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크령 Oct 13. 2022

독촉전화

“300만원 내놔라~”     


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마을 이장님이 갑자기 전화하셔서 돈을 달라고 하신다.

찰진 욕과 함께 들리는 말 

“왜 우리마을에 돈을 안주냐, 막말로 내 돈인데 왜 너네 센터에서 가져갔냐” 

무슨 말인지 당황해서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인 즉슨 작년에 우리 직원이 도시재생 대학을 하면서 향후 마을에서 소규모 주민공모 사업을 하게 되면 지원해 드릴 수도 있다고 했단다. 이장님은 ’지원해준다‘에서 ’준다‘ 라는 표현에 방점을 찍으셨던 모양이다. 마을 행사를 하면 300만원정도 드니 그 정도 주겠거니하고 생각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아니 이장님 돈을 우리가 가져간 것도 아닌데. 무슨 소리지?‘ 싶었다. 그런데 다른 마을 이장님이 그랬다고 한다. 달라고 안하면 직원들이 가져 간다고.. 


허 허 허 .. 

허탕한 웃음부터 나왔다.

보조금으로 주민들과 지역개발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확정짓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간에서 이렇게 일하는 우리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책임만 있지 권한은 없다. 아니, 사실 책임도 다 질 수도 없는 중간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권한이나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안내의 수준이다. 상황에 따라서 보조금의 항목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확정은 짓지 않는다. 공모사업이 대부분이다 보니 공모가 떨어질 수도 있어서 ’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업을 하다가 일이 생겨서 사업을 접어야하는 경우도 생기고, 갑자기 사업을 만들어야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도가 정해진 보조금이다보니 사업을 하다가 어떤 항목의 사업비가 늘어나게 되면 아직 시작하지 않은 사업은 사업비를 줄여야하는 경우도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우리가 주민모이게 울력을 했으니 그 돈은  “내 돈”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준다”라고 한 순간 줘야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민들이 생각한 ’구두의 약속‘이 되어 버린다. 

중간지원조직은 유연성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주민에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아직도 힘든일 중 하나다.     

“내 돈을 달라” 라니.. 

경험해보지 않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다. 경험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서울에서 일반 기업회사를 다닐때는 상상도 못해 본 일이었다. 보조금을 받아서 페이백을 하거나, 알게 모르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기존에 그렇게 일을 하고 그런 경험들이 쌓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보조금은 누가 착복하거나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개인통장이 아닌 단체의 통장으로 들어오며, 현금 사용은 안되고, 통장에 연결된 체크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1원까지 맞춰서 정산을 하기 때문에 누구 주머니로 가져갈 수 없는 구조다. 하다못해 통장에 붙은 이자와 세금도 정산의 대상이다. 정산서와 결과보고서에 참석자 명부, 참석자 사진, 회의 내용들이 다 붙는데 예전의 페이백은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19 백신증명서까지 붙여야한다.

 몇 년전  농림수산식품문화정보원의 e-나라 회계교육에서의 일이다. 어떤 공모신청자 분이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도데체 우리를 얼마나 믿지 못하면 회계 시스템을 새로 배워서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결제하고 정산을 해야하냐고.. 

그렇다. 그분에게는 죄송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누군가는 그렇게 해 본 적이 있어서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누군가가 해 놓은, 해 본 적이 있는 일로 이렇게 오해도 받고 있는 것이고.      

이장님께는 올 해 사업이 다 끝나서 내년도 주민공모사업에서 노력해보자고 했다. 이장님은 화가 많이 나셔서 공모사업 같은것도 못하겠고 너네가 다 하고 나에겐 돈만 달라 하셨다. 아마 내년도에 공모사업을 새로 시작할 즈음엔 다시 서류 작성하시라고 하고 말씀드리겠지만, 아침부터 ’다짜고짜 전화‘는 이 업무를 몇 년을 했는데도 참 난감하다.      

중간지원조직이다보니 지역개발에서 주민들을 대하는 것이 어떨 때는 주민이 행정으로 가는길 목에서 문턱으로 새로운 걸림돌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반대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전화를 받으면서 거의 “네, 그러셨어요”만 되내인다. 

 돈 내놓으라는 독촉전화와 함께 시작한 오늘도 지역활성화라는 명목하에 주민을 만나러 가면서 생각에 잠긴다. 300만원은 어떤 주민공모사업으로 꾸려야할까?

이전 04화 박카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