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Jan 04. 2024

워킹맘과 모성애와 음식

삼 남매가 다 자랐다. 큰딸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고, 둘째인 아들은 공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언니와 아홉 살 차이가 나고, 오빠와 네 살 차이가 나는 막내딸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 다니고 있다.


살아오면서 가끔 아이들과 함께 티브이를 볼 때가 있었다. 드라마 속에 '진한 모성이나, 엄마를 향한 진한 그리움'같은 내용이 나오면 나는 왠지 불편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나는 최선을 다한 교사였고, 많이 부족했지만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 며느리였지, 최선을 다한 엄마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선은 고사하고, 보통의 엄마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에너지가 고갈되어,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공부하라고 했고,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 병원에 입원해 있는 모습을 너무나 자주 보이고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몸이 자주 아프고 지치니,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줄이고 휴식을 자주 취했다.


신학기에 새로운 물건을 사러 다섯 사람이 백화점에 가야 할 그 소중한 시기에, 나는 혼자 침대에 누워있던 장면이 떠오른다. 신학기를 준비하느라 학교는 더 바빴고, 내 몸은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음식에도 정성을 기울이기보다는 최소한의 할 도리만 겨우 하고 살았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은 다른 집의 건강하고 음식 잘하는 엄마들을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말이다.


내가 많이 변했다. 아파 누워있는 시간이 줄었고, 음식에 정성을 기울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어쩌면 하루 종일 '뭘 만들어 먹이지?'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도 같아 스스로 웃음이 나기도 한다. 고3 때 공부를 하듯이, 음식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 공부를 즐겨서 했듯이, 음식을 즐거운 놀이처럼 한다. 그러니 그 좋은 에너지가 음식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음식 맛이 좋을 수밖에.


주말마다 집에 오던 아들은, 집밥을 먹고 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번 신정 연휴에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면서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집에 오지 못한 아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어제는 닭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큰딸을 위해 보양식인 영계백숙을 만들어 주었다. 닭죽에 백숙 국물에 영계 한 마리! 남편도 두 딸도 먹으면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행복 가득이다. 가족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정성스레 만들어서 먹이는 것! 그것 하나면 무엇이든 다 해결되는 게 아닐까? 내가 소장해서 자주 보는 영화 '미 비포 유'에서 여주인공이 말한다. 뭘 잘하냐는 면접 질문(마비가 된 아들을 돌봐주는 사람을 뽑는 엄마)에 자기는 건강하고, 뭐든지 빨리 배우고, 집도 여기서 가깝고, 차도 근사하게 잘 끓인다고 말한다. 잘 끓여 낸 차 한 잔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녀는 합격! 난 그녀의 '차 한 잔' 그 말이 가슴에 와닿았고,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이고, 가족의 사랑이 으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엄마는, 아내는 좀 더 힘을 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아내는 '집안의 해, 안 해'이기 때문이다. 햇살이기 때문이다.


이전 24화 우리 부부가 돈 쓰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