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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Oct 12. 2023

7월, 매미와 불교식 지명

너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니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귀뚜라미 소미가 길 양옆에서 들린다. 가까이 다가가면 뚝 그쳤다가 멀어지면 다시 울기를 반복하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다 보니 문득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언제부터였지.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던 때가. 7월에 썼어야 할 글을 뒤늦게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9월 하순. 어느 해에는 9월 늦게까지 매미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올해는 비 때문인지(2023년 장마는 역대 세 번째로 비가 많이 온 장마라고 한다) 매미가 늦게 울기 시작해서 예년보다 일찍 철수한 것 같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기분+기억피셜이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올해는 유독 매미소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여름이 지나가버린 듯하여 착잡해진다. 매미 소리에 신경 못 쓸 만큼 바쁘게 지낸 것도 아닌데 정신을 어디 두고 살았나 쩝.


 7월의 곤충은 매미다. 매미 없는 7월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7월이라고 운을 떼니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가 떠오른다(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다). 책의 배경은 핵을 이용한 세계대전으로 동물이 멸종하고, 방사능 낙진이 햇빛을 가린 먼 미래이다. 가장 먼저 죽어간 동물은 올빼미였다. 책에서는 올빼미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죽어갔다고 묘사되어 있다. 올빼미와 달리 매미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사라지지 않으리라. 매미 소리가 없는 여름이라니 너무 기괴하고 파괴적이지 않은가. 

   

 여름에 없어서는 안 될 칭구칭귀 매미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나름 생태강사였던(현재 일을 안 하고 있어서 과거시제를 썼다) 나 역시 매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끽해야 5종류 정도 이름을 댈 수 있었다. 이번 글을 위해 매미 도감을 샀는데 오마나, 이렇게 많은 매미가 살고 있는 줄 몰랐다. 도대체 몇 종류가 사는지 확실히 알 수 없는 반딧불이와 달리 매미는 답이 딱 나와 있다. 


 털매미, 늦털매미, 참깽깽매미, 말매미, 유지매미, 참매미, 소요산매미, 쓰름매미, 애매미, 세모배매미, 호좀배미, 풀매미 까지 총 12종이 우리나라에서 산다(두눈박이좀매미는 남한에서는 관찰되지 않아 제외).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고려풀매미'가 나오는데 풀매미와 같은 종이다. 과거에는 몸 색깔이 달라 다른 종으로 취급되었으나 같은 종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Cicadetta 속이었지만 새로운 속인 Tettigetta 속으로 분류되어서 학명은  Tettigetta isshikii (Kato, 1926)이다. 학명은 정리가 되었는데 국명에 대해서는 풀매미로 할 것인지 고려풀매미로 할 것인지 이견이 있는 듯하다. 김선주의 도감에는 국명이 풀매미라고 되어있으나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사이트에는 고려풀매미라고 되어있다. 이 글에는 풀매미로 통일한다(풀매미의 국명에 대해서는 각주 1을 참고할 것).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매미는 아마도 참매미와 말매미 일 것이다. 말매미는 일단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매미이고, 흔하며, 소리도 우렁차기에 악명이 자자한 녀석이다. 참매미는 매미들 중 유일하게 '맴~ 맴~' 하며 우며, 역시나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다.


 참매미의 울음소리는 아래 유튜브 사이트에서 들어가서 확인해 보길 바란다. 들어보면 내가 아는 그 소리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shNjhwZOd8


사진 1. 참매미(출처:중앙일보)



 아니, 그렇다면 다른 매미는 맴맴하고 울지 않는다는 말인가. 정녕 그렇다. 종마다 생김새도 생태도 다르지만 울음소리도 다 다르다. 그러니 맴맴 하고 울지 않는 다른 11종의 매미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매미인 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참매미 입장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일 텐데 한반도 매미의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자부심을 옛 문헌이 증명하기 때문이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미야미, ㅁ얌이, 미얌이, 미암이, 매암이(이놈의 브런치에서는 아래아 표기가 안 돼서 뺐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고 부탁드린다)로 표기되기 때문에 옛사람들도 매미는 맴맴하고 우는 놈이 대표이자 진짜라고 생각했음을 있다. 그래서일까, 맴맴 하고 우는 매미는 이름도 그냥 매미가 아니라 참매미다.  


 앞서 말했듯이 12종의 매미는 생김새도 생태도 다르다. <한국 매미 생태 도감>에 의하면 가장 큰 말매미의 몸길이는 41mm (날개 끝까지 길이 65mm 내외)인데 가장 작은 풀매미는 몸길이가 16mm(날개 끝까지 길이 23mm 내외)에 불과하다. 


