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착길 Nov 07. 2020

촉박한 정리

초능력이 나오는?


오후 네 시에 올 둘째가 친구들을 초대한 날.




이틀 전, 대뜸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자며 유치원 버스에서 내린 뒤 떼를 쓴다. 오빠 친구는 가끔 집에 와서 놀다 간 적이 있고 자기도 친구 집에 놀러 간 적도 있는데 우리 집엔 친구들이 놀러 오지 않았다고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집엔 이미 오빠의 친구가 와 있던 터라 갑자기 둘째의 친구들을 데리고 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면 첫째도 둘째 친구들도 썩 즐겁기가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하필 갑자기 춥고 바람 심해서 밖에서 놀기도 힘든 날이다. 무엇보다 집 엉망이고 아이들 먹일만한 간식도 없던 터라 엄마는 대략 난감하다.


그저 울기만 하는 둘째를 친구들이 달래면서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도 꿈적 않은 채 울음그치지 않는다. 일단 날씨도 안 좋고 아이는 울기만 하니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꾸러기 정거장으로 아이를 안고 들어 간다. 서럽게도 울기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걱정이 생긴다. 어떤 아기와 할머니께서 문을 열고 들어오셔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작년에 절절히 친했던 단짝 친구가 이사 간 후 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지금처럼 울었다. 아무리 달래도 멈추질 않아 친구네가 이사  후 서운했던 엄마도 같이 울었다. 한 10분 이상을 그랬다. 그때랑 비슷하게 울며 멈추지 않기에 '심상찮은 일이 유치원 오가는 사이있었. 친구들은 신나게 내렸는데 우리 아이는 왜 이럴까.' 날씨을씨년스럽고 마음은 싸하다.


아무리 달래도 멈추지 않을 땐 아이보다 한 발 앞서 걷는다. 울음이 멈추지 않아 기다리는 친구 집에 갈 수없다. 난처하다. 오는 동안 울음은 계속엄마는 단호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집 안에 들어와서도 운다. 왜 이럴까. 침대에 기대어 앉아 아이를 안은 채 엄마는 묻기 시작한다.

"오늘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럼 선생님한테 혼났어?" 역시 아니란다.

"음.. 친구랑 싸웠어? 자유선택활동 못했어? 버스 타고 오면서 힘들었어? 추웠어?" 모두 아니란다.

"그럼 정말 친구 초대 못해서 그래?"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얼마나 초대하고 싶었으면 하원 후 집에 와서까지 울까. 엄마는 쓰러워 아이를  안아다.


"친구들이 모두 모이는 목요일에 꼭 초대하자. 오늘은 엄마도 준비 안 고 오빠한테도 말하지 않아서 그랬어. 그날은 오빠랑도 얘기하고 엄마 집도 정리해 놓고 준비해 놓을게." 하니 울음이 잦아든다.

"혹시 친구들이 그날 상황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럼 다음에 또 초대하자." 하니 끄덕이면서 울음을 멈추고 스르르 잠이 든다. '이토록 초대하고 싶었으면 진작 말을 해주지.' 엄마는 아이를 더 꼭 안아준다. 그렇게 30분을 울더니 2시간 이상을  잔다. '오늘 날씨가 갑자기 추워서 졸렸구나!' 졸리면 감정조절을 잘 못하던 둘째였는데 서럽게도 눈물을 떨구는 아이를 보니 다 잊어버린 것이다.


새끼손가락 걸고 초대 약속을 한 뒤 단잠에 빠진 아이는 푹 자고 나서 맑게 씻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저녁밥 맛있게 먹는다. 희망이 생겨서 일까?




그래서 오늘 오후 둘째의 친구들이 오기로 했다. 아침 신나게 등원 버스에 올라타고 어른들께도 씩씩하게 인사한다. 차를 태워 보낸 뒤 엄마집에 돌아오자마자 오빠 방부터 정리한다. 둘째의 친구들이 거의 남자 친구들이기에.


그동안 첫째의 방은 스스로 치우도록 해서 깊이 관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태로 남자 친구들을 맞이 할 수 없다. 뒤죽박죽 고장 난 장난감과 이것저것 널브러진 책상을 보여주기도 좀 그렇고 아이들이 장난감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 때문이다. 그동안 피곤이 많이 쌓이기도 해서 아이에게만 맡긴 방 정리, 잘못되었음을 실감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정리하는 방법은 알려야 했구나!'

일단 커피 한 잔을 빠르게 마신 뒤 블루투스로 방탄소년단 노래를 재생한다.

"자, 한 번 해보자. 난 할 수 있다. 난 할 수 있어!"

라고 외치며 정리를 시작해서 2시간이 지난 뒤에 웬만큼 비워내고 집어넣고 진열하게 되었다. 이제 방 하나 마쳤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기우뚱하려 해서 잠시 앉았는데 벌써 점심 때다. 첫째 먹을 것을 챙겨주고 태권도장에 보내자마자 둘째의 방부터 시작해서 거실과 부엌 정리 그리고 전체 청소기 돌리기까지, 이 모든 것을 1시간 반 안에 끝냈다.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다. 뭐든 빨리 하는 걸 잘 못 해서 설거지, 빨래 널고 개기, 밥 먹기, 걷기도 천천히 하는 나인데.


지막으로,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난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라고 주문을 외운다. 둘째의 하원 시간이 임박하고서야 남은 설거지까지 거의 마칠 수 있었다. '! 내가 어찌 이걸 다 해냈지?'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어 깨우면서 맞이하러 다가 살짝 기우뚱한다. 래도 어쨌든 미션 수행 완료! 기분이 참 묘하게도 좋다. 그동안 너무 나태하게 지내와서 그런지, 박한 시간 안에 간절히 끝내고 싶일을 성공한 기분이 꽤 짜릿하다.




첫째와 함께 아침에 사놓은 빵과 아이들 음료를 준비해 두기도 해서 마음 편하게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드디어 집에 온 남자 친구 셋은 둘째와 함께 이 방 저 방 왔다 갔다 즐겁게 놀다 갔다. 초대 놀이를 끝낸 둘째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고 밤늦게 들어온 아빠가 알아본다. 바로 오늘 이러이러해서 그렇다 . 늘의 촉박한 정리 이야기를 듣더니 "당신은 베짱이 엄마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난 베짱이 같은데..." 어쨌든 기분이 좋다. 둘째 친구 엄마들이 오늘따피곤해 보인다고 걱정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오늘은 둘째 덕분에 나도 빠를 수 있다는 걸 체험해 본 날이기 때문이다. 


'다음엔 어떤 걸 도전해볼까? 운전?' 하는 용기가 생긴 날이다.



이전 06화 가을 아침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