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어느 정도 아이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이 밝은 아이, 뭔가에 화가 나 있는 아이, 불안하고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아이, 그리고 가장 심각해 보이는 건 '자포자기'를 드러내는 초점 없는 눈빛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화가 나 있는 아이는 어느새 화가 풀려 방긋 웃지만, 슬픈 눈빛과 자포자기 느낌의 눈빛은 내가 바꾸기 힘든 절벽 같은 것이었다.
오랫동안 아이 가슴에 쌓여있는 그 상처를 내 힘으로 어찌한단 말인가! 때로는 일기장에 슬쩍 내비치기도 하지만, 보통은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일 년을 보내다가 새 학년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생님은 너를 사랑해.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나의 제자는, 분노와 비웃음이 묻어있는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던 아이였다. 내가 아이의 선생님이라고 해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친구들은 그 아이를 피했다. 아이는 스스로 왕따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건 아이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아이는 그렇게 나와 일 년을 보낸 후 나를 떠나갔다. 그리고 다음 해 스승의 날에 꽃 한 송이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와서 별말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렇게 아이는 스승의 날이면 나를 찾아오더니, 언젠가부터 내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나는 정말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 나는 저런 부모를 만났을까? 그게 항상 화가 났어요. 다른 집 아이들은 다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아닌 것 같았거든요. 나는 아버지, 엄마의 자식인 게 항상 부끄러웠어요. 빨리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나는 게 제 목표예요. 어린 나이에 가출은 자신이 없어서요."
아이는 중학생 때 게임 중독에 빠졌다. 그나마 자기가 살아있는 느낌을 주는 고마운 것이라고 했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꾸만 한숨 소리가 크게 나올까 봐 조심하곤 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게임중독도 우울증의 한 증세라는 것을.
나는 아이에게 공부를 좀 해보라고 했다. 내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꺼냈다. 너무나 가난했고, 아버지는 장애인이셨고,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늘 바쁘신 어머니는 아들의 공부를 꼼꼼히 챙기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초등학생 때 학교도 종종 빠지고, 숙제도 자주 안 해 간 학생이었다는 것, 그러다 중학생이 되어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데, 공부라도 잘해야 내가 성공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그때부터 미친 듯이 공부를 하기 시작해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장학생으로 다녔다는 것,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당당히 취직을 했다는 것(남편은 40대에 공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중간 정도의 성적이었지만, 그 이후 성적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가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공부에 매진하면서 아이의 굳은 표정도 조금씩 풀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 분위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하지만 마음의 깊은 상처는 꼭꼭 숨어있다가 아이에게 '우울증'이라는 병명으로 찾아왔고, 아이는 적극적으로 전문가를 만나며 극복해 내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서 우울 증세가 더 심해져 계속 약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 급기야는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자살 충동까지 느낄 정도가 되어 직장까지 그만두었던 것이다.
한 일 년 정도 힘든 시간을 견디던 아이가, 다시 벌떡 일어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알코올 중독에 폭력성이 있던 아버지,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딸에게 풀던 엄마!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장소가 집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왜 저러고 사나? 엄마는 왜 저라고 사나?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 왜 아이는 낳아서, 자기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나! 부모를 보면 미움이 치솟아 올라 되도록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부모님을 용서한다고 했다. 나는 도움이 될 만한 책들과 좋은 영상들을 꾸준히 추천해 주곤 했는데,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온 것이다. 책이나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주신 고마운 분들 덕분이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는 새엄마 밑에서 자랐어요. 구박을 엄청 받고 자랐대요. 새엄마가 낳은 자식들과 차별도 많이 받았고요. 그래서 저처럼 일찍 집을 나와 빨리 가정을 만들고 싶었나 봐요. 본인도 이런 남편, 이런 아빠가 될 줄 몰랐겠지요. 스물네 살에 스무 살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거죠. 일이 제대로 안 풀리기 시작하면서 술에 입을 대기 시작했고, 폭력이 심했던 아버지를 미워했으면서 그대로 따라 하게 될 줄 몰랐을 거예요. 엄마 또한, 자기 집이 싫어서 아버지를 만나 일찍 결혼을 했지만, 다시 지옥이 시작된 거죠."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엄마의 어린 시절, 그리고 스물넷의 남자와 스무 살의 어린 여자를 떠올려봤어요. 지금의 제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죠. 스스로도 바로 서지 못하는 두 사람이 그래도 한 아이를 재우고 먹이고, 공부까지 시키며 키워냈다는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저를 버리지는 않았잖아요."
제자는 이렇게나 큰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직은 관계가 어색하지만, 저주하던 두 사람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으니, 그 세 사람은 점점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상처가 가시가 되어 옆에 있는 사람을 찌르고, 그 상처받은 사람은 또 옆에 있는 사람을 찌른다. 정말 무서운 '이어짐'이다. 그래서 과감히 '질긴 내림'을 끊어낼 용기가 있어야 그 집안의 고통이 막을 내릴 것이다. 나의 지혜로운 제자처럼 말이다. 요즘 이 제자를 떠올리며 나 또한 좀 더 성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라, 내 스승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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