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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an 16. 2024

인생 수업

살아가면서 나는 가끔 남을 원망한다. 섭섭하다고, 다 내 맘 같지 않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 육아휴직을 했었다. 3년 동안 두 아이를 키우다 학교로 복귀했다. 학생들을 만나니 약간의 두려움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복직 며칠 후, 여교사들은 모두 과학실로 모이라는 방송이 나왔다.  가서 보니 30대 초반의 똑소리 나게 생긴 여교사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선생님들, 도와주세요  제가 연구부장 소속의 연수와 연구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작년에도 맡았어요 학교 대표로 연구수업을 해야 하는데, 모두들 안 하시겠다고 하셔서 작년에 제가 수업을 했습니다. 저도 어린 두 아이가 있는 사람이고, 준비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올해는 정말 다른 분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난 말없이 교실로 돌아왔고 교실 정리를 마치고 퇴근을 했다. 그녀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계속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 그 교사에게 가서 내가 대표 수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수업을 잘 해낼 자신이 있다기보다는 그녀를 2년 연속으로 고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0월 초에 있을 대표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난 꾸준히 글쓰기 자료를 준비했고(수업 안 이외에 교사연구록을 제출해야 했다) 한 달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업 준비를 했다. 시어머님께 도와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매일 5시가 아닌 8시 정도에 퇴근을 했다.  때마침 우리 반 현정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아 마음까지 무척 아팠다. 현정이를 위해 좀 더 강력한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 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감기 몸살기를 차단하기 위해 매일 약을


갖고 다니며 먹었다. 열심히 준비했고, 에너지가 넘쳤다. 수업에 대한 두려움도 전혀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국어 수업을 열린 학습으로 펼치는 멋진 수업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교육청에 제출한 '글쓰기 연구록'이 논문 같은 책자로 나왔고, 수업 준비 마무리만 남은 시점에서 그만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혈압이 40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러다가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학교 근처의 병원(우리 집과도 가까운)에 3주 동안 입원을 했다. 바닥난 기력이 거의 회복이 되었을 때, 병원 원장님이 병실로 오셔서 서울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 자기가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비장까지 심하게 부어있어서 백혈병이 의심이 된다고 하시면서.


친정엄마와 남편과 함께 의사 소견서를 들고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올라갔다. 그곳 13층 무균실에서 다른 백혈병 환자들과 함께 일주일을 입원해 있었고, 종합 검사 결과 백혈병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 수원으로 내려왔다.


참으로 기가 막힌 시간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복도에서 연수담당 그 교사를 만났다. 너무도 담담하게 내게 안부 인사를 해서 괜찮다고 말하며 그녀를 스쳐가는데,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학교 바로 옆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교사들이 다녀갔지만, 그녀는 한 번도 병문안을 온 적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짐을 대신 들어주었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내가 할 일을 한 거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와 같이 근무하는 동안 그녀가 이쁘게 보일 리 없었다.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퇴직을 하고 살아가면서 난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와 비슷한 일을 겪으면 그녀가 떠올랐다.  모든 건 내 선택이었고, 그 책임 또한 내 몫이라는 걸 알고 난 후였다.


오지랖이 넓은 나는 종종 이런 일을 겪는다. 하지만 모든 게 내 선택이었고, 내가 책임질 일이라는 걸 알기에 원망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인생이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가! 계속 배우고 또 배우며 깨달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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