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Nov 03. 2023

I am sorry

나문희 선생님의 'I can speak'라는 영화를 봤다. 위안부 관련 다른 영화와는 달리 웃을 만한 장면이 많아 더 가슴 아팠던 것 같다. 평생 숨기고 살라시던 친정엄마의 산소에서 옥분이는 울부짖는다.


"엄마, 엄마! 나한티 욕봤다고 한 마디만 해주지... 왜 그랬어, 왜 그랬어? 나 엄마랑 한 약속, 지키려고 했는디, 이제는 말혀야겠어. 엄마, 엄마..."


그 당시에 집으로 돌아온 딸들에게 우리의 모든 어머니들은 그랬을 것이다. 평생 숨기고 살아야 한다고. '일본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늘 그랬다. 정부는 옥분이 엄마처럼 '욕봤던' 그분들의 아픔보다는 늘 졸속으로 일을 진행시켜, 할머니들의 피멍에 더 큰 상처를 주곤 했었고, 일본은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늘 힘자랑을 하곤 했다. 몇 년 전에 위안부를 소재로 한 희곡을 쓰면서 나는 많은 자료를 찾고 읽었다. 분노와 슬픔과 죄송함이 가슴 가득 차올라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린 나이의 옥분이가 계속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너무 아프다고, 너무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고향 땅만 돌아가면 될 줄 알았으리라. 아픔을 다 품어줄 줄 알았으리라. 가족의 수치가 되고 짐이 되어버린 그 소녀들 중에는 가족과 인연을 끊고 사는 분들도 꽤 많았다. 옥분 할머니가 보여준 상처투성이의 몸과 상처투성이의 마음으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았을, 아무 죄 없는 우리의 할머님들! 등록된 분들 중에 살아계시는 분의 숫자가 계속 줄고 있다. 아직도 생떼를 부리며 힘자랑만 하고 있는 일본이, 'I am sorry'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때가 올까? 돌아가신 분들도, 아직 살아계신 분들도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 약한 나라의 딸로 태어난 죄밖에 없던 소녀들에게 삶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모질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있는 날, 하늘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돌고 다닐 원혼들이, 깃털처럼 가벼운 영혼이 되어 저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리라.

이전 09화 가족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