에도 나 혼자 틱장애라는 걸 어디선가 알아와서 틱장애 치료로 유명하신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메신저를 보낸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감사하게도 '그냥 틱 자체에 신경 쓰지 말라'라고 하셨고, 그때부터 증상이 호전되어 현재의 나는 거의 틱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자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비자살성 자해는 자살하려는 의도는 없으나 불안을 잠재우고 회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해를 할 때 뇌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아픔을 덜 느끼게 해 주고 기분을 좀 낫게 해준다-때문에 자해하거나,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거나, 주변의 중요 인물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서 자신에게 아픔을 준다. 그리고 자해는 행위의 중독성이 있어서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자해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에 한두 번, 몇 주씩 우울한 날이 이어지고 3일에서 열흘 정도 자살 충동에 사로잡히는 나날이 반복되자, 몇 년쯤 흘러서는 자해 충동도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벽에 머리를 찧는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자살 충동이 매달 반복되기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이후였기 때문에, 내 자해 또한 성인이 되어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자취하는 나로서는 자해하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 사람도, 애정을 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강화되지 않은 자해행동은 잠잠해지나 싶더니, 애인과 동거를 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살 시도의 일환이었다. 식칼을 손목에 대봤다. 이렇게 해선 안 죽을 걸 알았기에 목과 배에 찌르는 형태로 칼을 대어봤다. 솜인형을 배에 대고 식칼로 찌르는 연습도 했다.  정신과 약을 꾸준히 늘려가며 복용하고 상담도 받으니, 자살 사고가 줄어든 반면 자해 충동이 늘어났다. 이제는 몸에 어떤 상처, 자극이라도 주고 싶어서 팔을 긋기 시작했다. 최근 팔을 아주 약하게 긋고 상담을 갔더니 선생님이 그러셨다.

"이래서 자해 학생은 어떻게 상담하려고 그래?"

그러게요. 하하. 나는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해 충동에 대처하는 좋은 팁을 얻었다. 칼 대신 빨간 볼펜으로 몸을 긋거나,  얼음을 손목에 올려놓으라는 것이다. 차가운 얼음이 오래 같은 자리에 놓여있다 보면 얼얼하게 아프기도 하고 피처럼 주르륵 흐르기도 하니 대처법으로 쓰면 좋다고 한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하게 우울증이나 깊은 우울감을 겪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한 친구는 '지속성 우울장애'로 보이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만성적으로, 그러니까 1년 365일의 거의 대부분을 죽고 싶은 상태와 행복하지 않은 상태로 보낸다. MDD보다 약한 증상을 꾸준히 보이는 것도 지속성 우울장애이지만, MDD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심한 주요 우울 삽화가 최소 2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


 우리는 때로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검색해 봤는데, 아파트 15층에서 떨어지고서도 산 사람이 있대. 그러니까 그런 방법은 쉽지 않아.

-약물 과다 복용도 생각 중인데, 그건 위세척하고 고통스럽기만 하고 끝이라던데.

-익사가 제일 고통스러운 거 알지? 폐에 물이 가득 차서 숨 쉴 수 없게 되기까지가 얼마나 고통스럽겠냐고.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다 보면 결국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야. 이래서 죽을 수나 있겠냐? 죽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근데 살기도 어려우니 우린 어떻게 해야 되니?"


 대체로 이때쯤엔 정신과 치료와 상담 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친구에게 권하는 내가 보인다. 나는 그래도 꾸준한 약물 복용과 잘 맞는 약, 의사분을 만나는 과정, 그리고 상담가분을 만나는 과정을 오래 거쳤고 지금은 회복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친구는 지역 특성상 병원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낮아 자신에게 적절한 양의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 몇 번 힘들게 병원을 갔는데 차도가 없다고 느끼니 더욱 병원 가기를 미루는 내담자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다른 신체적 질환에 빗대어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팔이 부러졌다고 해보자. 그때 자연치료를 할 수도 있다.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자연과 시간의 힘에 맡기어 낫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팔이 잘못 꺾여 붙을 수도 있고, 비가 올 때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도 있지만 아무튼 시간이 많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보통 2023년을 사는 우리들은 이런 사고를 당하면 그 분야에 뛰어나다는 의사를 찾아간다. 특히나 수술이 필요하거나 오래 회복 기간을 거쳐야 할 경우, 더더욱 수술도 잘하고 약물을 적절하게 잘 처방하며 병원 접근성이 높고 후기가 좋은 병원의 의사를 찾아갈 것이다.


