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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각두건 Aug 19. 2023

우울증을 가진 두 여자가 만나 사랑했을 때 2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느리지만 꾸준히 회복을 하고 있을 즈음, 애인이 자살 시도를 했다.




 발단은 나의 주요 우울 삽화였다. 여느 때처럼 나는 괴로워하고 있었고, 죽고 싶다는 말을 하면 내 소중한 애인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후회하는 법.

"여보, 나보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아줘."

 나의 동반자는 이 말에 그렇게 화가 났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문득 깨어보니 애인이 헤롱거리며 풀린 혀로 말하고 있었다.

"나 약 42알 먹었어."

 그 약은 항불안제이자 수면제 종류였고, 애인은 졸려서 기절 직전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애인을 눕히고, 상담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혹시 모르니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셨다. 주말이었기에 바로 119를 불렀다. 잠이 들려하는 애인을 구조대원 분이 깨우며 병원을 찾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응급실에 빈 병상이 없어서 난리였다. 다른 도시까지 넘어갈 뻔했다가 겨우 갈 곳을 찾았다. 위세척을 진행하고, 원가족에게 연락이 갔다.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하는데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단다. 나는 거의 의식이 없는 환자인 내 애인의 법적인 그 무엇도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초조한 마음으로 장장 5시간을 기다렸다.


 그때부터 의료 문제는 우리 사이에 큰 화두가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응급실을 애인과 만나면서는 밥 먹듯이 갔으니. 우린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사람들이었다. 우리를 상담해 주고 계시는 선생님께서는 안타까움에 그저 한숨만 내쉬셨더랬다. 둘 다 취약하고 아프고 위태로운데, 건강하게 받쳐주고 지지해 줄 어른이 필요한데 그 누구도 없어서 서로만 붙잡고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단다.

 성인이 되면 모든 것을 나 혼자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실상은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 나의 마음까지 자라 어른이 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웅크리고 있는 내면아이, 어린아이가 있다. 나는 어린 시절 받은 고통 때문에 심리학이라는 분야를 선택해 지금까지 공부해 왔고, 치료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내 내면아이를 소중히 여기고 돌보아 왔는가? 내면아이의 상처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내가 내 안의 아이에게 칼을 들이밀지는 않았는가.


연애든 결혼이든, 서로 다른 기질을 갖고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만나 한 묶음이 되기로 약속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집착, 의존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애착 유형에 따라 누구는 누구를 만나면 안 된다더라 같은 얘기가 나돌기도 한다. 그중 가장 믿음직스러운 이야기 하나는, 개인이 스스로 제자리에 설 수 있고 내가 내 생을 잘 운용할 수 있을 때, 넘어졌다가도 내가 날 어르고 달래어 진정시키고 일으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의 파트너와도 건강한 관계를 이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배웠던 벤 다이어그램을 떠올려보자. 나와 애인의 관계를 예로 들자면, 그야말로 밀착과 융합이다. 동그란 원 2개가 거의 겹쳐있는 형태. 우리는 서로 떼어 놓으래야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로 숨을 붙잡고 살 수 있었던 도 있었지만, 반대로 그 때문에 지독하게 싸우고 서로에게 상처를 내기도 했다. 두 명이 하나처럼 뭉쳐있을 때 나는 상처는 거세다. 사소한 것에도 둘이 동시에 무너져 버리고 만다. 최근에도 헤어짐을 생각할 정도로 강도 게 싸운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친절한 친구들의 조언과, 상담 선생님의 조언과, 둘 간의 깊은 대화를 통해 서로 어느 정도의 심리적 거리감을 두자고 결론 내렸다. 애인은 심신건강을 목적으로 템플 스테이를 다녀오기로 했고, 나는 집 안에서 독립적으로 내가 할 일을 하고 나만의 취미를 찾고 나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다짐했다. 내면아이를 마주해야겠다고. 내면아이를 만나고 돌보는 건 꽤 버겁고 힘든 일이다. 우울장애와 같은 아픔이나 심리적 외상이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폭력의 근원이 부모였던 나는 누구에게 도움과 지지를 요청할 수 있는가? 결국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인지도 모른다. 나만이 나를 가장 잘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포용할 수 있다. 그만큼 나는 스스로를 지독히 싫어할 수도, 자책할 수도 있다. 상담 선생님 왈, 자책의 끝은 자살이라고 했다. 나는 수없이 나를 탓하고 깨뜨리고 상처 내다가 결국 나를 죽이기로 했었다. 폭력의 시작은 타인(부모)이었지만 끝은 결국 나였던 것 같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지키고, 건강하게 돌볼 의무가 있다. 애인과의 관계에서도 네가 우선이야, 너 없으면 난 죽어, 같은 태도보다는 우선 내가 나를 보호하고 독립적으로 설 수 있을 때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470일을 넘게 만나왔고, 450일 정도를 동거했지만. 우리 관계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인 것 같다. 그동안의 연애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만 가득했지 자신에 대한 돌봄, 애정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명이 우울해지면 다른 한 명이 죽고 싶어 하고, 한 명이 죽고 싶어 지면 다른 한 명이 자살시도를 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자기 스스로 해나가 보기로 했다. 거친 싸움의 끝에 신뢰의 벽이 무너져 서로의 맨 얼굴이 드러났더라도, 부서진 벽의 잔해에 밀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조금 벌어져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히려 서로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지금 이 순간, 자신을 건강하게 케어하는데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머지않은 시간, 또는 오랜 시간 뒤에. 우리는 자연스레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서로의 건강과 발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사랑하는 단단한 나무 두 그루가 될 것이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어떻게든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우리는 성인 입양을 통해 의료법 상 법적 보호자가 될 계획이다. 현행법 상으로는 이 방법이 최선이다.-폭력적이었던 원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돕고 서로의 새 가족이 되어줄 것이다.


 이성애가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자인 우리 둘도, 각자 자살시도를 한 번 이상 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한 우리 둘도 사랑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둘의 엔딩은 새드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제한할 수 없고, 우리는 건강해질 거니까. 어른답게 자신을 책임지고 돌볼 거니까. 우리는 서로 또한 돌볼 수 있다.

 한때 델마와 루이스 같은 엔딩을 꿈꿨다. 쫓기고 쫓기던 끝에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액셀을 밟아 절벽 위를 나는 엔딩. 그 명장면처럼 죽고 싶었으나 애인은 무섭다고 했다. 어쩌면 애인이 무서워 해준 덕분에 나는 살아남은 걸지도 모른다. 이젠 자살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럼 우리의 엔딩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애인에게 전해주고 싶다. 애인과 같이 평생을 산다는 생각만으로도 버거워하던 내가 이제 그려보는 우리의 엔딩은, 손을 꼭 잡고 마지막으로 사랑을 말하며 편안하게 잠드는 것이라고. 입양도 해보고 아이도 키워보고 커리어도 쌓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본 뒤 호호할머니가 되어서, 노년을 즐겁게 친구들과 애인과 즐기다가 마지막엔 그대와 조용히, 거룩하게 가고 싶다고. 이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또한, 나 자신도 사랑할 것이라는 다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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