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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Jun 09. 2024

나의 독일 장바구니, 감기엔 포토푀

5. 감기엔 포토푀


 혼자 아프면 서럽다는 말을 괜히 하는 게 아니란 걸 독일 살면서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걱정해 줄 부모님과 친구가 옆에 없어서가 아닌 바로 음식 때문에 나는 몸의 아픔에 더해 마음의 아픔까지 앓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선 가볍게 아프더라도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가 큰 병을 막는다. 초기 대응을 잘 못하더라도 집 밖을 나서면, 아니 집 밖을 굳이 나서지 않아도 몸보신할 음식들을 여기저기서 시켜 먹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아프더라도 '아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아서 짜증 나네. 기침이 나서 짜증 나네.' 정도의 투정에서 끝낼 수 있었는데 내가 처음 독일에 왔던 시절엔 배달 서비스가 그렇게 성행하지 않았던 때라 배달 어플을 켜봤자 햄버거나 피자 운이 좋으면 중국음식을 볼 수 있었다. 음식맛도 제대로 못 느끼는 판에 버석거리고 목 막히는 씬피자를 욱여넣으라니,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에서처럼 병원을 가려고 여기저기 검색을 해봤지만 감기 걸렸을 때 독일 병원 가봤자 도움 하나도 안된다.라는 글이 수두룩했다. 그 이유인즉슨, 이런 감기는 며칠 혹은 몇 주 내에 나을게 뻔하니 감기차를 마시라며 별 진료도 해주지 않고 보낸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눈물이 나본적은 없었는데 이런 아무것도 아닌 감기 때문에 눈물이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데 괜히 그땐 그게 서러웠다.

진밥에 따뜻하고 짭짤한 된장찌개를 먹고 싶다거나 아니면 그냥 죽집에 가서 내 보양식이라도 사 오고 싶다거나 이런 생각을 아무리 해봤자 나는 그냥 지금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방에서 감기차나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초반, 자취가 처음인데 그 자취의 시작이 해외였던 나는 그저 이렇게 별것들이 다 서러웠다.

물론 지금의 나는 감기차와 비타민으로도 그저 잘 지내고만 있다. 아픈 나를 안타까워하고 징징대며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이 내게 더 손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건강해지려 오만 노력을 다 한다.


우선 포토푀. 아시아마트 덕분에 이제 한식이 그리워서 눈물짓는 날은 없지만 사실 아시아마트가 일반 마트처럼 여기저기 분포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먹고 싶다고 그까지 찾아가는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찌개류가 먹고 싶을 때 고추장 된장 쌈장류 아니면 소스라거나 가루라거나 뭔가 있다면 한국식 찌개요리는 뚝딱인데 그게 집에 항상 있는 게 아니란 게 문제지..


그럴 땐 독일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유럽식, 아니 프랑스식 찌개를 끓여 먹는다.


버섯, 양파, 리크, 양배추 등 여러 채소를 넣은 다음 더 깊은 국물맛을 위해 치킨스톡과 고기(나는 주로 소시지를 쓴다)를 넣고 곰탕처럼은 아니지만 곰탕을 끓이는 마음으로 약불에 푹 끓여준다. 재료가 꼭 한창 다이어트 식품으로 유행했던 마녀수프 재료 같다.


 독일 살면서 의사는 못 믿어도 약국은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것들이 많은 게 아플 때 괜히 약국쇼핑을 하게 돼서 지갑이 위험해질 때가 종종 있다. Dolo Dobendan이라는 목캔디는 항상 집에 구비해 놓는다. 실제 약 성분이 들어있어서 먹으면 혀가 약간 아릿한 게 느껴지는데 그게 또 건강해지는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목 통증도 완화시켜 준다. 그렇다고 일반 사탕처럼 여러 개씩 까먹으면 당연히 안된다... 이것도 약이기 때문에.

 세이지차는 독일인들 집에 가면 무조건 있다. 감기에 걸리거나 배탈이 났거나 두통이 있거나, 그냥 아프면 이 차부터 찾는다(케모마일 차도 동급이다.). 아프다고 하면 차부터 마시라는 독일인들의 태도에 처음에는 조금 이해가 안 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나도 수긍하고 차부터 마신다. 아플 때 어쨌든 물 많이 마시면 좋은 건 맞으니까 차 마시고 효과가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닌가.

 Grippostad C. 뒤에 C가 붙어있는 걸 보면 대충 눈치채시겠지만 비타민C 함량이 높은 감기약이다.

처방 약만큼의 효과는 못 느꼈지만 감기가 오래가지 않게 도와주긴 한다. 하루종일 10 정도로 아팠던 게 8, 7 정도로 점차 내려가는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플 땐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역시 약보다는 따뜻한 물과 음식을 충분히 섭취해 주는 게 최우선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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