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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Jun 27. 2022

김치는 담글 줄 알아야 여자지!

헛소리에는 뭐라 말을 해야할 지 아직도 모르겠다.


10년도 넘은 날 겪었던 일이지만.

아직도 뇌리에 잊히지 않는 걸 보니, 나도 참 쪼잔하구나 싶다.

 

방송국 입사 당시, 나는 제작 2팀에 발령이 났다.

그때는 몰랐다.

제작 2팀에 선배들 모두가 꺼리는 A 차장님이 있다는 것을.     


그분은 성질이 꽤 까칠한 편이셨고,

가정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면 회사에서 푸는 스타일이셨다.

  

이를테면 김장으로 사모님과 싸우셨을 때.

A 차장님께서는 회사에 와 이리 말씀하셨다.     


“김치 못 담그는 여자는 쓸모가 없어. 김장도 못 하면, 그게 여자냐? 귀싸대기를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니까?”     


10년 전에는 갑질 금지법,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등의 인식이 회사에 희미하게나마 존재조차 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게 무슨 개 뼈 뜯는 소리야. (특별출연. 우리집 강아지.)



‘혹시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그리 생각한 나는 한참을 씩씩대던 A 차장에게 물었다.     


“차장님. 차장님은 김치 담글 줄 아세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당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부러 웃으면서 물었다.     

만약 담글 줄 안다고 A 차장이 대답한다면,     


“어머! 진짜 대단하세요! 어떻게 차장님은 그렇게 재주가 많으세요~~!!”     


라고 돌고래 비명을 질러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A 차장 왈.     


“내가 왜 담그냐? 마누라가 해야지.”    

 

아, 네….

결국은 A 차장의 한탄은 여자라면 간장도 직접 만들어 먹어야지, 사 먹어야 하겠냐며 이런 이야기로 끝이 났다.


(내가 이런 소리 들으려고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하고, 전국 방송사 총 12번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며 여길 들어왔나 자괴감이 들어.)


그렇다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하나 들 것이다.


“저 A 차장. 아들만 있는 사람 아냐?”     


노노. 딸 하나 아들 하나 골고루 있는 유복한 집안이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가족 뒷담화, 불평불만으로 화를 내면서 가족에게 끔찍하리만큼 잘한다.

   

방송이 빈 시간에 사모님께 아주 다정스레 전화해서


“자기, 뭐해. 밥은 먹었고?”


라며 꿀 떨어지게 통화하는 모습을 아주 여러 번 보았다.


A 차장님은 회사에서 취미 거리가 하나 있으신데.

그것은 처음 입사한 사람을 하나씩 요주의 인물로 찍어 미워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그를 봐왔던 사람들은, 쓸데없는 흠을 잡아 눈물이 쏙 빼도록 신입을 혼내는 A 차장을 보면서 말한다.


“또 시작이시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TV 부조정실 내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눈빛 교환을 한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이렇게 A 차장이 신입 잡도리를 하고 나면, 울면서 일주일 안에 회사를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견디는 아이들은 정말 오래 회사생활을 한다는 거다.

 

당연히 나 역시 후자 쪽이었다. (제기랄. 그때 다른 일 찾을걸.)     


견디는 아이들은 마음이 독해져서 나중에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원으로 변모한다.

A 차장에게 호되게 혼냈던 사원들이, 당시 어떤 생각으로 일을 했는지 알듯도 싶다. 나도 이런 생각을 했거든.


‘언젠가 너보다 실력 키워서 내가 너 꼭 밟아주리라.’


분노는 나의 힘.

그리고 회사는 연차가 짱이다.

(내가 회사에서 선배를 밟아줄 일은 아예 안 생긴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A 차장과 미운 정이 들어 가끔 안쓰럽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고집도, 성질도 조금씩 꺾이더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냥 이곳에서라도 회사 뒷담화 겸 일기처럼 과거 방송국에서 겪었던 일들을 풀어보고자 한다.     

수고했다, 젊은 시절의 나.

그리고 조금만 더 고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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