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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옥 Jun 06. 2020

부모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닙니다

미분화의 비극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온 신경이 곤두서게 돼요. 늘 똑같은 말씀을 하시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제 생활에도 집중하지 못하겠어요. 저는 엄마가 이런 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엄마들이 하는, 그런 말 있잖아요. 난 잘 지내고 있으니 신경 쓰지 말고 너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말이요. 저는 꼭 엄마의 인생까지 두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언제까지 엄마의 삶을 제가 돌봐야 될까요?” 






우리가 꿈꾸는 부모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곁에 계시면서 성장 과정을 함께하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님의 지지와 격려 속에 세상 밖으로 나가 독립을 하게 됩니다. 그리울 때 달려가면 언제든지 푹 안겨 쉴 수 있고, 있는 힘껏 사랑을 받지만 떨어져 있더라도 든든한 안정감을 느낍니다. 몸은 멀리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연결된 느낌을 받는 것이죠.


독립은 단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안정적인 유대 관계를 유지하면서 분리와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죠. 부모가 결혼생활의 외로움과 허전함, 실망감을 자녀를 통해서 풀려고 하면 자녀는 더 이상 자녀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자녀의 분리와 독립은 부모가 자녀의 생활과 감정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존재 자체로 이해되는 경험, 받아들임



정서적 독립을 이루기 위해 제가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부모를 받아들이는가, 부모는 나를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임은 존재를 온몸으로 포용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존재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 경험입니다. 그 경험이 충족되면 정서적 독립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탄생과정에서 우리는 엄마와 한 몸을 이루고 있다가 최초의 분리를 경험합니다. 이 경험은 너무 까마득해 기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가면 자신과 부모 사이의 연결 또는 단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분화된 사랑의 비극



어린아이는 자의식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부모와 자신을 분리하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성장한 뒤에도 이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부모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 것이 아닌 줄도 모른 채 과거로부터 온 감정에 갇혀 살아갑니다. 이것이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부모와의 분리와 독립은 한 몸으로 이어져 있다가 다시 떨어지는 태초의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입니다. 온전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조금씩 자연스러운 감정이 올라옵니다. 자신을 편안하게 느끼려면 먼저 부모와 건강하게 연결되고 편안히 떨어질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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