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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부 28화

가슴이 무너져 내렸던 어제 (2017.4.6)

by 채수아

살아오면서 어제처럼 그렇게 가슴이 아팠던 일이 있었을까... 어제는 내 마음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ㅠ ㅠ 어머님 퇴원 준비로 대청소를 하느라 허리가 많이 아팠고, 몸살이 심하게 났었다. 매일 가던 병원에도 이틀이나 못 갔다. 어머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대청소로 아팠다고 말도 못 하고, 몸살이 좀 나서 못 간다고 전화만 드렸다.


"어머니, 잘 주무셨어요? 흐윽....."


"에미야, 너 어디 아프냐? 왜 그래? 난 잘 잤어. 아프지도 않아. 밥도 잘 먹었어. 근데 너 왜 우냐?"


난 그동안 잘 참았던 눈물이 솟구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저 몸살이 좀 나서 오늘은 못 가요... 어머니... 저는요...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너무 속상해요.... 제가 어머니 많이 사랑해요... 아주 많이 사랑해요... 매일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저는 어머니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큰 아이 결혼하고 그 아이가 난 아기를 꼭 안아보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


어머님이 우는 나를 달래주셨다.


"나도 너 많이 사랑해. 매일 기도하고 있어. 나 오래 살 거야. 우리 손주 군대에서 올 때까지도 살아야지. 그리고 우리 내년 봄에는 대천 내 고향으로 놀러 가자. 걱정하지 말고 울지도 마. 난 괜찮다니께."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시며 '알라뷰'를 외치셨다. 옆에서 듣고 계시던 간병 아주머님도 알라뷰라고 했다고 어머님이 까르르 웃으시며 전하셨다.


난 그동안 어머님께 돈 봉투를 드리면서 봉투에 글로만 사랑한다고 했었지, 이렇게 말로 고백한 건 처음이었다. 어머님이 우리 아이들과 헤어질 때 하시던 "알라뷰"를 내게 외치신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사랑고백을 했던 나는 몸살 약을 먹고 쉬면서도 조금씩 집안 정리를 했었다. 그제 아침의 일이었다.


어제는 어머님께 일찍 갔다. 어머님이 요 며칠 진통 주사를 맞은 날이 없을 정도로 약으로도 충분히 진통이 잘 잡히니 기분도 좋으시고 식사도 잘하시는 편이셨다. 점심을 드시고 나서도 내가 매일 사다 드리는 대추차를 반이나 드셨다 많이 마르셨지만, 얼굴도 고우시고 아기처럼 잘 웃으시는 어머님이 참 예뻐 보였다. 난 기분 좋으신 어머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어머님께 '퇴원'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데, 그 순간 어머님은 잘 못 들으셨고, 간병 아주머님은 내 발을 톡톡 치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어머님이 주무실 때 아주머님 손을 잡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어제 형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아주버님이 남편에게 퇴원을 안 시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카톡을 보냈더라고요. 전 지난 목요일에 저희 집에서 모시겠다고 이미 말씀드렸고, 집안 대청소도 계속하고 있는데요. 의사 선생님도 퇴원은 절대 못한다고 하셨거든요. 우리 두 부부 앞에서요."


아주머님은 혹시라도 들킬까 봐 형님이 보통 내리신다는 엘리베이터에서 먼 곳으로 나를 이끄셨다.


"있잖아요~~ 어제 답답해서 내가 물으니까요~~ 어머니를 최대한 퇴원 안 시킬 예정이니까 그리 알고 계시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어머니께 말도 못 꺼내고 있어요."


하...

기가 막혔다 아주버님이 남편에게 보낸 카톡으로 분노했다가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건만, 일이 정확히 그런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집 현관의 벽지가 찢어져 있어 이번에 그거라도 새로 하려고 도배 기사님과 4~5시 약속이 잡혀 있어서 좀 여유 있게 병실을 나왔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어머님 모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돌아가는 게 뭔가 이상해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의사 선생님이 당황하시며 말씀하셨다.


"지난번 형제 부부가 들어오셔서 제가 말씀드렸지요? 퇴원은 꼭 하셔야 한다고요. 그날 충분히 설명을 드렸고, 큰 아드님께 요즘 어머님 상태도 매우 좋으셔서 퇴원하시기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계속 오셔서 어머님 모실 곳이 없다고 길거리에 내앉게 하실 거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몹시 곤란했습니다. 어머님을 계속 치료할 담당 의사로서 고민 많이 하다가 큰 아드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던 건데, 이렇게 다른 말씀을 하시면 중간에서 저는 어떻게 합니까? 가족회의를 거쳐서 제게 하나를 말씀하셔야지, 이런 경우 저는 정말 괴롭습니다."


"선생님, 가족회의를 했어도 이렇게 거짓말로 전달을 하니...."


난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형님 부부가 병실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늘 오후 세 시가 좀 넘으면 온다는 말을 간병인께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난 그 두 사람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우산을 쓰고 울면서 내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차 안에서 남편에게 상황을 카톡으로 보냈다. 남편이 울지 말고 운전 조심하라고 답을 보냈다. 그리고 일찍 퇴근해서 아주버님을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난 계속 집안 정리했다. 마음이 좀 진정되었으나 그 두 사람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이 병원에서 아주버님을 만나고 돌아와 아주버님 말씀을 전했다. 의사 선생님께 아무리 부탁을 해도 어려울 것 같다고, 제수씨가 모실 준비를 다하셨다니, 아마도 내일 너희 집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고. 내일 일찍 퇴근해서 병원으로 오라고 하셨단다. 아주버님 표정은 좋았는데, 형님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고 남편이 말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마도 의사 선생님이 내가 왔다 간 이후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온 형님 부부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어머님 퇴원을 강력히 주장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하...

뭐가 이리도 복잡할까?

그냥 어머님 마음만 좀 헤아리면 간단한 것을 ㅠ ㅠ


※ 시어머님은 그해 여름 소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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