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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솜 Jul 24. 2024

엄마는 날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솔직해진다면 말이야.

  10년 동안 나의 어머니는 늘 내가 상담을 그만두기 원하셨다. 얼마 전 상담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도 연락이 왔다.   


  '오늘도 심리 상담 했니?'

  '응'

  '언제까지 하는 거니?'

  '정해진 시기는 없어. 그냥 하는 게 마음이 편해서 하고 있어.'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다. 네가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힘내.'


  예전부터 난 어머니가 상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싫었다. 엄마의 의도와 별개로 엄마를 속상하게 만드는 딸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상담을 종결해야만 엄마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어머니는 내 상담 사실을 처음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며칠을 제대로 잠을 못 주무셨다고 한다. 시일이 지나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으시던 어머니. "사실 네가 상담소 다니는 걸 알게 됐어. 무슨 이유로 다니는 거니? 걱정이 많이 돼."


  "나 중학생 때 기억나? 집 근처에서 어떤 남자가 쫓아와서는 자기 말대로 안 하면 칼로 찔러버린다고 협박한 거. 그래서 경찰이 왔던 거. 근데 잡지 못했던 거. 그때 이후로 왜 나한테 괜찮냐고 안 물어봤어?"

  "경찰이 가고 나서 그 일에 대해 다시 물어봤었어. 사실 엄마도 시간이 오래 지나서 괜찮냐고 물어봤는지까진 잘 기억이 안 나. 그런데 그때 얘기를 꺼내자마자 네가 그 일은 생각하기도 싫으니 물어보지 말라고 소리쳤어. 그 뒤로 아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어. 그것 때문에 다니는 거였어? 엄마는 몰랐어. 시간이 지나면서 다 괜찮아진 줄 알았어."


  십수 년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해리 현상이라고 하던가, 기억에 상실이 온 걸. 그런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야기 전개를 위한 극적 소재로만 쓰이는 건 줄 알았는데.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엄마의 이야기는 내 기억에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일 이후 약 일이 년간의 기억도 드문드문 불투명했다. 머릿속에 얼키고섥힌 희뿌연 실뭉치들이 어지러이 놓여있는 느낌이라고 하면 혹시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엄마는 진짜 그때 내게 괜찮냐고 물어봤을 수도 있었을까? 단지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묻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일이 년도 아니고 한평생 그 말을 안 꺼내실 수가 있지. 정말로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셨던 건가? 머릿속이 뒤엉키며 혼란에 빠졌다. 어머니는 이어 말했다.


  "상담 그거 안 다니면 안 돼? 나랑 이야기하면서 풀어보자."


  그럴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차마 이야기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들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성추행을 당한 일, 대중교통에서 모르는 남자가 날 만진 일, 길을 걸을 때면 늘 불안에 휩싸여 혹여나 또 무슨 일을 당할까 수십 번씩 뒤를 돌아보던 일, 택시조차 마음 편히 타본 적 없던 일, 화장실에서도 마음 놓고 볼일을 보지 못했던 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두려움이 앞서 연애를 시작하지 못했던 일, 모든 스킨십은 다 두렵고 더럽게 느껴지던 일, 어떤 이유로든 집에 남자가 찾아오면 온 신경이 곤두섰던 일, 혼자 집에 있을 땐 사람이 와도 일부러 없는 체 문을 열어주지 않던 일, 대중매체에서 성범죄 뉴스가 나올 때면 꾸역꾸역 주변에 티 내지 않고 감정을 누르던 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마치 나를 향한 것처럼 느껴졌던 일, 학교에선 수업을 듣다가 문득 '저 교수님도 남자이니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뒤에선 더러운 짓 하고 다닐지도 모르지.' 하며 이유 없이 피해 의식으로 사람을 낙인찍던 일, 잘 되어가던 남자와 스킨십을 하게 됐던 날엔 설렘 이전에 날 만졌던 그 새끼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그를 밀쳐버렸던 일, 그 뒤 자책감과 수치심, 우울, 좌절감, 미안함에 갇혀 얼마간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일 등. 이 외에도 이루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사춘기 시절 이제 막 자아가 형성되어 가던 중요한 시기에 사고처럼 닥친 일은 이후 내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하물며 난 아버지와 오빠 앞에서도 온전히 안심하지 못했다. 그들도 가족이기 전에 "남성"으로 느껴졌으니까. 이 모든 걸 어떻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엄마라면, 감당 가능할까? 엄마는 이런 마음을 느껴본 적 있어? 나를 정말 이해할 수 있어?

  휘몰아치듯 몰려오는 생각의 틈 사이에서 겨우내 정신을 붙잡고 완곡하게 돌려서 대답했다. "사람들이 전문가를 찾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전문가와 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라고.


  어머니는 한동안 극도로 불안해했다. 존재의 뿌리가 뒤흔들린 듯 한순간에 무너져선 갈 길을 찾지 못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좌절했다. 의지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용기 내어 말한 거였는데. 나보다 엄마가 무너지면 어떻게 해. 지금 난 혼자 서 있기도 힘든데. 제발, 엄마.


