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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inko Jul 08. 2020

바람과 모래와 별이 품은 생명

<인간의 대지> by 생텍쥐페리

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 하늘은 별 없는 모습 그대로 익숙하고 별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횟수도 점차 줄어든다. 우연히 발견한 별자리 하나에 그 날 밤 이불 속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풍성해지던 그 시절 역시 별과 함께 흩어졌다. 

별이 일깨워주는 건 어린 시절의 추억뿐이 아니다. 잊혀진 어느 밤의 일탈과 연기만 남긴 채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꿈, 매일 부여되지만 매일 망각하는 생명의 소중함, 상투적이고 감상적이라 한들 이 모든 게 별 하나에 담겨 있다. 


별이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듯 코로 불어넣어진 숨으로부터 시작된 인간의 생명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보여줄,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약속을 품고 있다. 살아가는 날의 수가 참에 따라 우리는 이 약속을 하나씩 경험하며 아직 오지 않은 날들에 묶여있는 약속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날수를 채운다. 하지만 불친절한 하루가 쌓이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미래에 대한 희망 역시 빛을 바랜다, 현재가 고통스러워질수록 생명의 고유한 가치는 흔해빠진 기성품으로 변색되고 생명은 더 이상 별처럼 고유하고 신비한 존재가 아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버릴 수도 있는 시시한 것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다행히 퇴색한 지구의 거주자들에게는 아직 자연이 있다. 잊고 있던 생명의 약속은 경이로운 자연이 상기시켜주고 또 자연이 토해내는 소란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으로 섰을 때에 다시 한 번 그 위대한 모습을 드러낸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동화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신분으로 이 생명의 약속이 간직한 신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운 좋은 이들 중 하나이다. 그는 엄정한 자연 앞에서 무릎 꿇어봤고 신성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으며 관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 보았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생텍쥐페리가 우편 비행 업무를 수행하던 시절의 기억을 담은 『인간의 대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광활한 대지 위에 홀로 선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몸담았던,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하늘을 비행해 항로를 개설하는 회사에서는 비행을 나갔던 누군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어느 날, 생텍쥐페리의 동료 기요메가 실종된다. 거친 폭풍우는 기요메를 안데스 산맥에 내려놓았고 그는 자연에 맞서 사투를 벌이다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다. 


모두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동료가 감내해야했던 ‘짐승도 할 수 없었을 일’을 훗날 전해들으며 생텍쥐페리는 기요메에게 고통을 잊고 평온함에 이르려면 그는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되었다고 말한다. 발은 부어오르고 심장마저 곧 멈출 듯한 극한의 추위에서 무거운 눈꺼풀을 중력에 굴복하도록 놓아주기만 한다면 ‘황소처럼 끌고 가야 할 수레보다 무거운 그 삶의 무게도 더는 존재하지 않게’된다. 하지만 그의 동료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빠르고 달콤한 유혹의 순간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떠올린다. 기요메의 생각 속에서 살아난 아내는 눈 속에 누워 있던 남편의 몸뚱이를 일으킨다. 


살길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또 한 걸음, 언제나 똑같은 그 한 걸음을 다시 내딛고 또 내딛였지...

그렇게 생각 없이 걷다보니 심장은 질기게, 또 대견하게도 계속 뛰어줬고 그는 자신을 기다리던 동료와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기력한 사람들에게는 하루 자체가 거대한 악당이다. 24시간이 너무 무지막지해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게 우리를 압박한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세수를 하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차려입은 후 산책을 나가거나 영화를 보러갈 수 있다. 책 한권을 들고 공원에 가 잔디밭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독서를 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아직 달콤한 바람과 춤추는 달빛이 주는 기쁨이 있고 눈을 즐겁게 하는 해와 달과 별, 꽃과 나무가 있다. 


나는 인간이 삶을 향해 가진 의지, 그리고 자연이 주는 생명의 힘을 진정으로 믿는다. 포기라는 찰나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었던 기요메는 한 걸음 내딛음으로 이 의지와, 힘,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온전히 보여준다. 


생텍쥐페리는 이후 기요메가 겪었던 일을 리비아 접경지대에 추락하며 고스란히 경험한다. 이 경험은 생텍쥐페리에 의해 훗날 시처럼 아름답고 사막의 모래처럼 고요하게, 또 혹독한 갈증처럼 절박하게 종이 위에 새겨졌다. 그는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고 동료 프레보와 함께 조난당했다. 둘은 살아남은 게 신기할 정도로 강력한 충돌을 겪고 구조되기까지 빠르면 일주일, 길면 6개월이 걸리리라는 계산을 도출한다. 앞날이 너무 어두웠기에 프레보는 ‘단번에 깨끗이’ 죽지 않았음을 아까워한다. 그리고 생텍쥐페리는 생각한다. ‘그렇게 빨리 단념할 필요는 없다’고. 


