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 기준에서 보는 것이었다
오늘은 6시에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어제 11시부터 잠을 청했다. 오늘 주민분들이 선진지 견학을 가기 때문이다.
눈을 뜨니 7시..
아뿔싸!
정신없이 10분 만에 대강 챙기고 출발하였다.
다행히 마을에 출발시간 40분 전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 버스가 10분 뒤에 도착했다
담당 공무원도 또 10분 뒤 도착했다.
햐.. 타이밍 기가 막힌다.
버스에 이동 시 먹을 간식과 물을 싣고 있다 보니 어르신들이 회관에서 나오신다.
역시... 다들 미리 오셔서 회관에서 대기하고 계시다가 버스가 오니 나오시는 것이다.
자 이즈음 되면.. 출발시간은 도대체 몇 시 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출발시간은 8시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출발지인 마을까지는 30분이 걸린다.
사실 출발시간 10분 전에만 와도 되지만, 이 직업을 하면서 항상 1시간 전에 대기하게 되었다.
이유는 농촌마을 주민들의 생활패턴에 맞추다 보니 이런 견학은 8시 출발이라도 항상 한 시간 전에 주민들이 대기하기 때문이다.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있다 보니 노인회장님이 오셔서 “이게 누구야”라며 자주 안 옴을 서운해하신다. 이제 마을에 정이 붙었나 보다.
오늘 일정은 우리 지역에서 경북 영주까지 당일로 견학을 다녀오는 일정이라 아침 8시 출발로 하루가 길 예정이다. 어르신들이 잘 다녀오시려나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다들 그렇듯 집을 떠나기 전이, 여행길에 오르기 전이 항상 기쁘고 즐거움의 정점인 것 같다.
버스에 올라 오늘의 간식을 나눠주다 보니 코리안 타임 분이 계신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아침 출근 차들이 다닌다.
어떤 분이 차 창문을 내리면서 물어본다
“어디로 놀러 가나요?”
“견학 가는데요~”
“근데 우리한테는 왜 연락 안 한데요?”
“마을에서 교육받으러 자주 오셨어요? 그러면 아셨을 텐데”
싸우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버스만 보면 어디 놀러 가시는 줄 아신다.
아침에 만난 분들 모두 그러했다.
시선이 참 무섭다.
사실 오늘 영주 견학은 “놀 러 ”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일단 가는 길도 편도 3시간 넘게 잡아야 할 정도로 멀고, 마을 둘 어보고 오는 일정으로는 날도 너무 더운 7월의 여름이다.
그러나 마을에 일단 대형버스가 들어오면 다들 예전의 자신들이 놀러 간 기억이 있기에 어디 놀러 가는 줄 안다. 그리고 연락이 없었다며 서운해한다.
지역의 마을단위에서는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어버이날, 대동날, 칠석날 등에 마을에 버스를 불러서 어디론가 ‘관광’을 갔다.
버스가 출발~ 함과 동시에 버스 안에는 노래방이 틀어지고, 술과 안주들이 나눠지고, 간혹 버스가 흔들거리게 춤도 추고.. 사실 관광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쓰임이 관광전공자로서 참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지역분들에게 관광은 그런 것이다.
몇 년 전 마을 견학을 가는데 버스 안에서 춤을 못 추게 했더니 몸이 구부정하게 휜 어느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해 주셨다
‘버스 안에서 춤을 춰야 몸이 안 힘든데...’
버스 안에서 도대체 왜 춤을 출까... 그 좁고 위험한 곳에서...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시선으로 그들을 보게 되었다.
농촌마을에서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마음 편히 터트릴 수 있는 공간이 어디 있었을까? 그래도 관광 가면 그날의 행위들은 용인되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도 마음 편히 ‘춤’이라는 행위로 해소하는 것 아닐까?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구부정한 허리를 지닌 할머니의 ‘버스에서 춤춰야 몸이 안 힘든데.. “는 그런 다양함이 내포된 말이 아닐까? 내지는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버스의 흔들림을 바운스 삼아 몸을 리듬에 맡기는 것인가?
그래서 놀러 간다고 연락을 안 해서 서운하다 하신 걸까?
요즘은 버스에서 춤을 출 수 없다. 그래도 간혹 시골길을 가다 보니 앞에 가는 버스가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흔들흔들 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딱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견학을 가는 것이지 놀러 가는 것은 아니니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럴 시간도 없게 힘들게 다니기도 하지만.. 견학 일정을 잡으면 정말 '견학‘ 만 하게, 공부만 할 수 있는 일정을 만든다. 어렵게 하루라는 시간 내서 다른 지역에 배우러 가는 것인데, 참여하지 않은 이들은 ’ 놀러 ‘갔다 왔다고 하니.. 참 억울한 일이지 않겠나.
그래서 정말 놀러 갔다는 소리를 안 듣기 위해 일정을 짠다.
물론 마을분들이 싫어하신다.
거기 가면 뭐도 있고 뭐도 있고, 시장이라도 들렀다 가지.. 등 등
시선이란 무서운 것이다.
시선이 이야기로 바뀌기 때문이다. 마치 기체가 액체가 되어 고체가 돼 듯..
사람들은 나의 기준에서, 나의 시선에 맞춰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이 진리라는 듯. 그리고 마을에선 기체 같던 그들의 시선이, 그들의 입을 통해 액체가 되고, 나에게 이야기가 돌아올 즈음에 고체처럼 기정사실화 되어 있기도 한다.
지역에서 마을 일을 하는데 주민들과 밀착해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 모두를 이해할 순 없지만, 최소한 오해 사지 않게 그들의 시선을 풀어주고 나의 시선에 맞게 그들을 이끄는 게 나의 일, 지역개발사업을 하는 로컬컨설턴트의 역할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