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션>과 감자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화성 감자 뿅!

by 정지영

농업 영화를 검색하면 <마션(2015)>이 나온다. 주인공이 경기도 화성.... 이 아니라 태양계 네 번째 행성인 화성에서 감자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화성에 고립된 주인공은 오직 먹기 위해 감자를 키운다. 심각한 영양 부족 및 불균형, 이어지는 사건 사고를 극복한 끝에 그는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다. 감자가 그의 생명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감자는 지구에서도 인류의 생명 유지 및 번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마도 이 글은 감자의, 감자에 의한, 감자를 위한 글을 될 것이다.


마션 포스터.png



감자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감자 농사는 좋아한다. 다른 작물에 비해 손이 덜 가고, 감자 뽑는 손맛이 쏠쏠했기 때문이다. 딱 1번만 재배해봐서 감자 농사가 원래 그렇게 쉬운지 그건 확실히 답할 수가 없다.

봄 감자는 이른 봄에 심어 하지(6월 21일 경) 즈음에 수확하기 때문에 하지감자라고도 한다. 재배 방법에 따라 심는 시기가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 3월, 늦어도 4월 초에 심는다. 나는 2020년 감자를 재배할 때 4월 21일에 심어 7월 4일에 수확했으니 꽤나 늦게 심은 셈이다. 씨감자는 도시농부 교육을 맡은 단체에서 준비해주셨고, 싹이 조금 트고 쪼글쪼글해지기도 한 상태의 씨감자를 4 등분해서 바로 밭에 심었다. 밭은 피복은 하지 않은 맨 밭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경험한 감자 농사법을 쓸 텐데 다른 방법도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셨으면 한다.

먼저 감자를 심기 전에 밭에 석회와 밑거름을 준다. 석회와 밑거름은 최소 1주일의 시간을 두고 따로 뿌려야 한다(석회를 먼저 뿌린다). 감자를 심기 전 흙을 뒤집어 주고, 두둑을 높게 만든다. 밭에서 불룩 올라온 부분이 두둑이고, 두둑 사이에 푹 파인 곳을 고랑이라고 한다. 두둑과 고랑을 합해 이랑이라고 하는데 두둑을 이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이 고이면 감자가 썩을 수 있어서 물이 잘 빠지게 만들어야 한다.

다음에 씨감자를 구한다. 농촌에서는 농협을 통해 구하지만 우리 같은 도시농부는 인터넷으로도 편히 구입할 수 있다. 다만 박스 단위로 판다는 것을 유의하자(제일 작은 게 4kg이며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다). 씨감자란 씨앗처럼 사용하는 감자라는 뜻이다. 감자는 씨앗 대신 감자를 심는다. 감자에도 꽃이 피니(가지과 식물이라 토마토, 가지와 꽃 모양이 비슷하다) 당연히 열매가 열리고(덜 익은 방울토마토처럼 생겼다) 그 안에 씨앗이 있지만 우리가 이용하는 감자는 개량된 품종이어서 꽃은 피지만 열매가 거의 안 열린다고 한다. 혹여나 열매가 달려 씨앗을 심는다 해도 크기와 모양이 천차만별인, 도저히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감자가 나온다고 한다(품종을 개량할 때는 씨앗을 심어서 키운다). 감자는 벼, 콩, 밀 등과 함께 정부에서 생산, 보급하는 작물이었으나 2001년부터 강원도에서 그 업무를 맡게 되었다(강원도감자종자진흥원/주석 1). 씨감자는 바이러스나 기타 병 감염을 막기 위해 조직 배양한 감자 줄기를 키워서 생산한다(자세한 것은 참고자료 6을 보시길).

