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이 아니라 책임이다
사람들은 "다시 해볼게요"라는 말을
변명처럼 쓴다.
실패했을 때,
실수를 했을 때,
놓쳤을 때,
가장 쉬운 말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수없이 실패하면서
습관적으로 이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말은 변명이 아니라
책임이어야 한다고.
다시 해볼게요.
이 문장을 진짜 책임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기록’이었다.
처음 이 말을 진짜 책임으로 썼던 날,
나는 나와의 약속을 어긴 뒤였다.
아주 사적인 욕망과 관련된,
지극히 부끄러운 짓을
나는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몰래 혼자 하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무너졌고,
좌절했고,
후회했다.
하지만 이전과 달랐던 점은
그날 바로 내 손으로
페이스북 앱을 열고
나만 볼 수 있게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다시 해볼게요.
오늘 내가 실패한 이유는
충동이 아니라 구조의 오류였어요.
충동이 나를 순식간에 사로잡을 때,
나는 기록하지 않았어요.
기록한 직후 하기로 했던
행동을 이어서 하지 않았어요.
내일은 이 오류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그 기록은
내가 했던 실수의 구조를
정확히 드러냈다.
그래서 "다시 해볼게요"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정확한 행동이 되었다.
물론 한 번에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 번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고,
충동과 동시에 대체 행동이
떠오를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는 충동과 동시에
대체 행동의 아주 작은 스파크 하나만 떠올라도
성공은 시작된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책임이 아니다.
진짜 책임은
실수를 정확히 보고,
그 구조를 고쳐
다시 하는 것이다.
내가 이전에 같은 말을 했지만
실패를 반복했던 이유는
실패의 구조를 보지 않고
감정만 탓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만 이러지."
이런 자책은
아무것도 고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구조를 기록하고 난 뒤
실수가 줄었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이전과 달랐다.
실패가 아니라,
실패의 구조를 고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다시 해볼게요"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다.
이 말은 나에게 약속이 되었고,
기록된 약속은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매일 무언가를 놓친다.
하지만 놓친 것을 기록하고
구조를 다시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다시 해볼게요.”
이제 이 말은
변명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