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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an 05. 2024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ㅇㅇㅇ 선생님이 이 세상에 살아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이상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계속 눈물바람이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니, 친정식구들이나 친구들이 우리 집으로 놀러 오는 일은 별로 없었다. 더군다나 한 성격 하시는 분이셨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랬는데도 돌아가신 그 선생님은 우리 집에 오셔서 어머님께 살갑게 말을 걸며, 우리 채 선생 예쁘게 봐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학교에서는 애들도 잘 가르치고 일도 잘하는데, 집에서는 뭘 잘하느냐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어머니께 여쭙기도 했다. 어머님은 우리 며느리는 '비닐을 안 버리고 잘 모은다'고 내 칭찬을 하나 하셨다. 버리는 걸 싫어하시는 분이시니, 어머님을 따라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게 어머님 눈에 가장 이뻐 보이셨나 보다.


오늘은 일을 하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가 계속 생각이 나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채 선생, 어머님 모시고 사는 거 얼마나 힘든지 알아. 이해해. 그런데 말이야, 결혼한 여자들의 스트레스 강도로 보면, 1순위나 2순위는 아닐 거야. 더 힘들게 사는 사람이 많아."


선생님의 그 말씀은 인격장애가 있던 이혼한 남편으로 인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또한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면서 선생님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다른 여자들의 삶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남편 복은 없었지만 형제 복은 많았는데, 선생님의 큰 올케언니가 해준 말을 내게 전해주시기도 했다.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이 뭔지 알아요? 난 나이 오십이 넘으니까 알겠더라고요. 남편이 불쌍해서 자꾸 눈물이 나요. 가족을 책임지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면서 올케언니는 자기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은 '측은지심'이라고 말씀하셨다. 40대의 선생님이 30대의 내게 해주신 말이어서, 난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런데 나도 나이 쉰을 넘어가니, 남편이 짠해서 가끔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막내아들로 맏이 노릇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머니 모시고 산다고,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고통의 크기가 너무 커서 남편의 고통은 보이지 않았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 몇 장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대화가 내 가슴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예순의 짧은 생이 너무나 아쉽고 쓸쓸하지만, 참 고운 분이 나의 인연이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떠나신 선생님께 사랑과 존경을 보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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