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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오리 Jul 05. 2024

시대, 주체적 여성 그리고 현대인

소설 <제인에어>

  영국 문학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제인 에어』는 시대의 새로운 여성상을 담은 작품으로서 큰 주목을 받아 온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제인 에어가 여성이란 점을 제하고도, 누구보다도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왔지만, 주체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점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 텍스트에서는 해당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과 개인적 감상에 관해 서술하여 작품이 주는 중요한 메시지와 의의를 정의하고자 한다.


흥미로운 시대, 빅토리아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한다. 시대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빅토리아 여왕이 지배하던 당 시대는 세 가지의 큰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 시대의 특징을 『제인 에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인종차별주의’이다. 당시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영국으로 유입되곤 했는데, 영국인들은 외국인인 아일랜드인을 매우 혐오했고, 야만적이고 저급한 존재로 보았다. 더 나아가 아일랜드인을 ‘침팬지’ 정도로 바라보고, 그들이 지닌 특징이나 외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제인 에어』에서도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이 특징이 나타나곤 한다. 작품 속 제인 에어와 결혼하게 되는 인물이자, 손필드의 주인 로체스터를 아일랜드인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첫 등장에서부터 로체스터는 “어두운 얼굴”(“dark face”)(JE 145), “양미간을 찌푸린”(“heavy brow)(JE 145), “넓고 칠흑 같은 눈썹”(“broad and jetty eyebrows”)(JE 151), “움푹 들어간 눈”(“deep eyes”)(JE 204), “콧구멍”(“full nostrils”)(JE 151), “넓은 가슴”(“unusual breadth of chest”), “팔다리와 균형이 맞지 않는 신체”(“a body disproportionate to his length of limb”)(JE 163-64)를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로체스터의 외형에 관한 디테일들은, 즉 그가 개인적 기형이라고 말하는, 셀린느 바렌스(Celine Varens)가 “추함”(“deformities”)(JE 157)이라고 말하는 디테일들은 『제인 에어』가 씌여진 당시에 증가하고 있었던 아일랜드인에 대한 침팬지 이미지와 유사하다(Curtis, Apes and Angels 29)(김경순, 2013). 이 묘사는 후에 등장하는 영국인 세인트 존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 인종 차별적 요소로 나타나며, 로체스터의 성격이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보다는 감정적이고 고집이 센, 어찌 보면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다는 점에서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 만연한 인종 차별적 특징이 묘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제국주의도 시대의 특징 중 하나이다. 대영제국이었던 영국의 상황은 신분과 관련해 묘사되는데, 로체스터가 계급의 전반적 변혁이 아닌 부를 축적함으로써 신분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인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이 낭만주의로의 사조 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특징임을 느낄 수 있다.

  작품과 관련한 시대적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부장제로, 이러한 시대에서 여성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또한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제국주의로 인한 빈번한 전쟁 등은 남성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이는 가부장적 사회로 이어지게 된다. 그 속에서 여성은 부차적인 인간의 임무를 수행하며, 여성과 남성의 지위의 동등성에 대한 운동이 있기 전까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얌전하고 수동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이때 더욱 심화하여 나타나게 된다. 여성이 인간으로서 여겨지는 순간은 결혼과 임신, 출산의 과정뿐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빅토리아 시대가 갖는 독특한 특징은 『제인 에어』의 저자인 샬럿 브론테와 더불어 그의 여자 형제인 에이미 브론테, 또 저명한 작가 제인 오스틴과 같은 여성 작가들의 활동이 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 그들의 작품이 인정받았다는 데에서 빅토리아 시대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여성 - ‘I’로서의 여성     

  이러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제인 에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제인 에어일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적 사회 가운데 우뚝 선 여성’으로서 제인 에어는 작품을 넘어 당대 여성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 작품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인물의 유년기에서 그녀가 혼인하게 되는 과정까지의 인물의 변화나 성격 묘사가 그들의 마음을 끌었으리라 짐작한다.