사진 2. 풀매미(출처:재단법인  숲과 나눔)



 사는 곳도 다르다. 매미 하면 나무에 붙어있는 모습이 떠올라서 나무에서만 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모배매미와 풀매미는 산 정상의 억새밭이나 무덤가 같은 풀밭에서 살며, 알도 풀에 낳는다. 활동시기도 다른데 늦털매미는 9~10월에 활동하며, 세모배매미와 풀매미는 6월에 개체수가 가장 많다. 세모배매미의 경우 4월 말에 관찰한 기록도 있을 정도이다(세모배매미가 나타난 2014년에는 기온이 평년보다 높았다고 한다). 소리도 당연히 다른데 가장 특이한 건 세모배매미다(이쯤 되면 세모배매미가 매미계의 이단아 같기도 하다). 소리의 중심 주파수가 13~14kHz의 고음이어서 웬만한 사람은 듣기 어렵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영상을 봤을 때는 컴퓨터 스피커 고장 난 줄 알았다. 소리가 거의 안 들린다. 


 매미는 과연 몇 년을 사는가? 5년? 7년? 이것 역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종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매미도감에서도 수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성충이 되었을 때 2~4주 산다고만 나와있다. 매미의 수명에 대해 우리나라의 연구 자료는 없는 것 같고, 일본 연구에 의하면 애벌레가 땅속에서 지내는 기간은 애매미는 1~2년, 참매미는 3~4년, 말매미는 4~5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각주 2). 매미의 수명은 3, 5, 7, 13, 17년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숫자를 잘 보면 모두 소수다. 매미가 소수 주기로 사는 이유는 천적을 피해서 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학자들은 매미의 수명이 처음에는 3년이었는데 천적과 만나는 시기와 겹치지 않도록 5년, 7년으로 늘렸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현재 주기가 가장 긴 매미는 17년마다 나타나는 매미로, 나타났다 하면 미국을 들썩이게 만드는 매미계의 트러블 메이커이다(미국 매미는 주로 13년 17년 주기로 나타난다). 2004년 모습을 드러냈던 매미들은 17년 뒤인 2021년 다시 나타났는데 미국 대통령을 놀라게 만들고, 비행기를 지연시키는(곤충계의 마카다미야)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이들은 2038년에 다시 나타날 예정이다.  

 


동영상 1. MBC 뉴스




  매미는 생의 대부분을 땅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지낸다(매미는 번데기 과정이 없는 불완전변태 곤충이다). 마지막 해에 땅속에서 나와 허물을 벗으면 성충이 되는데 성충으로는 길어야 한 달여밖에 살지 못한다. 수컷은 목놓아, 아니 배 아래의 막과 근육을 이용해서 소리를 내니까 배 놓아 울어서 암컷을 찾아 짝짓기를 하고 장렬히 죽고, 암컷은 알을 낳고 생을 마감한다. 다른 많은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종족 번식이라는 최대의 임무를 위해 기나긴 유충 시기를 견디고 성충으로서는 짧고 굵게 살다가 가는 것이다. 


 7월부터 동네 숲이나 오래된 아파트 단지 내의 나무들을 잘 살펴보면 애벌레 허물을 볼 수 있다. 나도 생태강사로 일하던 시절에는 해마다 여름이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허물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허물은 인기 최고의 자연물로써 생태수업을 재밌게 하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제 더 이상 매미 허물을 모으지 않지만(그래도 집에 한가득 있는 건 왜일까...) 여전히 나는 여름이 되면 나무와 풀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길을 걷는다. 왜냐? 매미 허물을 보면 보물 찾기에 성공한 것 같아 기분이 조크든요.





 울음소리든 생김새든 대상의 특징을 본 따 이름을 짓는 건 꽤나 유서 깊은 전통이다. 천여 년이 넘게 한반도의 국교였던 불교 역시 언어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여기서는 불교에서 유래한 지명을 살펴볼까 한다. 불교식 지명은 조선~현대에 들어서 불교의 색채를 지우고자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한자로 바꾸거나 아예 다른 글자로 바꾼 경우도 많다. 또한 지명의 유래에 대한 여러 설들이 있기 때문에 불교식 지명이 맞다고 단정 짓기에는 애매한 지명도 많다(예를 들면 사당동). 그래서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불교식 지명이 확실한 것들만 몇 개 추려보려고 한다. 아래의 내용은 <불교에서 유래한 상용어 지명 사전>에서 뽑은 것이다.



1. 절이 있어서 절골, 절동. 한자로는 사곡 or 사동 or 사리 라는 지명이 있다. 寺 대신 司, 舍, 沙, 泗, 蓑 등으로 쓰는 곳도 있는데 마을이나 마을 근처에 절이 있는 것이 확실한 곳은 처음에 寺라는 글자를 썼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한다.

 큰 절이라는 뜻의 한절, 대사, 댓절 등의 지명도 있다.  