아무리 희박한 것일지라도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근처에 있을지도 모를 오아시스를 놓치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우리에게는 비유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 상황을 생텍쥐페리는 현실 속에서 사막의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피부로 직접 체험했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타들어갈 듯한 모래사막의 연속일 뿐 어디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하는지도 모를 때, 그 어떤 목적지로도 데려다주지 않을 길임을 알면서도 그저 걷는다.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60킬로미터를 걷고 눈부신 불을 지펴 구조 신호를 보내고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본다. 정말 이제는 방법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이성을 놓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희박한 가능성에 매달린다. 왜냐하면 달리 방도가 없으니까.


희망을 가지는 것 외에, 희박한 가능성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사막만큼 삭막하고 광활하고 인정사정없는 도시에서의 무사한 생존은 불시착한 두 비행사가 한 시도에는 비견할 수 없지만 끈질기고 처량한, 때론 수치스러운 시도를 수반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게 소중하고 반짝반짝 빛나다가도 한 순간에 어둠이 되어버리고 또 그렇게 혐오스럽다가도 실오라기 같은 희망 하나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이 삶이다. 


생명의 모든 기억을 벗어던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생텍쥐페리가 계속 걸을 수 있도록 이끈 건 먼저 그 길을 밞았던 동료 기요메다. 생텍쥐페리는 기요메가 앞서 통과했던 갈증과 경련, 신기루를 등에 업고 한 발짝씩 내딛는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이 겪은 고통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겨냈기에 우리도 이겨낼 수 있다. 우리에게 뼈와 살이 되는 이런 교훈들은 쉽게 망각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의식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계속해서 상기시켜줘야 한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나는 그냥 뻗어버렸을 거야.

다행스럽게도, 사막은 잔인했지만 그의 동료 프레보는 다정했다. 조난자의 두려움을 나란히 나누어가진 둘은 함께 일어섰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처럼 친절하지 않기에 일어서도 또 넘어지고 또 일어서도 바로 다시 넘어진다. 이제 생텍쥐페리는 거의 죽음의 문턱 앞까지 왔다. 문이 열리고 발만 내딛으면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곳에 서있다. 


절망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고통도 없다. 그 점이 유감스럽다. 고통이 있다면, 내게는 물처럼 달콤하게 여겨질 텐데.


고통마저 물처럼 달콤하게 여겨질 이 절박한 마음을 우리가 물 한 방울 크기 정도로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감각이 마비된 상태에서 몸을 찌릿하게 하는 고통,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고통은 달다 못해 향기롭기까지 할 것이다. 

자신을 수없이 기만했던 신기루에 속고 필사적인 기대가 반복해서 부서지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걷고 또 걷던 두 조난자는 멀리 사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죽어있던 ‘사막이 살아 움직이는’것을 본다.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준 그 베두인족 사람이 내민 물에 부치는 찬가를 올린다.


너는 생명에 필수적인 정도가 아니라 바로 생명 그 자체이다. 너로 인해 감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쾌락이 우리에게 스며든다. 너와 함께 우리의 몸에서는 우리가 체념했던 모든 힘이 되살아난다. 너의 은총으로 우리 몸에는 우리 가슴에서 메말랐던 모든 샘물이 콸콸 흘러넘친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그 똑같은 물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 곁에 있는 배우자, 형제자매, 친구가 얼마나 아름답고 성스러운지 잊는 것처럼 물의 숭고함을 잊고 산다. 그 물의 숭고함을 다시금 깨달을 때, ‘한없이 단순한 행복’이 우리 몸에 퍼진다. 그리고 한 번 더 우리의 갈라진 목을 축여주는 ‘이슬 잡는 덫을’ 별 아래에 펼칠 수 있다. 


이 체험, 기억, 기록이 『어린 왕자』를 잉태하고 낳았다. 생텍쥐페리는 소행성만 갖고 있지 않았을 뿐, 글로 남겨져 작품이 된 모험들을 실제 삶 안에서 모두 누렸다. 추락으로 두개골이 골절되고 전복된 비행기 안에서 익사할 위기를 넘기고, 리비아 사막에서 죽기 직전 살아 돌아온 이 모험의 화신에게 비행은 지상에서는 절대 누리지 못할 사치이자 잠들지 않아도 꿀 수 있는 꿈이었다. 

그는 별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다. 

죽을 때까지 비행을 놓지 못했던 생텍쥐페리는 마지막 비행이 된 정찰 비행 중 그토록 사랑했던 사막과 비행기와 별들을 가슴에 품고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남긴 바람과 모래와 별의 기억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기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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