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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an 03. 2024

우리 부부가 돈 쓰는 법

저희 부부는 돈을 이렇게 쓰고 살았습니다.


​어머님이 목돈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드렸어요. 저는 어머님의 은행이었거든요. 평생 가난에 한 맺힌 어머님께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지요. 따로 사는 형님께 말도 안 하고 저 혼자 해드렸습니다.


IMF가 터졌습니다. 친정 엄마로부터 사촌 언니의 아들이 폭삭 망해서 알거지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이들은 처가에 맡기고, 거처가 없어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요. 무스탕 가게를 계속 늘리다 그리된 거죠. 미리 가까운 친척들에게 돈을 빌린 상태라 모두 나 몰라라 한다더군요. 그 말을 남편에게 하면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어요. 저희가 갖고 있는 현금이 없어 몇 개 보험 중 하나를 깨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러지 말라며 대출 삼백만 원을 받아주더라고요. 저는 엄마께 전화해서 조카며느리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돈을 입금해 주었습니다.


그 후 시누님이 이혼을 해서 경제적 어려움이 컸어요. 가끔 생활비를 도와드리다, 조카가 대학생이었을 때 학비를 제 월급으로 입금해 주었어요. 시누님은 늘 그러시더라고요. 작은 외숙모 은혜 잊으면 안 된다고요.


남편과 결혼해 살면서 돈 문제로 싸운 적은 없었습니다. 서로의 집안 챙기느라 부부 싸움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지만, 저희는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항상 같은 마음이었지요. 좀 더 좋은 선물, 좀 더 필요한 선물을 해서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면 저희가 행복했으니까요.


저희 시어머님이 무학이셨고, 그 형제분들도 많이 배우지 못하셨는데, 어머님과 성격이 비슷하셔서 투박한 면이 있으셔도 잔정이 많으셨어요. 어머님 오래 모시고 살 때 특히 저를 예뻐하신 막내삼촌은 직업이 경비셨는데, 매우 성실한 분이셨어요. 가족 모임에서 술 드시면 욕을 잘하셔서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나중엔 그분 본심을 아니까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그분은 전화하시면 늘 저를 위로해 주셨어요. 성격 벨쭉맞은 자기 누님 모시고 사느라 고생 많은 거 안다, 우리 누님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늘 가슴이 아프다, 고맙다, 그러셨어요


어느 날, 막내삼촌이 무릎관절이 아파 수술을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몸이 자주 아픈 제가 그때 서울 올라갈 컨디션이 안 되어서 삼촌 계좌번호를 묻고 50만 원을 입금해 드렸어요. 남편에게는 며칠 후에 말했고요. 퇴원하신 후 막내삼촌이 울며 제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지혜 에미야, 정말 고맙다. 이 은혜 평생 안 잊으마. 입원했을 때 돈이 없어서 아프면서도 걱정이 많았는데, 니 돈이 큰 도움이 되었어. 내가 죽어도 니 은혜 안 잊을 거야  너 잘 되기를 빌 거야."


그 삼촌은 고마운 마음에 친척 결혼식이 있으면 미리 주차장에서 만나자고 약속하시고, 아들 차 트렁크에서 김장김치를 꺼내 저희 차로 옮겨 주신 적도 있었어요.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도 김장김치를 택배로 보내주셨고요.


진심으로 주는 게 전 좋았습니다. 힘든 상대방이 좀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런 도움과 나눔을 받은 많은 분들 중에, 때로는 제 뒤통수를 치고 가슴 아프게 한 분도 계시지만, 저와 남편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능력과 마음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고, 그걸 행동으로 옮긴 거니까요


제가 부모님께 감사하는 몇 가지 중에 나눔의 기쁨을 알려주신 걸,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삽니다. 그걸  알아서 제 삶이 더 많이 행복했거든요. 더 풍요로웠거든요. 제가 낳은 세 아이도 그 기쁨을 알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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