  나를 너무 사랑해서였을까, 나와의 경계가 흐려서였을까. 걱정과 불안이 극에 달했던 어머니는 내가 혹시 이상한 곳에 다니는 건 아닌지조차 의심하셨다. 어머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한 번은 상담소로 같이 향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의심을 완전히 지우진 못하셨는지 어느 날엔 느닷없이 내게 "혹시 너...... 거기서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건 아니지? 내가 어제 뉴스를 봤는데 이상한 곳에 상담을 다니던 사람이 세뇌당해서 자살했다고 하더라고."

  그런 뉴스는 도대체 어디서 보신 건지 모르겠다. 어느 날 상담을 끝내고 집에 와 문을 열자마자 무슨 일이라도 이미 내게 생긴 양 달려와서 동공이 흔들리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떤 날엔 왜 굳이 안 좋은 일을 이제와 떠올리려 하냐며 그만뒀으면 좋겠단 의사를 내비치시기도 했다. 나를 위해서, 내가 걱정돼서라고는 하셨지만 '사실 내가 상담을 그만둬야 엄마의 마음 깊은 곳 불안감이 해소되어서 그런 건 아니고?'라는 질문이 마음 한 켠에서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를 위해서였다면 그저 묵묵히 날 응원해주셨어야 했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손을 잡고 따뜻하고 든든하게 함께 걸어가 주는 엄마였다. 그러나 상담 이야기를 꺼내실 때면 늘 엄마의 목적은 “그래서 언제 끝나니?"였다. 힘내라는 말은 그 주제에 대한 답을 듣고 나서야 따라왔다. 난 도저히 엄마 앞에서 마음이 편치 못했다. 차라리 "요즘엔 어떤 이야기를 하니?"라는 질문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이뤄주지 못하는 딸이라는 생각은 죄책감과 불편함을 불러왔고 그럼 난 엄마가 겨우 어렵게 꺼낸 주제 앞에서 또다시 입을 닫았다. 그러면서 되려 엄마를 다독였다. "엄마, <금쪽상담소> 보지? 그런 것처럼 거기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오는 거야. 건강을 위해 운동하듯 마음도 관리하는 거야. 엄마도 전에 같이 가봐서 알잖아. 이상한 곳 아니고, 심각할 것 없으니 그렇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한 적이 없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이 있는데, 초등학생 때였다. 특별할 것 없던 사소한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엄마와 집을 가던 길 함께 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쾅! 하고 작동을 멈췄다. 순간 어머니는 패닉이 왔다. 불행 중 다행일까. 마침 얼마 전 학교에서 안전교육을 받은 터였다. 불안에 휩싸인 어머니를 보자마자 어렸던 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극도로 침착해졌다. 차분히 교육 내용을 기억해 내 더듬더듬 비상벨을 찾아 눌렀고, 안전 요원이 올 때까지 괜찮을 거라며 어머니를 되려 다독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그날의 나를 주변에 자랑하며 칭찬하셨다. 너도 많이 무서웠겠다는 이야기나 혹시 놀라지 않았냐는 질문 따윈 없었다. 그때 난 고작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렇게 내 감정에 전혀 무심하다가도 내가 힘들 때면 나보다 더 무너지시곤 했다.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거나, 극도로 경계가 사라진 채 부담스러울 만큼의 관심을 기울이거나. 차라리 하나만 했다면 좀 덜 혼란스러웠을까. 언젠가부터 무의식적으로 힘든 이야기는 꺼내지 않게 됐다. 흔히 이야기하는 의젓하게 잘 자란 어른. 그게 나였다.


  이제와 엄마에게 "나 사실은 이런 일들로 아파. 그래서 상담을 받아왔던 거야."라고 말하기 시작한다면 엄마는 과연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을까. 나보다 속상해하며 또다시 부서지진 않을까. 혹여 전보다 더 심하게 바스러지면 그땐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무너지는 건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주저앉는 걸 보는 건 왜 이렇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걸까. 내가 부모가 되면 우리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원래 부모란 아이보다 더 무너지는 존재인가. 의지가 되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필요할 때 엄마에게 기댈 수가 없었을까. 어째서 엄마를 떠올리면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 걸까.

  스스로 만들어낸 관념인지 실재하는 관계인지 그 어딘가의 사이에 마음이 응어리져 출구를 찾지 못하는 건지. 어지러운 생각들 속에서 답답하고 슬프다. 엄마에게 내 속내를 열어 보이고 싶은데, 그러면 이번에도 엄마의 짐까지 또 내가 같이 견뎌내 줘야 할 것 같아서 버겁다. 내 삶이 아주 조금만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가 좀 더 강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 의지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오늘도 난 엄마를 지켜내려 입을 닫는다. 언제쯤 나는 솔직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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