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이기적인 나,
남에게 줄 수 있는 건 뭘까?
주일 아침, 교회에 도착했다.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
아픈 자녀를 돌보는 가족들.
기도 제목 하나하나가 무거웠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어렸을 때부터
손해 보는 것을 싫어했다.
새 신발을 사면 밑창이 닳을까 봐
본드를 발라 신었고,
전자기기를 사면 흠집 나지 않게
케이스부터 씌웠다.
자동차는 늘 관리하면서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왜 그랬을까?
손해 보기 싫어서였다.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산 것들이니,
그 가치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조금이라도 더 아껴서 깨끗하게 쓰고 싶었다.
필요가 없어지면 다시 팔고,
그 돈으로 새것을 사는 게 내 방식이었다.
그렇게 해야 속이 편했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이
늘 나를 움직이게 했다.
며칠 전, 장기기증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 글을 읽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잘 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몸이 간절히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내가 떠난 뒤, 이 몸을
누군가에게 기증하는 것은
내 삶의 마지막을 의미 있게 만드는
선택이 되지 않을까?
이 생각을 하고 나니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 몸을 더
잘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남길 몸이라면
더 건강하게 쓰고, 더 소중히 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몸을 기증한다는 이유로
좋은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몸을 아끼며 살아가면 나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
신발, 핸드폰, 자동차도 그렇게 아끼며
사용하는데, 내 몸은 그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장기기증도 겉으로는 남을 위한 선택 같지만,
결국엔 나를 위한 일이었다.
내 몸을 관리하고, 소중히 다루고,
그렇게 사는 이유는 다 나를 위한 것이다.
내 몸을 남기겠다는 결심도
결국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이 몸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쓰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니 조금 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웃음이 났다.
'나는 정말 뼛속까지 이기적이구나.'
착하게 사는 것도,
열심히 사는 것도,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며 사는 것도
처음엔 남을 위해서라고 믿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모든 것도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
착하게 살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열심히 살면 내가 원하는 걸 얻는다.
남을 배려하면 더 많은 신뢰를 얻고,
양보하면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
나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그 이기심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위한 삶이 남을 위한
길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 이기심은 더 이상 나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삶을 아낀다.
나의 작은 선택과 노력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