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엉망인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전부터
하루가 버겁고 무겁게 느껴지는 날.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입고,
작은 일에도 짜증이 올라오고,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그런 날.
그런 날이면
모든 게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내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못났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생긴 것만 같았다.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 문장을 조용히 건넨다.
나쁜 날은 그냥 나쁜 날일 뿐,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을 처음 떠올린 날은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회사에서의 일 하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 큰 문제로 번져나갔다.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에 하루가 송두리째 흔들렸고,
이어지는 동료들의 집단적 외면에
지나온 시간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노래를 듣다가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짧은 기록을 남겼다.
“나쁜 날은 그냥 나쁜 날일 뿐,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 문장은
그날의 고통과 나를 분리해 주었다.
하루의 실패들과 나를 동일시하던 습관에서
처음으로 빠져나오게 해 준 말이었다.
날씨에 비유해 보면 간단했다.
하늘이 흐린 날이라고
하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구름이 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이다.
구름과 비는 그저 지나가는 현상이다.
하늘은 언제나 그대로다.
그저 날씨가 바뀌고 있을 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힘들다고 해서,
그 하루들이 여러 겹으로 모여 있다고 해서
내 존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기분이 좋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관계가 꼬이고 흔들린다고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하루의 흐름과
내 감정이 맞지 않은 것뿐이다.
이런 식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뒤로
나는 더 이상 작은 일과 실수, 실패들 앞에서
나를 함부로 탓하지 않았다.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이 말을 반복해 말했다.
처음엔 어색했고,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꾸준히 말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움직였다.
내가 아무리 감정에 흔들려도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을 반복하는 건
나에게 하나의 훈련이었다.
나쁜 날이 올 때마다
내가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대신
잠깐 멈추고 깊게 숨을 쉬고,
다시 기록하는 연습이었다.
“나쁜 날은 그냥 나쁜 날일 뿐,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매일매일의 작고 큰 실패들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며
더 깊은 우울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하루가 나쁘다고 해서
내가 나쁜 것이 아님을.
나에게는 나쁜 날이 있을 뿐,
나쁜 존재라는 것은 없다.
이 작은 문장은
그동안 나를 수없이 살려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앞으로도 계속 이 말을 한다.
나쁜 날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
“나쁜 날은 그냥 나쁜 날일 뿐,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