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시절 만난 수많은 '위로'
서른이란 나이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어느 기준이었을 것이다.
어른이 되는 기준.
서른이 되면 성공해야 하고 결혼해야 하고
'해야 하고 '가 많은 나이기에
부담이 되는 나이였다.
그 부담은 죽음으로 죽음은 나를
구성작가라는 일로 연결시켰다.
‘서른에 죽을 거니까 까짓 거 해보자’ 했다.
방송작가가 되는 길은 어렵지 않다.
- MBC 방송 아카데미에 지원(가벼운 테스트가 있다.)
- 6개월간의 수련
- 프로그램에 지원 후 자료조사로 취업
작가가 되는 일은 쉽지만 버텨내기가 힘들다.
막내 작가의 길은 고되었다.
매일 밤을 새우면서 온갖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세 개 방송의 자료조사를 해내야 했다.
서른이 되기 전에 성공해야 했기에
절벽에 매달린 심정으로 일했다.
그때 아이러니컬하게 내 상처는 힘이 되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는 힘이었다.
내가 상처를 갖고 있기에
난 남의 고통에도 충분히 반응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어떤 일에도 왜?라고 토 달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다’했다.
인생엔 어떤 일이라도 생길 수도 있다.
그게 행운이든 불운이든..
나의 이런 생각은 누군가를
취재하고 설득하고 섭외까지 도달하는데
큰 힘이었다.
트랜스 젠더와의 취재에 생각난다.
하리수가 왕성하게 활동할 때였고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짙은 화장과 탈색한 머리 누가 봐도 독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었지만
가족들과의 불화로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혼자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혼자서 오롯이 감내해야 했다.
행복하면서 동시에 외로운 삶이었다.
난 마음속 깊이 공감했다.
자신의 고통을 가족에게 알리지 못하는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함께 울고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드러낸 그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했고 응원했다.
난 그 당시 내 상처 혹은 비밀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흘러 난 어느덧 메인 작가 시절이었다.
의학 다큐멘터리 취재차 시내 종합 병원을 방문했다.
내가 만난 인터뷰 주인공은
스무 살 어린 부부와 돌쟁이 아기였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 기형을 갖고 있어서
당장 심장 수술을 해야 했었다.
갑작스럽게 임신으로 가정을 만든 부부였기에
수술비를 감당할 형편이 못되었다.
다행히도 방송을 통한 협찬과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온몸에 주사 바늘을 꽂고 수술실로 향하는 아기와
내내 덤덤하던 아기 엄마는 아기를 수술실로 보내며
통곡했다.
취재, 구성, 대본 모두 어렵고 진지했다.
수술 장면을 보며 대본을 쓸 땐
밤새 꺽꺽거렸다.
아픈 아기를 위해 가정을 만들고 생활하는
그들의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난 내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방송작가 생활 내내 수많은 출연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공감하고 울고 웃으며
난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그 시간 동안 ‘난 어쩌면 살아도 되는지 몰라’라는
생각을 희미하게 떠올렸다.
어두운 내 삶에 작은 빛이었던 방송작가의 길.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수많은 위로들.
그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현재의 난 또다시
글쓰기를 통해 또 한 번 치유받는다.
내 글을 읽어주는 모두, 그리고 당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