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초록의 모닝글로리 스프링 노트에
'착길의 비망록'이라고 이름 붙인다
1994년 어느 밤 10시 24분 42초부터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글을 쓴다고
비장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선포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착길은 꾸준히 노력하여 이끌어 갈 것을
마음속 깊이 약속한다'라고 덧붙이고는
영원하길 빌며 붉은 도장까지 찍는다
그리고 맨 아래 당구장 표시를 하고선
'(착)할 선 (길) 영' 이러해서...라고
조그맣게 색색으로 적어 놓는다
두꺼운 표지 안쪽엔 교정에서 주워온
꽃잎을 다섯 잎씩 모아 붙여 놓는다
세상에 나오니 오빠와 언니가 있었고
자연스레 언니 이름 첫 자와 같으면서도
다른 이름을 아빠가 지어주셨고
그 이름으로 불리다가 열여섯 어느 날
스스로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본래의 것에서 멀지도 않게 만들었지만
아주 다른 내가 된 기분이 들었던 그때
내가 만든 이름을 나에게 불러주면
학교에 제출하던 일기장과는 다른
내가 되어 저 아래의 마음이 올라왔다
서툴고 부족했지만 참 솔직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 펼쳐보면 부끄럽지만
그래도 그 순간의 진심이니 소중하다
지금 나의 브런치도 나중에 다시 보면
얼굴 빨개지며 부끄러워지겠지
북으로 발행한 글은 고칠 수도 없고
그래도 그 순간의 진심이니
나에게만큼은 소중한 순간들이다
아빠가 지어 준 한자어의 뜻 첫 글자를 모은 그 이름이 마음을 글로 표현할 때 늘 함께 하다,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그 이름이 좀 별로라는 가까이 사는 분의 말에 서운하고 마음이 상했으면서도, 다른 이름을 지어볼까 흔들리다가 나와 그분이 좋아하는 앤이 생각났고, 차마 앤이라 붙이지 못하고 앤느라고 덧붙였다. 어떻게 보이나 한 번 적어본다는 게 한 달 동안 꼼짝없이 착길앤느가 되어야 했던 나만의 황당 사건.
며칠 뒤 앤느를 덧붙인 이유가 필요했고 앤을 사랑하는 나로선 앤에게 동의를 구하면서 스스로 일단락 지은 듯했는데... 아뿔싸! 착길앤느라 이름 걸고 쓰는 시간이 불편하고 착길앤느라 불릴 때 간지럽고 부끄럽기도 하면서 이건 아니구나 쉽게 바꿀 게 아니구나 하는 오묘한 기분 때문에 한 달간 내가 아닌 듯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과 액세서리를 걸치고 다니는 기분에 썩 편치 않았던 한 달의 추억.
※ 작가님들께 ※
착길로 돌아와도 될까요?
혼자 쓰고 보는 일기장도 아닌데 이랬다 저랬다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름에 연연하는 저의 민낯을 보일 수밖에 없어 심히 부끄럽습니다. 앤느를 붙이면 없던 상상의 힘이 샘솟을 줄 알았거든요. 착길은 착길로 앤느는 앤으로, 본래의 이름으로 생각하고 쓰고 살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착길로 돌아오겠습니다. 꾸벅*^^*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 엄마 아빠가 주는데 저는 제게 본래의 이름을 주고 싶습니다.
작가님들께서도 크리스마스 선물 받으셨나요? 행복하고 따뜻한 연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