 그런데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유독 자연치료를 강요하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문화가 언뜻 보인다. 정신질환이 있는 자신들을 '정병러'라고 부르며 비하하고, 치료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일 뿐이라며 힘내라고 등이나 두드리는 주변 사람들. 네가 나약해서 그런 것이라며 청춘일 땐 다 그런 거 겪는다는 사회의 어른들. 좀 더 나아가 보면, 정신과 약물은 의존성이 심해서 힘이 쭉 빠지고 미쳐버리게 만든다는 얘기들. 친구랑 얘기하면 되는데 상담 그런 거 돈 주고 해서 뭐 하냐는 사람들. 그들이 결국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만들고 치료의 진입장벽을 높인다.






 정신질환의 치료에 대해 상담과 약물의 병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 나는 약물치료를 해야 하는 상태임에도 안 좋은 기억들로 인해 알약을 삼키지 못해 상담치료만 주구장창한 경력이 있다. 무려 180만 원을 주고 20회의 상담을 받았으나, 나는 한계를 느꼈다. 확실히 조금 나아지긴 했으나 뭔가 부족했다. 그때 병원을 가기 시작했고, 나에게 딱 맞는 신경안정제가 치료의 한계를 터뜨려 주었다. 조증이 온 것 마냥 갑자기 확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잠깐의 기복 후에 다시 치료의 안정기와 침체기를 맞으면서 나는 또다시 매달 반복되는 주요 우울 삽화를 겪어야 했지만, 지속 기간이나 우울감의 정도, 자살 사고의 심각성이 점점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약물 치료만 마냥 해서는 또 겪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에, 나는 다시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는 지금은 꽤 많이 호전되었다. 3일에서 열흘까지 내 정신을 지배하던 제이슨이 이제는 하루나 반나절만에 사라지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독자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들고 평소와 다른 자신이 느껴진다면 주저 말고 상담센터와 병원을 찾으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쉽게 말하면 약물치료는 생물학적 치료, 신경계 관련 치료이고 상담은 인지치료부터 시작해서 마음 챙김까지, 몸과 마음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치료이다. 약물치료는 보통 좀 더 심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받는 게 맞지만, 현대인들은 대개 우울, 불안, 수면 문제 중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담센터는 못 믿겠고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도 된다(그러나 병원에서 '상담치료'를 받으려 하진 말라. 의사분들은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사설 상담센터보다 훨씬 비싸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심리치료의 전문가 자격도 있으신 분은 드물다.). 혹은 병원 갈 짬도 안 나고 병원 기록이 남는 게 싫고-물론 남아봤자 아무도 못 보지만-약 먹기가 싫다면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정신건강증진센터)를 찾아가면 된다. 그러면 웬만한 지역 병원이나 상담기관과 다 연계해 주고, 센터 내에서도 무료로 얼마든지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혹시 그대가 청소년이라면 정신건강 전문가를 만날 기회는 훨씬 많다. 학교에 위클래스 교사나 상담사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 중에 '아, 죽고 싶다.'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아주 드물 정도로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높다. 그러니 나는 자살사고와 자해 충동을 경험하는 당사자로서, 나와 같거나 비슷한 그대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우리 치료를 받읍시다. 생각보다 사람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요. 죽으려고 아등바등하는 마음은 나와 나누고 조금이라도 털어버려요. 그리고 다시 하루를 되돌아봅시다. 오늘 마주친 사소한 것들, 밥 한 끼나 노래 한 곡, 영상 한 편이나 나의 글 하나라도 당신의 마음에 가닿은 것이 정말 없었는지. 내 삶은 정말 비루하고 가치 없으며 행복하지 않은지. 나는 정말 죽어야만 하는지. 이 글의 작가라는 사람은 왜 매달 자살사고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아서 이런 글을 남기고 있는지. 그대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주변에 정말 없는지.


 있잖아요, 적어도 나만은 당신을 응원합니다. 한 번도 우리 마주친 적이 없어도, 서로를 아예 모르더라도, 내 글을 읽어준 그대에게 이 진심 하나만큼은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다시 한번 살아봐요. 살아서 다음 주에 또 여기서 봐요. 알겠죠?


 그럼 안녕.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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