씨감자를 구했으면 칼(집에 있는 아무 칼이나 되지만 문구용 칼은 작으니 부엌칼이나 과도를 사용하자)을 불로 소독(가스레인지 켜고 불 위에 몇 번 휙휙 뒤집어주면서)한다. 아니면 락스를 희석해서 칼을 담갔다가 빼도 된다. 씨감자는 4등분으로 자르는데 이때 씨눈이 고르게 들어가게 자른다(감자가 작으면 2등분 해도 되고 너무 작으면 통째로 심어도 된다). 자른 감자의 단면에 재를 묻힌다. 이 역시 소독이 목적이다. 밭에 가서 두둑에 구멍을 하나씩 파서 감자의 씨눈이 위쪽을 향하게 넣고 흙을 덮는다. 물은 감자를 심고 일주일 후에 준다. 줄기가 자라는 동안 몇 차례 북주기를 하고(뿌리나 줄기 아래쪽에 흙을 두둑하게 덮어주는 것을 북주기라고 한다), 줄기가 어느 정도 크면 4줄기 중 2줄기를 뽑는다. 이때 줄기 아래쪽 흙을 단단히 누른 상태에서 뽑아야 감자가 딸려 나오지 않는다. 물은 고랑에 주고, 봄 가뭄 일 때는 물 주기에 더 신경 쓴다. 감자 수확이 가까워지면 물을 주지 않는다. 감자 꽃은 따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안 따도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교육받은 곳에서는 안 따도 된다고 해서 안 땄다.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한다.

이 방법 외에 싹을 미리 틔워서 밭에 옮겨 심거나, 비닐로 밭을 덮어서 심기도 한다. 앞서 감자 농사는 손이 덜 간다고 했는데 막상 적어놓으니 복잡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북주기도 1번밖에 하지 않았고 물도 따로 준 적이 별로 없다. 감자 옆에 심어놓은 다른 작물에 물을 주다 보면 자연스레 감자 쪽 고랑에 물이 흘러가서 따로 주지 않았다. 총 5조각을 심었는데 4조각에서 싹이 났고, 수확은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알이 굵은 감자가 드문드문 있었고 알이 작은 감자도 많았다. 수확할 때는 줄기 아래를 잡고 쑥 뽑는다. 뽑고 나서 손이나 호미로 살살 흙을 파면서 찾으면 몇 개 더 건질 수 있다. 몇 년간의 농사 중 가장 성공한 농사가 감자, 가지, 방울토마토 농사였다. 가지와 방울토마토는 여름 내내 열매가 열려서 수확하러 가는 게 귀찮았는데 감자는 한 번에 수확할 수 있어 편했다.

<마션>을 보면서 주인공이 식물학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론물리학자나 지질학자였다면? 식물학자라고 해도 세부 전공이 워낙 많아서 감자 키우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학자도 있을 것이다. 물 만드는 법(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니 영화를 직접 보길 바란다) 역시 신기했다(주인공은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이다). 내가 화성에 고립되면 살아남지 못하겠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있는 식량 일찌감치 거덜내고 결국 굶어 죽으리라. 그러니 우주시대가 열리더라도 섣불리 지구를 떠나지 말아야겠다.

<마션>식 농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똥을 거름으로 쓰는 장면일 것이다. 화성의 흙은 흙이 아니다. 암석이 풍화되고, 모래와 점토가 퇴적되어 쌓인 레골리스(regolith)이다. 레골리스 위에 식물이나 동물의 유해(유기물)가 쌓이고 퇴적되어야 비로소 흙이 된다. 지구에도 5억 년 전까지만 해도 흙이 없었다. 지의류와 이끼가 등장하고 유해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비로소 흙이 생겼다(참고자료 4). 식물은 흙 속의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화성의 레골리스에는 영양분이 없기 때문에 <마션>의 주인공은 똥을 영양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대원들이 남기고 간 똥을 섞으며 구역질을 하는데 보는 나 역시 속이 메스꺼웠다. 똥은 현재도 지구 곳곳에서 유용한 비료로 사용된다. 똥에 있는 기생충 때문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잘 발효시키면 그 안의 기생충과 알을 죽일 수 있다(참고자료 5/ 한국어 번역 제목은 '거룩한 똥'인데 원제는 'holy shit'이다). 퇴비도 마찬가지다. 숙성시켜서 사용해야 냄새도 덜나고 가스로 인한 장해가 없다.

