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해보니 알겠어.
어릴 땐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완전히 이해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집에서의 아빠 모습은 소파에 모로 누워 TV를 보시는 모습이었다.
한창 에너지 넘치고 체력이 좋았던 10대의 나는 아빠의 그런 모습이 무기력해 보였다. ‘TV는 바보상자라고 하던데 바보상자를 좋아하는 아빠는 바보가 되어가는 중인가?’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했었다.
사회생활 10년 차인 지금 나의 모습은?
퇴근하자마자 TV를 켜 두고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 , <겨우, 서른>과 같든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있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출퇴근 9호선 지옥철에서 중국어 단어를 외우고 일주일에 적어도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등 생산적인 활동으로 채웠었는데 요즘은 퇴근 후 힘내서 뭔가를 하는 게 힘들다. 집에 들어오면 운동 나가기가 그렇게 귀찮고 활자를 볼 힘은 더더욱 안 난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두 다양한 역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나의 본래 성향에 맞는 역할만 맡고 살아갈 수는 없다. 또 조직생활은 얼마나 힘든가. 끝없이 회사 선후배, 동기와 한정된 승진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고 기대되는 실적을 내야 한다. 말 그대로 정글에서 긴장을 늦출 새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오은영 박사가 말하기를, 집에 들어와서 계속 누워만 있는 건 ‘긴장을 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으레 생각하는 것처럼 게으르거나 한심해서가 아니다.
본래의 내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은 유일한 공간인 집에서 편하게 누워서 긴장을 풀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이제는 이해되는 이유이다.
부모님께선 내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종을 가지길 원하셨다. 나는 어릴 적 의사나 변호사를 한 번도 장래희망으로 꼽아본 적이 없다. 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오는 바람에 (?) 재수학원과 부모님의 권유로 법대에 진학하게 됐고 대학교 3학년부터 동기들을 따라 사법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2년여의 고시 공부를 끝으로, 내가 로스쿨도 가지 않고 취업을 하겠다고 하자 부모님과 처음으로 진로문제로 갈등을 겪게 되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결국 취업의 길로 들어선 나였지만, 10년 동안 회사에서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그 때 부모님께서 왜 전문직을 고집하셨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일반 회사 조직생활 내에서는 업무가 (전문직에 비해) 비교적 쉽게 다른 사람에 의해 대체가 가능하다. 신입도 길어야 3년이면 모든 업무를 배울 수 있다. 오히려 후배가 씽씽한 체력과 두뇌회전으로 선배들을 앞지르는 경우도 많다.
회사에서는 나를 남과 차별화시키는 요소를 스스로 찾아내서 갈고닦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요소 중 가장 큰 부분은 인간관계와 직장 내 엄연히 존재하는 정치싸움이었다.
임원의 자리로 가기까지 온갖 역경을 견뎌냈던 아빠는 일반 기업의 조직생활의 피로함을 익히 경험하셨고, 딸인 내가 전문 자격증을 따서 남들과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길 원하셨다. 전문직을 가져야 타의에 의해 명퇴당하는 일 없이 오래 일할 수 있고 남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셨던 것이다.
물론 요즘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종이 부모님 세대처럼 희소하진 않고(로스쿨, 의전으로 인한 공급 과잉) 자격 그 자체로 평생 안정성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그 세계 안에서도 무한 경쟁인 것은 일반 회사와 다를 바가 없어져서 부모님 세대가 전문직을 최고로 쳤던 논리가 다소 희석된 것은 사실이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부모님이 전문직종을 바랐던 이유를 진작에 헤아렸다면 그때 당시 부모님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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