  먼저 제인 에어의 유년 시절을 살펴보면, 그녀는 어떤 짐승의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아라는 그녀의 특수적 상황과 그녀의 양육자가 그녀를 정신적으로 학대하며 양육한다는 데 있어서 그녀가 당시 시대가 요구했던 정숙한 여성(proper lady)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는 어려웠음이 틀림없다. 오히려 이 길들여지지 않고, 남보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반항하는 과정이 당시의 새로운 여성상으로서 다가오는 시발점이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반항적인 제인 에어를 점차 변화시키는 데에 있어 여성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제인이 기숙학교에 들어가 헬렌이라는 친구를 만나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최초로 구성하게 되면서, 그녀는 인간 사이에서 자신이 행해야 할 태도들을 점차 정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 기숙학교의 템플 선생의 등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최초의 계기가 된다. 헬렌에게서 배운 소통의 방식을 템플 선생과의 관계에서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편집부, 2015). 정숙한 여성, 주체성을 지니지 않는 여성으로 교육하기 위한 기숙학교에서의 이 두 중요한 관계는 제인 에어가 후에 주체적인 여성으로 사는 데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녀는 기숙학교에서 나와 로체스터의 손 필드에서 가정교사 일을 맡게 되는데, 이때 이후로 제인 에어의 이성적인 면모가 더 잘 드러난다고 느낀다. 제인 에어의 인생에 있어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로체스터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지만, 그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래 모습을 지키려 고뇌하고 노력하는 제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작품 속에서 로체스터가 많은 장식품을 선물하며 제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물품이 자신이 지닌 사랑이라는 감정에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이기 싫어 거절하고, 그가 자신을 그런 인간으로 보았다는 사실에 실망한다는 점에서도 자신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졌고,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려 노력한다는 모습이 묘사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제인 에어라는 인물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I’로서의 여성으로 존재한다. 남성보다 덜 이성적이고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여성이 아닌, 당당히 ‘I’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여성 말이다. 또한, 이 작품이 제인에어를 주인공으로 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여성 주인공이 주어 ‘I’를 반복하여 이야기의 시작과 마무리 모두를 채운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로체스터와 결혼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나와 결혼했다.’가 아닌 ‘나는 그와 결혼했다.’처럼 한순간도 본인이 주체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서술방법이 ‘I’로서의 여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이 ‘제인 로체스터’가 아닌 ‘제인 에어’인 것도 제인 에어는 언제나 누군가에 예속되거나 휘둘리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과 주체성에 따라 움직이는, ‘그녀’, ‘그 여성’ 등으로 주변에 잠시 머무는 인물이 아닌, ‘I’로서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시대적 인물과 작품의 한계     

  현대에 들어 많은 사람이 이전에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그러한 현대적 관점에서 제인 에어는 완벽하게 주체적인 여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당 시대를 고려했을 때, 새로운 여성의 등장이었지만, 여권신장이 많이 이루어진 현대의 시각에서는 인물의 한계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일단 제인 에어가 공부한 ‘로우드 기숙학교’ 자체가 가부장적 시대의 사상을 주입하는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제인 에어가 이러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것을 강조하게 되는 환경적 요인이기도 하나, 그 인물 자체도 시대의 전통적 교육을 받았다는 데에서 이후 인물에 행동에, 현대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새롭지 않은, 시대의 특성이 묻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제인 에어가 교육을 받은 후 가정교사가 되었지만, 이 마저도 당대 여성들의 보편적 직업 중 하나였다. 가정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학생을 교육한다는 점에 있어서 주체적이고 지위를 가진 인물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그 가정 주인의 하인과도 같은 지위를 지닌다는 점에서 완전한 주체성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주인과의 결혼 직전까지도, (물론 전 부인에 의해 무산되었지만), 제인 에어는 그 상하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독자로서 완벽하게 동등한, 혹은 남성 주인공보다 어느 정도 높은 관계적 지위를 지니게 된 시점이라 느끼는 부분이 남자주인공이 장애를 얻은 이후라는 점에서 아쉽게 느껴진다. 제인이 손 필드를 떠나 우연히 자신의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어린 시절 받지 못했던 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로체스터와 동등한 지위가 형성된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제인이 로체스터의 전 부인이 불을 지른 폐허가 된 집과 그로 인해 시력을 잃고 팔 한쪽도 잃게 된 로체스터를 만나게 된다. 이때 이후로 둘의 사이가 비로소 동등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저런 조건 없이 동등한 관계가 형성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모글렌은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로체스터가 한쪽 팔을 잃은 것은 상징적인 거세이며 남성으로서 로체스터가 갖는 힘, 즉 사회가 법을 통하여 남성에게 부여한 힘의 박탈을 상징하는 것.(이예라, 2019)” 하지만 현대에서 페미니즘, 혹은 여권신장이라는 개념이 남성의 지위를 박탈하는 개념으로 자주 오인된다는 점에서, 유산 상속과 더불어 불구가 된 남성 등장인물이라는 설정은 유쾌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당시에는 너무나 견고했던 남녀 지위의 한계를 다루는 데 있어 좋은 방식이었다고 생각은 하나, 현대인들이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작품의 한계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러한 시대적 인물과 작품의 한계는 그 시대를 더욱 잘 보여주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결국 제인 에어가 작품에서도, 독자들에게도 주체적인 여성으로서 남는다는 점이 더욱 인물을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각 시대의 제인에어     

