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오고 몇 달 후, 그가 보던 포르노가 불법 촬영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일주일은 계속 구역질을 해댔다. 바쁜 아침, 도시락을 겨우 싸서 출근을 하려는데 구역질이 시작되어 출근을 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잠을 자지도, 깨어있지도 못한 채로 숨만 간신히 쉬며 계속 생각했다. 피해자는 어떤 지옥 속에 살고 있을까. 그가 우리 집이나 사무실에 찾아올까봐, 보복을 할까봐, 협박을 할까봐, 두려운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게 불법 촬영물이라는 걸 안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불법 촬영물은 소지한 것만으로도 죄다. 그 사실은 허술하디 허술한 성폭력 관련 법조차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텔레그램 N번방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던 2020년 봄, 나와 기사를 보며 함께 욕하고 눈물도 흘렸으니까.
여성 단체들과 변호사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불법 촬영물 소지를 고발하고 싶은데, 내가 가진 증거들이 쓸 만하겠냐고, 고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들은 무엇이 있겠냐고 물었다. 경찰과 긴밀히 공조하며 불법 촬영물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 단체는 내가 발견한 파일이 현재 수사 중인 파일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증거로 충분히 고발이 가능할 거라고 했다. 다만, 문제는 고발인 신변의 안전이라며, 가정폭력 사실까지 있으니 그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마지노선을 정했다. 내 보금자리를 찾고 무사히 이사를 마치면 그때 고발을 하자고. 그가 나를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동네에 월세 집을 계약하고, 그가 아직 살고 있는 집에 남아있는 내 짐과 살림살이들을 찾아왔다. 택배, 우편물을 받는 이름도 철저히 다른 이름으로 설정해두고, 내가 사는 곳의 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엄마가 사는 집 현관에 CCTV를 설치하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비공개로 돌린 건 그보다도 한참 전 일이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경찰서로 향했다. 어떻게 왔냐고 묻는 민원실 직원에게 “불법 촬영물 신고하러 왔어요”라고 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고발장을 작성하는 일은 심플했다. 내가 본 것들을 최대한 자세히 서술하고, 파일들을 찍어둔 사진을 제출했다. 여성단체들과 주고받은 메일도 참고 삼아 넘겼다. 경찰이 물었다. “피고발인과는 무슨 관계인가요?” “배우자요.” 나도 모르게 전 남편이 아닌 배우자라고 답을 해버린 나에게 내심 놀랐다. 아직 법적 관계가 끝나지도 않았고, 피고발인과 이혼 소송 중이라고 말하게 된다면 이 고발의 취지가 흐려질 것 같았다. 30분 남짓의 고발 과정이 끝나고, 경찰은 조만간 조사 차 다시 한번 부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보름 남짓 후,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대면한 수사관은 심드렁한 태도였다. 적극적일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생각보다도 더 무성의한 태도에 조바심이 났다. 첫 질문은 내 신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름, 나이, 학력, 가족관계, 직업, 그리고 사는 곳.
“지금 등록된 주소지에 살고 계시나요?” “아니요.” 그와 살던 집에 더 이상 살지 않는다고 말한 이상,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는 어려웠다. “가정폭력으로 이혼 소송 중이고요. 그래서 더욱 신변 보호가 필요해요.” 마주한 수사관의 눈빛이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고발장에 쓴 내용들을 다시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 파일들을 발견한 경위, 불법 촬영물임을 알게 된 경로 등등. 수사관은 내게 왜 고발을 하려는지 물었다. 나는 그 질문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꾹 참고 답했다. 불법촬영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가혹한 고통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고. 그를 위한 정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선 그 촬영물이 유통된 경로를 파악하고, 유포자, 구매자, 소지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는 일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내 답을 듣던 수사관이 대뜸 말했다.
“소송에 쓰려면 그냥 가정폭력으로 고소하세요.”
수사관의 말에 맞서 싸워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한없이 쪼그라드는 걸 느꼈다. 그의 말이 불법 촬영물에 싸우고 싶어 하는, 전 남편과 소송 중인 이혼녀를 보는 세상의 시선과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세상이 망했다고 백 번 천 번 외쳤던 나지만, 시민의 안전에 최우선적 책임이 있는 경찰이 저렇게 나오니 품었던 일말의 희망마저 사그라들고 말았다.
수사관은 이어서 물었다.
"그 파일들 열어봤어요?"
"아니요."
"왜 안 열어봤어요?"
"그 파일들이 불법으로 촬영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걸 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가해인지 아니까요."
수사관은 내가 그 파일을 열어서 재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 진행이 어려울 거라고 했다. 내가 만약 그 영상을 묘사해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증거가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영상을 보지 않아서 파일명 자체로는 증거로 쓰기가 어렵다고 했다. 수사관은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다. 수사를 더 진행시켜봤자 영장 발부도 어려울 거고, 고발인 신분만 괜히 드러나게 될 거라며 고발을 취소하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죄를 짓지 않아서 죄를 수사하기 어렵다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한 시간 반 남짓 그에게 조사를 받다 보니, 그의 말로 보나, 태도로 보나 이 싸움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 고발 취소 서류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나의 불법 촬영물 고발 과정은 5개월 만에 끝이 났다. 아무런 성과도, 진척도 못 만들어낸 채로.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눈물이 터져 서대문에서 용산까지 고대로 걸어야 했다. 하필이면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퇴근시간이었고, 울음이 멈춰야 버스든 전철이든 타는데, 울음과 구역질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택시 탈 돈은 없어서 무작정 걷다 보니 용산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표현이 은유가 아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말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내가 그 남자를 살인죄로 고발했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그 수사관은 "소송에 쓰려면 가정 폭력으로 고발하라"라고 비아냥거릴 수 있었을까. 여자들의 몸을 질겅질겅 씹어 대며 물어뜯고, 맛보고, 팔던 자들. 그들은 왜 살인자가 아니란 말인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저지른 행위보다도, 그 살해는 살해가 아니라는 세상의 태도에 진절머리가 난다.
그는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겠지.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고, 퇴근해 친구들과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고, 지난 야구 경기를 보고, 가끔 시위에도 나가겠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약간 지루해지면 그런 비슷한 파일들을 뒤져 여자들의 몸이 공격당하는 걸 보며 즐거워하겠지. 내가 불법 촬영물 소지죄로 그를 고발했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로. 자기가 보던 영상 속의 여자들이 어떤 어둠 속에 갇혀있을지는 상상도 못 한 채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살인자'들과 일상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뒤틀려버려야 하는 건 저들의 일상인데, 생존자와 연대자들의 꿈틀거림은 그들의 일상을 뒤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너무나 보편이어서, 그들의 가해를 용인하고 조장해온 역사가 너무도 견고해서. "그 방에 입장한 너희가 모두 살인자다"라는 웹자보를 열심히 퍼 나르면서도, 그 '너희'가 내 남편일 줄은 몰랐네. 가해의 역사는 그토록 견고하지만, 내 삶은 비켜갈 거라고, 착각했다. 나는 그 착각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