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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Oct 24. 2022

인생에선 그만둘 용기도 필요하다.

인생이 달리기에 비유된다면,

나는 정말 쉼 없이 열심히 달려왔다 자신한다.

누가 칼 들고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뭘 위해 열심히 살아온 걸까?


달리는 중 트랙 위 불쑥 튀어나온 돌멩이 하나에 걸려 넘어졌었다.


그 덕분에 나는 제 자리에 멈춰서서, 내가 그간 걸어왔던 길과 나 자신의 상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달리는 동안 내가 신은 운동화는 해져 끈이 풀려 해져 있었다.

바지 고무줄은 언제 이렇게 살이 쪘는지 헐렁해졌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계절의 바뀜을 전혀 즐기지 못하고 살았다.

사는 내내 뭐가 그리 바쁜지 조급증에 걸려 살았던 내 모습을 후회하게 되었다.


분명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것인데.

왜 난 그동안 행복하질 못했나.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참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잘 달리던 내가 넘어져 내 인생을 다시 보게 된 사건은 불현듯 찾아왔다.


회사에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어떨 땐 정신적 지주라 믿었던 사람들에게 갑질과 괴롭힘을 겪었던 사건.

그 사건 이후로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고민했다.

“지금 당장 회사를 그만두면, 나 뭐 해 먹고 살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막막함.


그게 내가 10년 이상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자 마음먹은 계기였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긴 취준생 시절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면접을 보던 내 모습이 생각나 참았는데. 나이를 먹어갈수록 참을성이 없어진 건지 혹은 눈이 뜨인 건지.


길고 긴 인생 트랙에서.

내 달리기를 방해하는 아주 조그마한 가치 없는 돌덩이에 불과한 사건.

고작 그 정도의 아픔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겐 큰 충격이었고 그 이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직장을 다니며 습관처럼 달고 살던 우울증과

혼자 있을 때 끊임없이 중얼거리던 말.

“죽고 싶다.”


그제야 제대로 된 진실이 보였다.

지금 내 정신력(운동화)은 더는 달리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걸.

 

그랬다.

나는 살려고 퇴사했다.


퇴사하면 당장 월급이 끊겨 굶어 죽을 것 같고, 이 세상이 무너져내려 망할 것만 같았는데.

퇴사 전 막연히 느꼈던 두려움은 정작 내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단짝 친구가 얼마 전 내게 물었다.


“회사 그만두니 좋아?”


응. 너무너무 좋다.

행복하다.

진작 그만둘걸.


쓰고 있던 소설을 완결까지 써 내려간 기념으로.

얼마 전 나는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내 여행 일정에는 순천만 국가정원이 끼어 있었다.

그간 일하러 수도 없이 갔던 지긋지긋한 그곳.

10번 이상 방문했음에도 일만 하느라 그 예쁜 정원을 세세히 돌아본 적 없었다.

방문할 때마다 느꼈던 그 아쉬움을, 퇴사하고 나서야 풀어본다.


피어난 꽃은 예뻤고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무척 많아 놀라웠다.


나는 여전히 쉬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쉬려고 놀러 간 곳임에도, 한번 방문하고 두 번 다시 이곳에 못 올 사람처럼 지도를 훑으며 모든 곳을 걸어 돌아다녔다. 그랬음에도 나는 순천 정원의 모든 것을 보지 못했다.


내년 정원박람회가 열리는 탓인지 공사하는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내가 오늘 본 정원은 다음에 와서 보게 될 정원의 모습과 완전히 달라져 있겠다는 것을 또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랬다. 이곳은 여러 번 가 볼 만한 곳이었다.


평일임에도 동문 근처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이 사람들을 보며 나는 또 예전에 했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기에 평일에도 이곳에 놀러 온 것일까?’


세상에 나 같은 백수가 이렇게 많을 리는 없을 테고.

햇볕은 쨍쨍하고 그늘은 적고.

물 한 통 옆에 끼고 계속 걷자니 수련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동문 근처의 정원들은 화려했다. 나라별 특징을 제대로 잡은 세계 정원들도 아주 볼만했다. 프랑스 정원을 갔을 때는 나도 모르게 파업으로 가지 못했던 베르사유 궁전이 떠올라 기분이 꽁해졌지만.

 

그에 반해 서문은 비교적 한적했다.

생각지도 못한 작은 동물원에 감탄하고, 호숫가의 정적인 분위기에 취해 한동안 쉬다 보니.

내 머릿속을 괴롭혔던 그간의 고민이 다 무슨 상관이냐 싶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걸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행복한데.

직장 그거 그만둔 게 대수랴.


인생 그거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어떻게든 되겠지.

힘 풀고 살기로 했다.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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