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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an 15. 2024

화(火)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영성 작가인 '웨인 다이어'의 책에서 '독 사과'라는 표현을 쓴 시가 소개되었다. 꾹 참는 모습을 독 사과 하나를 먹은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나는 책을 읽었던 그 당시에 그 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참는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지만, 살아가는 데에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의 참음이 꽉 눌러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 대상은 약자를 함부로 괴롭히는 강자나,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을 학대(?) 하는 듯한 교사를 볼 때 나타났다. 얌전해 보이는 내가 강함을 보일 때 상대방은 물론 주변에서도 놀라곤 했다. 그래서 산가가 끝나지 않은, 하혈이 멈추지 않아 고통받고 있던 교사에게 나오자마자 엄청난 업무를 맡기려(대외 행사, 하지 않아도 될) 하는 교감 선생님께 직언을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야간 대학원을 다니느라 바쁜 한 부장(나보다 한 살 많은)이 자기 반 아이들을 매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주 자습을 시키고, 자기 자식들에게 매일 저녁 컵라면을 먹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교사답지 않은 진한 향수와 진한 화장, 몇십만 원짜리 청바지를 샀다며 자랑하는 모습 등등, 나는 그녀의 행동이 계속 거슬렸었다. 그러다가 내 업무도 바쁜 상황인데, 글을 잘 쓰는 교사라고 나를 붕 띄운 뒤에 자기 대학원 과제를 부탁하는 일이 생겼다. 이미 쌓아놓았던 그녀의 부정성에 기름이 부어져, 나는 큰 소리로 그녀를 아이 야단치듯이 말했다. 교사면 교사답게 살라고, 당신이 아이들 보는 눈빛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느냐고, 그래도 기본은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녀는 놀라고 당황해서 울었고, 동료 교사들은 말리면서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나에게는 아버지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 특정 전과와 수련장을 수업 중에 자주 보여주라고, 그래야만 학교로 봉투가 온다는 식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직원회의 때 '가난한 시골 학교 교사로 살면서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호통을 치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아버지가 가신 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내 모습을 돌아보니 해야 할 말을 한 것도 같지만, 그 강도가 좀 센 느낌이 있었다. 그건 평소에 화를 자주 참는 습관이 있어 억눌러 놓은 감정이 눈 덩어리처럼 커져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마음공부와 명상에 관심을 갖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꾸준히 정화작업을 해 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야 할 말을 할 때,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너무나 잘 참는 건, 사랑이 아니고 병을 키우는 것이다. 나는 울화병으로 한의원에서 침도 맞고 한약도 지어먹곤 했다. TV에 나오는 한의사들이 자주 말하는 울화병 자가 진단인, 가슴 한가운데 부분의 통증이 나는 매우 극심했을 정도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잘 참는 아이였고, 그걸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 참는 습관이 고된 시집살이와 만나 심한 울화병 환자가 되어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듯이, 부모나 교사가 아이들에게 무조건 참으라고 가르치는 것은 '삶을 힘들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해야 할 때 쌓아두지 말고, 정중한 태도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 계속 쌓아두며 사는 것은 자기의 귀한 삶이 병충해에 좀먹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너무나 오랜 나의 습관을 고치기는 어려웠지만, 나는  '참는 습관'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기 때문에, 내가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은 넘어가고, 내 마음을 계속 괴롭힐 것이라 판단이 되면 정중하게 상대방에게 표현한다. 그게 멀리 보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감사한 것은 꾸준한 명상 효과로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 소중하고 귀한 인생에, 적어도 스스로에게 '울화병 환자'라는 딱지는 떼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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