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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Jul 01. 2022

혐오가 습관인 K 부장

투쟁하다 포기합니다.


K 부장은 차장 시절부터 나와 만나 일을 간혹 함께했다.


딸만 셋인 K 부장에게는 아주 안 좋은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여성 혐오가 뼛속까지 배인 분이셨다는 거다.


“여자는 25 넘으면 결혼 못 해. 의사들도 그 이상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니까.”


K 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이 이야기가 왜 나왔냐고?


뉴스 전, K 부장은 여자 아나운서에게 “주말엔 뭐 했냐?”, “혼자 살면 안 외롭냐.” 등의 이야기를 건네곤 했는데. 그때 여자 아나운서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아. 저 주말에 의사랑 소개팅했어요.”


이제는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한 아나운서의 입에서 그저 사소한 사담이 나왔을 뿐인데.

당시에는 스튜디오에서.


“아, 그래? 좋았겠네.”

“좋기는요. 완전 비매너에 별로였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화기애애하게 오가 놓고.


정작 뒤돌아서 부조정실로 왔을 땐 스태프들에게 제일 위의 말을 하며 뒷담화를 해댔다.


“여자는 25 넘으면 결혼 못 해. 의사들도 그 이상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니까. 쟤도 지금 27이지? 글렀어, 이미.”



병이시네요. 지랄 병.



그리고선 내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셨다.

물론 난 K 부장의 저런 말을 하도 들어 그냥 흘려듣고 아무반응하지 않았다.


비겁하다고?

초반에야 K 부장의 개 소리에 반항한답시고 이말 저말 해봤지.


모 여자 연예인이 잘생긴 연하의 남자 배우와 결혼한다는 소식에.

K 부장 왈.


“저렇게 이 남자 저 남자 놀 만큼 놀아본 여자들은 결혼해서도 오래 못 가.”


이런 소리에는 나 역시 K 부장에 빙의해 그가 한 말 그대로 남자 여자만 바꾸어서 대꾸했다.


“저 남자도 이 여자 저 여자 많이 만났는데요. 원래 결혼은 끼리끼리 이즈 싸이언스라는 말이 있어요. 비슷한 사람끼리 하는 법이에요.”


은근히, 아니 대놓고 꽁해있던 K 부장은 다음부터 내가 자리에 있을 때마다 여자는 이래서 안 된다울어버리면 다 되는 줄 안다. 는 등의 소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울어서 저런 소리를 들었냐고?


아니. 회사의 다른 사람이 억울한 일을 겪어 그런 일을 당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K 부장은 일부러 내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내 반응을 살폈다.


나중엔 무시가 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


꼬박꼬박 K 부장의 말을 남과 여만 바꿔서 되돌려줬더니,

나중엔 K 부장이 다른 사람에게 “쟤는 싸가지가 없어.”라는 뒷담화만 무지무지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럼, 내가 여성 혐오병에 걸린 K 부장의 말에 긍정해줬어야만 했다는 건가?

당시 30 초반이었던 내게 K 부장은 또 이런 말을 자주했다.


“여자가 늙어서 결혼하면 애를 못나. 낳아도 문제가 꼭 생긴다니까.”

“그럼 남자는요?”

“남자는 상관없지! 나이 들어도 동남아 같은 곳에서 어린 여자랑 결혼해서 애 낳으면 되니까.”


참다못한 나는 K 부장에 빙의해 또 이런 말을 해버렸다.


“제 친구가 11살 연상인 남자랑 대학 졸업하고 2년 있다가 결혼했거든요. 근데 지금까지 애가 안 생겨요. 검사해보니까 남자가 너무 부실하다고 병원에서 그러더래요. 남자도 나이 들어도 애 갖기 힘든 건 똑같더라고요.”


내 말에 버럭한 K 부장은 짜증을 냈다.


“남자가 그래도 능력은 있나보지. 11살이나 어린 여자애랑 결혼한 거 보면.”

“아뇨. 약사인 제 친구가 먹여 살리고 있어요. 그 11살 연상인 아저씨는 결혼할 때부터 사업이 망해서, 지금 빚도 2억이 넘더라고요. 어쩌다가 늙은이랑 결혼했는지, 내가 그때 그렇게 말렸는데. 에휴.”

  

약간의 연기력을 가미해 사실에 기반한 내 친구 이야기를 부풀려 부장에게 전했다.     

그 탓이었을까.


K 부장은 한동안 내 앞에서 혐오의 말을 자제했다.     

하지만 사람은 습관의 동물.


잊힐만하면 K 부장의 입에선 멍멍이 소리가 튀어나왔고.

나는 이젠 대꾸하기도 싫어 전화하는 척, PD가 찾는 척 연기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지금은 안다.

집에 여자들만 가득한 K 부장의 자격지심이, 회사에 나와서 여자 혐오를 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걸.

   

그런다 치더라손. 혐오는 정당화될 수 없다.     

끝까지 K 부장의 부당한 말을 받아치고 투쟁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난 이 지긋지긋한 방송국을 벗어난다.


퇴사할 때, K 부장은 또 내 뒤에서 이런 말을 하겠지.


“그러니까 여자 뽑아놓으면 안된다니까. 여자애들은 끈기가 없어.”




끈기 없는 건 당신 딸이겠죠.

저번에 보니까 대학 리포트도 아버지에게 써달라, 자기 컴퓨터가 고장이 나도 AS 센터에 맡기지 않고 아버지에게 고쳐달라 내려오셨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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