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면서 항상 지역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춘천이라는 중소도시로, 그리고 서울이라는 대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도시는 정말 흥미진진한 곳이었다.
하지만, 마당이 있는 집이 항상 그리웠다. 마당이 있어야 개도 기르고 채마밭도 운영하고.. 그런 상상을 많이 했다. 어렸을 때 살았던 그런 곳으로 언젠가는 가서 여유롭게 살 것이라는...
그리고 지역개발회사를 다니면서 귀농귀촌 교육과 지역개발 컨설팅 업무를 하다 보니 지역으로 내려올 구실들을 찾게 되었다.
귀농은 솔직히 힘들어 보였다. 땅도 있어야 하고, 부가가치 있는 업(業)이 되려면 시설물 비용도 있어야 하고...
사실 농사는 어렸을 때 엄마 따라서 밭에 다니던 기억에 너무 힘든 기억이 있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사실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기미가 오르고 검게 변할 내 피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30대 초반에 강화도로 귀농한 친구를 어느 날 만났는데, 너무 피부가 노화되어 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 무렵 나는 피부과에 일주일에 두 서 너번 다니면서 피부에 공을 들이던 시절이다. 유독 햇빛에 잘 그을리던 나는 피부에 예민해서 손과 팔에 기미 올라오는 것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긴팔 옷을 고집하던 시절이다. 그 친구를 보면서 절대 귀농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농사를 짓지않고 지역으로 내려갈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농산어촌 지역 개발 업무.
일주일에 3~4회 지역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지역을 알아가고, 사업을 컨설팅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지역에서 지역개발업무를 하는 구인 광고를 보고 귀촌을 결심했다.
행정의 보조금을 받아서 움직이는 조직으로 주민들이 행정에 가기 어려운 문턱을 조금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일은 재미있었다.
주민들과도 친해졌다.
가는 곳마다 주민들은 ‘고맙다, 잘한다’였다.
그렇게 나는 귀촌 정착에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조직의 장이 교수이다 보니 자기 제자를 불러들였다. 지역에선 구인이 힘들다면서.
그러면서 사무실 분위기는 꼬여가기 시작했다. 조직의 장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나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그 제자를 통해 알아보고자 했다. 그는 우리 사무실 직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견이 항상 진리인 듯 우리 사무실 직원들이 일을 못한다고 하면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실 직원들을 믿던 조직의 장은 제자의 말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랩실에서 해야 할 일들이 사무실로 들어오고, 사무실 업무가 아니라고 하면 모두 센터 관련된 일이라며 일이 떠밀려왔다. 처음엔 랩실 업무를 지원만 해주라고 하다가 한 학기가 지나면서 정산부터 정리까지 하는 일까지 밀려왔다. 연구 결과 보고서에는 이름도 못 올리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소한 일들이 쌓이면서 그 제자가 사무실 주변에 오는 것도 싫어졌다. 무슨 트집이라도 잡힐 것 같았다.
지난겨울 한해를 마감하는 회식자리가 있었다. 조촐히 자리하자 해서 행정 담당자 두 명과 센터 사람 몇몇이 저녁을 먹었다. 내년에도 열심히 파이팅하자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가며 내년도 센터 운영에 대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센터장은 뜬금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제자 할래요?”
“아니오”
라고 0.1 초도 기다리지 않고 거절했다.
순간 정적이 돌았다.
당황해하는 센터장을 보며 같이 술자리에 있던 친구가 분위기를 바꾸려 거들었다.
“오~ 쎄구만, 단칼에 거절하고. 하하하하”
순간 아! 내가 심했나 싶은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그래서인가
그날 이후로 월요일 주간회의 때만 되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내 기준에 제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받아주기도, 들어가기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깊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 아닌가..
가끔 이게 충청도 이 지역 특징인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도 지역 성격에 맞추어서 에둘러 이야기했어야 하나?
그 이후 일 년이 지났다.
갈수록 그의 제자는 기세 등등해지고 있다. 센터장이라는 직위를 쥐어주었더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다닌다. 저러다 큰코다치지 싶다.
지난주에는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운영하는 교육의 강사로 불렀더니 수강생들에게 돌아가면서 책 읽기를 시켰다고 한다. 제자라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독이 될지도 모르는데..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도 못하는 사람을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옆에 두는 이유는 뭘까
덕분에 귀촌도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서 요즘 귀촌하려는 사람들, 사무실 직원들에게 농담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우리 동네는 좀 특이하니 교수 밑으로 들어가든지, 벗어나든지 하라고 말한다.
몇 년 전 타 지역 공무원이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 지역은 **교수**교수 아니면 안돼요? 왜 다 그 사람들만 심사위원, 자문위원으로 부르죠?’
이젠 자신 있게 대답해 줄 수 있는데..
그게 다 ‘그들만의 리그’ 였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