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간도 소중한데요...
노후주택 신청받는다는 공지가 나가고 나서 신청일 아침 9시부터 신청자들이 몰려왔다.
몰려왔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9시 출근이라서 9시 즈음 출근하는데 나보다 먼저 와 계신 분들.... 그리고 9시가 되자 한 두 명 일찍 오신 분으로 시작해서 서너 명으로.. 조금 뒤 다섯여섯 명으로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침시간에 그날의 일거리를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가진 나로서는 너무 정신이 없는 시간이었다.
노후주택 신청 서류는 작성할 것이 너무 많다. 게다가 노후주택 신청하시는 분들은 한글을 모르는 경우, 잘 쓰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으며 대필도 안되기 때문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그리고 취약계층이기 때문에 설명도 자세히 해 드린다. 더 자세히 해 드리고 싶은 마음도 더하다 보니 정말 열심히 설명해드린다
기가 빠진다.
더 정신이 없는 이유는 내가 담당자가 아닌데, 사람들은 내가 제일 안쪽에 자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아마 모두 알 것이다. 자리의 권력이라고 해야 하나.. 사무실에서 문에서 가장 먼,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가 안 보이는 자리가 그 사무실의 가장 윗사람이라는 것을.
사회인 초창기부터 그랬다.
자리는 제일 위에 분이 가장 안쪽에 앉고, 가장 문 가 쪽은 신입이 앉는 구조..
결제를 받으러 갈 땐 안쪽까지 가야 해서 항상 떨렸었다. 마치 나의 뒷모습을 보이기 싫은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아침마다 팀의 제일 안쪽에 계시는 부서들의 부서장님께 인사하러 다녔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나에게 직진해온다. 옆의 연구원들이 어떤 일로 오셨냐고 물어도 쳐다보지도 않고, 마치 100m 경주에서 빠른 속도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듯이 온다.
“여기유~, 왜 이제 한댜~ ”
사투리가 가득 묻어 있다.
“무슨 일이신데요?”
나는 알면서도 물어본다.
아침일찍부터 기다리던 그분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아마 많이 기다렸다는 것을 내비치고 싶으셨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9시부터 시작해 6시에 끝나는 나의 업무 시간은 내가 꼭 지키고 싶은 마지노선이다. 지역개발일을 하면 주말이나 퇴근 후, 또는 새벽부터 전화가 온다. 하지만 난 절대 받지 않는다.
지역에서는 날이 뜨거우니 새벽부터 일을 나가신다. 그러면서 그때 생각나서 전화를 하신다. 그게 6시이건 7 시인 건 상관없다. 그리고 저녁에도 저녁 먹다 생각나면 전화하신다. 8 시건 9 시건.. 주말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전화를 받았지만, 어느 순간 받지 않았다. 정말 급하면 또 전화를 할 것이고, 그 순간에 내가 전화를 받는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는 나도 배터리 충전시간이 필요하니까.
사실 시골에서의 삶은 “시간”의 개념을 새로 잡게 하는 경우가 많다.
시계의 오전 오후 표시보다 태양의 뜨고 짐에 따른 시계가 더 사람들의 시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은 보통 저녁 9시에 잠을 청해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나는 12시에 자서 7시에 일어난다. 어찌 보면 그들은 8시간 자는 거고 나는 7시간 자는 것이고 똑같지만, 그들 눈엔 아침이 늦은 나는 게으르다고 한다.
그래서 업무를 하면서도 고민이 든다.
여름의 경우 업무를 보는 나는 9시에 출근해서 연락을 드리면 다들 활발하게 움직이며 너무 늦은 시각이고, 주말도 없는 삶들을 살고 있기에.. 나의 주말도 반납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리나 그러긴에 나도 너무 감정노동을 하고 있어서 나만의 마지노선은 지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기다리다가 9시에 업무를 보는 나를 향해 왜 이렇게 늦게 출근하냐는 질의에 아무 대답도 안 하고, 모른척했다.
당신의 5시부터 시작하는 아침도 소중하지만 7시부터 시작하는 저의 아침도 소중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