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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를 시작했다.

[마음의 허락] 묵은 감정의 정리

by 리솜 Jan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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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년 넘게 묵어 있던 방 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떠올려 보면 대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극도로 방 안이 지저분해져 갔던 것은.

  어릴 때도 퍽 청소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무의식을 외면해 왔을 땐 '취업 후로 에너지가 없어서. 힘드니까.'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설득해 왔다. 꽤 납득할만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의 방에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을까? 불가할 것 같았다. 아무리 나를 사랑해 마지않는 이들에게조차도 차마 내보이기 부끄러울 정도로 더러운 나의 방. 시간이 지나 알게 된 건 채 소화되지 못한 감정들이 방 안의 쏟아질 듯한 물건들로 나타나 버렸다는 거였다.


  방 안 곳곳을 물끄러미 살펴보다, 깊이 미안해졌다. 이 지경으로 나를 방치해 온 나에게. 사랑하는 손님조차 초대하지 못할 이 어지럽고 지저분한 환경에 긴 시간 머물도록 허락한 나에게. 동시에 슬펐다. 얼마나 아팠으면, 누군가에게 티도 내지 못한 채 묵묵히 자신의 공간을 더럽혀가며 오랜 시간 스스로를 방어해 온 걸까.

  어쩌면 그 누구도 내 안에 들이지 않기 위해 사용하지도 않을 쓰레기들로 나만의 벽을 산처럼 쌓아 올려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더러운 걸 본능적으로 싫어하니까. 역설적으로 자신을 때 묻히며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 왔다. 그래야만 했다. 나를 드러내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해서나마 여리디 여린 자아를 보호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공간이 깔끔해져 간다. 하루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한 평, 아니 반 평의 공간에만 이라도 손을 닿게 한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분별한다. 개운해진다. 불필요한 것이 빠져나간 자리엔 새로운 여유가 머문다.  


  어떤 무의식의 변화로 살아온 세월을 정리할 힘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지는 스스로와 천천히 대화 중이다. 질문을 던지고선, 마음이 원하는 속도대로 걷는다. 그러다 나조차 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닫아둔 비밀의 방이 나타나면 이내 함께 손을 잡고 용기 내어 문을 연다. 마주한 감정의 무게만큼 방 안엔 공간이 생겨난다. 그렇게 마음이 허락해 주는 만큼만, 편안한 슬픔으로 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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