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획자 이형식 Mar 30. 2024

내용과 형식

기획서 잘 쓰기 위해 기획을 하는가. 기획 잘 하기 위해 기획서를 쓰는가


기획서를 잘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기획서를 잘 쓰려고 하지 말자.


기획서를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서를 잘 쓰는게 ‘목적’이 되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기획서란 당신의 기획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획은 생각이고,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당신의 생각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로 만드는 것이 기획서다.

당신의 목적은 당신의 좋은 기획을 실현하는 것이지, 좋은 기획서를 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 ‘기획을 하는 것 = 기획서를 쓰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하루종일 자리에서 기획서만 쓰고 앉아있다.

“저 일하고 있거든요.”


기획서는 기획이 실현될 때 만이 존재 의미를 갖는다. 실행되지 못한 기획서는 쓰레기다. 따라서 ‘기획서’ 잘 쓰는 것에 지나치게 함몰되면 본질인 ‘기획’을 간과하게 되고 결국 ‘기획서’를 잘 쓰지 못하게 된다.

기획서의 본질은 ‘작성’이 아니라 ‘기획’이다. 나는 이제부터 기획의 관점에서 논하는 본질적인 기획서 작법에 관해 당신과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이런 관점을 전제로 처음의 질문을 바꿔 보자. ‘어떻게 하면 기획서를 잘 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의 기획이 실현될 수 있을까?’이다.


첫째, ‘내용’이 좋아야 한다.

좋지 않은 내용으로 좋은 기획서를 쓰자? 궤변이다. 알맹이가 별로인데 포장으로 좋게 보이게 하자? 사기다.

형식보다는 내용이다. 콘텐츠가 핵심이다. 요사이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PPT 제로 운동을 펼치고 있다. 기획서의 형식보다는 내용에 더 신경쓰라는 강력한 메시지의 발로다. 50점짜리 기획은 몇 점짜리 기획서로 표현되어야 맞을까? 80점? 90점? 딱 50점으로 보여야 옳다. 그렇다면 우리는 50점짜리 기획을 50점 기획서로 만들기 보다는 되도록 80점짜리 기획을 80점 기획서로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적쟎은 경우 당신의 90점짜리 기획이 당신의 기획서를 통해 30점짜리로 왜곡되어 보인다는 것인데 그 때가 비로소 기획서를 잘 쓰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한 순간이다.


둘째, ‘형식’이 맞아야 한다. 

당신의 90점짜리 콘텐츠가 90점 기획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기획서의 형식이 중요하다. 복잡한 형식은 독이 된다. 형식은 최대한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내용이 빛난다.


“Form Follows Function.”

형식(형태)은 기능을 따른다


현대 건축사에 길이 남을 루이스 설리반의 명언이자 독일 바우하우스 디자인 철학을 함축한 명제다. 기획서 작성도 건축 디자인과 같다. 기획서의 형식(form)도 철저하게 기능(function)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기획서의 본연의 기능(function)은 ‘커뮤니케이션’이다. 기획의 내용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형식이란 얼만큼일까?


다양한 관점들이 있겠지만

나의 결론은 ‘2형식’이다.


기획서는 본질적으로 상대와의 ‘질문 - 대답’의 대화형식이다. 대화란 단순화하면 ‘질문’과 ‘대답’의 2형식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에 다름 아니다.

기획의 관점으로 기획서를 쓴다는 것은 곧 ‘질문 - 대답’의 대화를 설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현실과 충돌이 발생한다. 우리네 현장의 기획서 작성방식은 2형식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분석 - 추진배경 - 3C분석 - SWOT분석 - 경쟁사분석 - 컨셉도출 - 실행계획 - 기대효과’


어디서 많이 보던 것인가? 어쩌면 오늘도 당신의 기획서 폴더안에 자연스럽게 저장되었을지도 모를 이런 작금의 기획서 작성방식은 ‘대화형식’과는 거리가 멀다. 대화로 간주한다 해도 혼자 떠드는 독백이거나 내 지식을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훈화에 가깝다. 나는 ‘공장 도제식 매뉴얼’, ‘규격화된 거푸집 구조물’ 등으로 부른다. 이런 형식은 당신의 90점짜리 기획을 30점으로 보이게 하는 주범이자 비즈니스 현장에 불량문서를 범람하게 만드는 일종의 종양이다. (심지어는 뭔 소리인지 도통 알 수 없는 0점짜리 기획서도 태어난다)


기획서는 형식보다 내용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형식이 더 중요하다.


나는 이 책에서 당신의 기획의 퀄리티에는 토를 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기획은 이미 훌륭하다. 대신 나는 당신의 그 훌륭한 기획이 평가절하되지 않을 기획서 작법을 소개할 것이다. 당신의 기획이 지닌 가치, 딱 그만큼 빛나게 하는 문서 설계법을 제안할 것이다.


해법은 심플하다. 당신의 기획을 ‘2형식의 대화형식’으로 기획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곧 기획서를 ‘작성’이아닌 ‘기획’의 관점으로 쓰는 새롭고도 본질적인 방식이라 믿는다.


아, 잘 쓴 기획서를 손에 쥐게 되는 건 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