감자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이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침략한 16세기에 유럽에 전파되었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싹에 독이 있다 등의 갖은 이유로 처음에 기피 작물이었던 감자는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기근과 전쟁 시기에 여러 장점이 부각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수확량도 많고, 키우기도 쉽고, 영양도 풍부했기 때문이다. 유럽 곳곳에서 다양한 감자 요리가 등장했다(그중 하나가 영국의 피시 앤 칩스). 다른 유럽 국가보다 빨리 감자를 받아들인 아일랜드는 1754년 320만이었던 인구가 1845년 820만 까지 늘어났다. 어느새 감자는 유럽의 식탁을 호령하는 주요 작물이 되었다(물론 감자를 주로 먹은 건 하층민과 노동자 그리고 가축이었다).

얼마 안 가 상황은 다시 바뀌었는데 1845년 영국에서 시작한 감자 역병 때문에 감자밭이 초토화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보다 아일랜드의 피해가 컸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럼퍼라는 하나의 품종만 키웠고, 식량의 대부분을 감자에 의존했으며,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나 마찬가지였다) 감자 외의 작물은 해외로 빠져나갔다. 몇 년에 걸친 감자 역병과 기근으로 100만여 명의 아일랜드인이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이들이 해외로 떠났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J.F. 케네디의 증조부도 이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주민이다. 감자 대기근이 미국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 셈이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20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1824년 청나라 사람이 가져왔다는 설과 1832년 영국 상선에 탔던 선교사가 줬다는 설 등이 있는데 종합하자면 1820~1830년대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과자 이름도 있어서 그런지 감자 하면 대부분 '수미'라는 품종을 떠올린다. 토종 일 것 같은 느낌을 마구 풍기는 수미는 1962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육종하여 1970년대 국내로 들어온 미국의 '애틀랜틱 슈피리어 Atlantic superior' 품종이다. 이 품종은 국내 도입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감자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그 외 미국 품종이지만 일본에서 남작 작위를 받은 료키치 카와다가 도입해서 '남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품종도 한때 많이 재배했으며 대지, 장원, 세풍, 대서 등 외국에서 도입한 품종이 판을 치다가 80년대에 들어서 국내에서 육종한 조풍, 남서, 추백, 조심, 가원, 자원, 조서, 추동, 자동, 자영, 홍영 등이 시장에 나왔다(주석 2). 2011년 말 기준으로 약 40여 품종이 출원(등록) 되어있다고 하는데 마트나 시장에서 감자를 구입하는 도시민들로서는 내가 사는 감자가 어떤 품종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앞서 씨감자는 조직 배양한 줄기를 이용해서 생산한다고 했다. 이 말인즉슨 무한 복제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유전적으로 다 동일하여 병해충이나 기후변화 같은 위기 상황에서 다 같이 전멸하는 위험성을 안게 된다. 아일랜드에 재앙을 안겨준 감자 역병도 '럼퍼'라는 한 종류의 감자를 재배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다양한 감자를 심었더라면 일부는 죽더라도 역병에 강한 품종은 살아남아 대기근을 방지했을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일이 다른 어딘가에서 또 일어날지도 모른다.

2020년 이상저온 현상이 발생한 전남 보성에서는 감자 재배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감자 갈라짐 현상이 나타났다. 감자 Y바이러스가 이상저온에 노출되어 발생한 일이었다. 전남뿐만 아니라 경상도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코로나 19 때문에 묻혀버렸지만(농업 뉴스는 항상 뒷전이기 일쑤지만) 흉년은 알게 모르게 늘 우리 곁에 있다.(주석 3)