  이전에 어떤 강연에서 현대에 들어 유관순 열사와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그 시대가 아직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주 많은 유관순 열사를 스쳐 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들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유관순 열사처럼 온몸을 다 바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제인 에어』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빅토리아 시대의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인 제인에어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빅토리아 시대라는 특수한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이 작품은 스스로 본인이 어디에도 쓸모가 없고, 책 속 주인공들이나, 매체로부터 만날 수 있는 많은 사람이 사람들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자신은 행사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건 지금 시대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라고, 당신을 위한 때는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제인 에어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전하고 희망을 전해주듯, 본인도 누군가에게 제인 에어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각 시대의 제인 에어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앞에서 언급한 유관순 열사처럼 국민 모두의 제인 에어로 남은 사람도 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롤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주체적이고 강인하며, 누구보다 자신을 잘 이해하는 그런 인물들도 있다.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제인 에어는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자신이 모르는 때에 누군가의 제인 에어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러한 본인을 사랑하길 바란다. 현대의 많은 사람, 주변을 둘러보더라도, 자신을 깎아내리고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은 남들의 이야기에 너무 휘둘리다 자살과 같은 본인을 해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공인들의 자살 소식이나, 청소년 우울증, 자살과 같은 문제들로 말이다. ‘나는 이 시대의 제인 에어다.’ 그런 마음으로 본인을 사랑하고 본인의 삶을 살고, 내면이 단단한 인간으로 모두가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제인 에어에게 헬렌이나 템플 선생님, 뒤늦게 만난 친척, 그리고 로체스터 같은 소중한 사람들이 항상 함께했듯이, 우울감과 취업 등과 같은 문제로 고통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맺음말     

  주체적인 여성, 제인 에어는 작품이 출간된 이후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것이 시대의 흥미로운 특징을 담아서일 수도, 제인 에어라는 주체적인 인물이 주인공이어서 일 수도 있고, 또는 현대의 여성들이 여전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서 일수도 있지만, 현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요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데에는『제인 에어』 영화를 각색한 모이라 부피니(Moira Buffini)가 밝힌 것처럼 주어진 운명과 타협하지 않는 제인의 불굴의 의지와 내면의 강인함이 여성뿐만 아니라 제한되고 불안한 삶을 사는 모든 이에게 주는 희망 때문이다(이소영, 2020). 현대인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한 현재의 삶에 두려움을 느낀다. 모이라 부피니의 말처럼 제인 에어는 그러한 현대인들에게 그 불안감을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는 듯하다.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고민할 것들, 불안감, 슬픔, 좌절, 행복과 같은 여러 감정을 제인 에어의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말이다. ‘내면의 강인함을 기르자, 나를 알고, 본연의 나를 지키려 노력하자.’ 제인 에어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참고 문헌     

김경순(2013),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에 나타난 빅토리아시대의 인종차별주의와 식민지 논리, 비교         문학, 제61집.    

 

이소영(2020), 영미문화를 통해 본 여성문제: 교양과목으로서 제인 에어 접근하기」, 『외국학연구, 제         52집.     


이예라(2019), 「제인 에어에 나타난 제인의 이중적 자의식의 구현」, 영어영문학, 24(2).     


편집부(2015), 주홍 글씨와 제인 에어에 나타난 두 여주인공들의 능동적인 삶, 미래영어영문학회 학           술대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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