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불문과에 가고 싶었다. 모의고사에서 불어를 만점 맞던 내가, 불어와 열애에 빠져있던 내가, 불문과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는데도 나는 교대로 진학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불문과에 가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셨다. 아버지는 내가 다섯 살 때부터 당신 뒤를 이어 교사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기회는 한 번 있었다. 고3 때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불러 일반대에 보내자고 설득하셨다. 그때라도 말씀드렸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난 연극배우도 하고 싶었다. 교대생이었으니 대학 4년 동안만이라도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본 연극은 내 심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면 연습을 밤새 할 수도 있다는 선배의 말에, 아버지께 말씀드릴 용기가 없어 난 또 포기했다. 그래서 내 심장을 잠재우기 위해 매주 연극을 보았다. 교사가 되기 전까지.
대학 4학년 때부터 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결혼하기 2주 전까지. 난 새벽 미사를 자주 다닐 정도로 열심이었고, 자연스럽게 신부님과 수녀님들과 신학생들과 친해졌다. 내 가슴 안에 또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수녀로서의 삶!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길로 내게 다가왔다. 원장 수녀님도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나를 조용히 불러 물어보셨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도 아닌 부모님께 말씀드릴 엄두가 나지 않아 그 길도 포기했다. 난 그 이후 지금의 내 남편을 만나 아내가 되었고, 며느리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수녀님을 닮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방긋 웃었던 기억.
내가 가보지 못한 세 가지의 길! 그 길을 갔다면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테고, 다른 인연들을 만나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교사 생활과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이 길과 새로운 나의 일들이 무척이나 감사하고 좋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