감자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고, 유전자 조작이나 단일재배 이야기를 할 때도 감자는 빠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이 모든 부분을 다룰 수 없다. 내용도 많고 내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인 <감자로 보는 세계사>는 감자의 재배 역사에 대해서 잘 나와있다. 일본에서 2008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책을 볼 때는 저자가 책을 쓴 시기를 알고 있어야 한다. 책을 쓴 시기와 읽는 시기의 상황이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GMO 하면 콩을 떠올리지만 감자 역시 유전자를 조작해서 살충 성분을 생성하는 품종이 유명하다. 이 부분은 참고자료 2인 <욕망하는 식물>을 읽어보면 좋다. 이 책 역시 미국에서 2001년에 출간한 책으로 20년 전에 나온 책이니 그 점을 유의하자. 현재 감자 이용 현황이나 품종 개량 방법 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감자와의 추억 하나 풀어야겠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 식사로 찐 감자를 시킨 적이 있었다. 숙소에서 아침을 주문해 먹는데 늘 먹던 달밧이나 볶음면 대신 감자를 주문했다. 값이 싸서 시켰다. 감자 맛이 뭔지 아니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지도 않을 테고 말이다. 메뉴판에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주문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었는지 주인장은 두어 번 확인을 하고서 감자를 갖고 나왔다. 알이 작고 막 쪄서 따뜻했다. 주인장뿐만 아니라 식당에 있던 모든 외국인이 나를 쳐다보던 기억이 난다. 몇 개 먹긴 했으나 감자가 원래 맛이 좋은 작물도 아니고, 감자를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어서 겨우 반 먹고 반은 가방에 넣었다. 그 뒤로도 왜 그렇게 손이 안 가던지.. 설탕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다시는 감자를 시키지 않았다. 다음 트레킹 때도 안 먹을 가능성이 크다.

감자는 옥수수, 밀, 벼와 함께 세계 4대 작물이다. 지구를 정복한 감자는 우주로 진출할 수 있을까? <마션> 개봉 이후 화성의 감자 농사의 가능성에 대해 말이 많았다. 2016년 나사가 국제감자센터(CIP)와 함께 화성에서 감자를 재배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2017년 기사를 보면 성공적이었다고 한다(주석 4). 진짜 화성에서 감자 농사를 지을 가능성은 아마도 일론 머스크에게 달려있지 않나 싶다. 화성에 진출하기 위해 스페이스 X를 창업했다고 알려진 머스크는 2020년에 열린 한 시상식에서 6년 안에 인간을 화성에 착륙시키겠다고 큰소리를 빵빵 쳤다(주석 5). 화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한편에 감자가 쌓여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감자의 우주 정복을 강력히 지지하는 바이다.







주석 1. 국립종자원-정부보급종 생산/공급 http://www.seed.go.kr/

강원도농업기술원 http://www.ares.gangwon.kr/hb/agri/sub03_03?articleSeq=47396&mode=readForm&curPage=1&boardCode=agri_news

주석 2. 감자, 어디까지 알고 먹습니까 https://cityfarmer.seoul.go.kr/brd/view.do?nttSn=3342&key=1905228807693&pageIndex=1&sc=&sw=&tr_code=m_sweb

주석 3. 농촌진흥천 국립식량과학원 https://www.nics.go.kr/bbs/view.do?m=100000020&bbsId=news&bbsSn=573580&pageIndex=1&focus=&searchType=bbsSj&searchValue=

농민신문 https://www.nongmin.com/news/NEWS/FLD/CNT/322904/view

주석 4. https://www.sciencealert.com/growing-potatoes-on-mars-might-actually-work-hints-a-new-experiment

주석 5. 머스크 "2026년 화성에 인간 착륙 가능할 것.. 확신 있다" https://www.hankyung.com/it/article/2020120238147



참고자료

1. <감자로 보는 세계사 -문명, 기근, 전쟁->, AK, 야마모토 노리오, 2019

2. <욕망하는 식물>, 황소자리, 마이클 폴란, 2007

3. <밥꽃마중>, 들녘, 장영란& 김광화, 2017

4. <흙의 시간>, 눌와, 후지이 가즈미치, 2017

5. <거룩한 똥: 인류를 살리는 거름 이야기>, 목수책방, 진 록스던, 2017

6. 농사로-농업기술길잡이31_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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