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영희

by 채수아

영희는 나의 첫 제자다. 내 나이 스물네 살에 만난 열두 살의 소녀! 영희는 눈망울이 참 예뻤고 웃는 모습도 예뻤다. 하지만 영희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표정을 잘 짓곤 했다. 난 아이들의 일기장을 꼼꼼히 읽어보던 교사였기에 지금도 영희의 꽉 찬 일기들이 떠오른다. 공부는 아주 잘했지만, 글씨체는 그리 이쁘지 않았던 영희의 일기장! 거기에는 부모님의 불화와 불편한 영희의 마음이 많이 실려있었다.


조용필 오빠의 모교라는 화성의 '송산초등학교'를 떠나 수원으로 전근을 왔을 때도 영희와 계속 연락을 했고, 영희는 내 결혼식에도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참석을 했다. 그리고 한참 연락이 끊겼다가 첫 발령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난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영희의 직장으로 축하 꽃바구니를 보냈다. 몇 년 후 영희는 사귀던 남자친구를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그때 육아휴직 중이었다. 사위를 맞는 장모 심정이랄까? 난 음식을 만들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영희의 남자 친구는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송산의 포도농장일이 바쁠 때면 내려와서 도와준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영희는 내가 봤던 그 남자와 결혼을 했고 세 아이를 낳았다. 지금도 전문직에서 일하는 워킹맘이다. 가끔 안부를 전하다가 몇 년 전, 첫 제자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 나를 태우러 왔다. 우리는 차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금 나눴고, 그다음 스승의 날에는 내게 점심식사 대접을 한다며 우리 집으로 나를 태우러 왔다. 그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제자에게 내 살아온 아픈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난 영희에게 내 17년의 시집살이와 백혈병동에까지 입원했던 잦은 병원 생활과 분가 후의 어머님의 기적 같은 변화에 대해 담담히 들려주었다. 영희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내 이야기에 이어 영희도 자기의 속 마음을 털어놓았다. 시골에서 장애인이 된 큰 아들을 돌보며 사시는 시어머님과 둘째인 자기 남편의 장남 같은 마음가짐, 자꾸만 열등감에 파묻혀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아주버님의 행동들... 영희는 맏며느리 역할을 해나가며 늘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랬구나, 우리 영희도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올 스승의 날에 영희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만나고 난 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을 떠올리며 힘을 냈어요. 선생님, 저 마음이 굉장히 평화로워졌어요. 잘해나가고 있어요, 저."


전화를 받고 가슴속에서 감사함이 피어 올라왔다. 영희는 앞으로도 산을 만나고 강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널 것이다. 나의 시어머님이 그러셨듯이, 내가 그랬듯이, 우리 영희는 피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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