 탑동, 탑리, 탑산 등은 마을에 탑이 있어 붙은 지명이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처음 이름 붙여졌는데 관인방寬仁坊의 인仁과 대사동大寺洞의 사寺를 따서 인사동이라 했다고 한다. 대사동은 고려시대에 흥복사, 조선시대에는 원각사라는 큰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2. 부처님, 보살, 스님의 이름을 딴 지명

 부처골, 불곡佛谷, 불동, 불곡산 등

 비로자나부처님의 이름을 딴 비로봉

 아미타불(무량수, 무량광)의 이름을 딴 무량리, 무량원, 무량산 등

 미륵보살의 이름을 딴 미륵리, 미륵동, 미륵산, 미륵봉 등

 문수보살의 이름을 딴 문수산, 문수봉 등

 보현보살의 이름을 딴 보현산, 보현봉, 보현천 등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딴 관음봉, 관음산, 관음동, 관음리 등 / 관세음보살이 사는 보타락가를 딴 낙가산 등

 깨달음을 얻은 아라한에서 유래한 나한을 딴 나한리, 나한산, 나한봉

 지장대사의 이름을 딴 지장리, 지장산, 지장봉  

 달마대사의 이름을 딴 달마산, 달마봉

 

 서울 성동구 도선동 - 도선대사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서울 성북구 미아리 - 중앙승가대교수 자현스님에 의하면 미아리는 미아사彌阿寺라는 절에서 온 지명이라고 한다. 미아사는 미륵의 미와 아미타불의 아가 합쳐진 이름이라고 한다(각주 3).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 불광사라는 사찰에서 유래하였다.



3. 불교 용어

 경기도 안양시 - 안양은 극락을 말한다. 현장 스님 이전에는 극락을 안양이라 번역하였다.    

 승가산, 승가봉 - 불교 삼보(불보, 법보, 승보) 중 하나인 승가에서 유래하였다.

 승방골 - 스님이 기거하는 집인 승방에서 유래  

 염불동, 염불산 

 염주동, 염주산 

 칠보산, 칠보면 - 불교의 일곱 가지 보물(금, 은, 유리, 파려, 마노, 차거, 산호)인 칠보에서 유래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는 불교식 지명이 많이 남아있지만 옛날에 비하면 많이 사라졌다. 조선 중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여전히 불교식 지명이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로부터 또 몇백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의도적으로 지명을 바꾼 경우도 많고, 뜻이나 유래를 몰라서 변질된 경우도 많이 생겼다. 지하철 봉은사역처럼 논란이 없을 듯한데 논란 끝에 이름을 정하는 경우도 왕왕 생겼다. 태어나면서 받은 이름도 바꾸는 요즘,  옛 지명을 고집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했는데 지명이라고 가만 멈춰있을 수 있을까. 지명은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옛사람들은 불국토를 기원하며 불교용어를 지명에 붙였을 텐데 앞으로 우리는 어떤 지명들을 붙이게 될까.  뜻도 알 수 없고, 발음하고 힘들고, 길기는 더럽게 길어서 외우기도 힘든 요즘의 아파트 이름을 보면 부에 대한 욕망과 남과 차별화 되고프고 그걸 만세에 알리고픈 특권의식이 느껴진다. 높이 솟은 아파트만큼 우리네 가슴속 욕망도 저렇게 하늘을 찌르고, 나 역시 이런 풍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씁쓸하기는 하다. 우리는 우리가 붙인 지명대로 살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문득 두려워진다.  10년 뒤 20년 뒤의 지명에는 어떤 사회 현상과 공동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을까 궁금하다. 맴맴 울어서 매미, 이렇게 정하면 참 쉬운데 이름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각주

1. 선주, "Tettigetta isshikii의 국명에 관한 고찰," 네이버 카페, 2020년 7월 19일, https://cafe.naver.com/cicadasun/27

2. 윤순영, "[윤순영의 물바람숲]매미 탄생 13시간, 순간순간 생명의 신비," 김포신문, 2014년 8월 14일, https://www.igimpo.com/news/articleView.html?idxno=36962

3. 자현, 사찰의 상징세계 (서울:불광출판사, 2012)



사진각주

1. 강찬수, "관악구 적고 잠실·반포 많아…매미 많은 지역들의 공통점," 중앙일보, 2018년 7월 22일 수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821348#home

2. 재단법인 숲과 나눔, "[매미는 칫칫] 풀매미의 서식지 특성 및 분포 현황," 2021년 8월 3일, https://koreashe.org/board/?mode=view&post_id=4072




동영상각주

1. MBCNEWS, "바이든 "나도 잡았다"... 비행기 멈춰 세운 매미떼 대공습(2021.06.10/뉴스데스크/MBC)," 2021년 6월 10일, 동영상, 2:11, https://www.youtube.com/watch?v=Z5ZDPYbpF8k




참고문헌

1. 김선주. 한국 매미 사전. 서울:비글스쿨, 2022.

2. 김선주, 송재형. 한국 매미 생태 도감. 서울:자연과 생태, 2017.

3. 박호석. 불교에서 유래한 상용어 지명 사전. 서울:불광출판사, 2011.



<한국 매미 생태 도감>, <한국 매미 사전>의 저자 김선주는 네이버 카페 및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면 매미에 대한 각종 정보를 볼 수 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으니 매미에 관심 있는 분들께 베리베리 강추하는 바이다.

네이버 카페  https://cafe.naver.com/cicadasun

유튜브 '한국 매미'  https://www.youtube.com/@cicada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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