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살았던, 또는 교사로 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인정하겠지만, 교사의 하루를 지치게 하는 존재는 많은 수의 학생이 아니라 한두 명의 말썽꾸러기들이다. 나도 늘 그 한두 명으로 인해 마음이 올라와서 도를 닦느라 힘들었다. 어느 해 3월에도 한 남학생이 반 아이들을 자주 때리고 괴롭히고 있어 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상담을 요청했다. 다음날 아이들이 가고 난 시간, 교실로 들어온 아이의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나는 당황하며 휴지를 건넸다.
"선생님,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어요.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아팠어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저희 부부나 시부모님은 견디기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고비를 잘 넘기고 퇴원을 했어요. 그 충격으로 시부모님과 저희 부부는 아이를 과잉보호하며 키웠습니다. 그 누구도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어요. 유치원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아이가 정말 잘못 자랐다는 것을요. 선생님들도 포기했고 저희도 포기했습니다. 당하는 아이들에게나 학부모들에게 늘 죄인으로 살고 있어요."
나는 잘 알았다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하며 그 엄마를 돌려보냈다. 무슨 방법이 좋을지 떠오르는 것도 없으면서 난 그 말을 하고 말았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야단을 절대 못 치게 하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서, 약간의 이해를 할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를 보았다. 사경을 헤매던 아이를 지켜보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눈물이 함께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밉게만 보이던 아이가 덜 밉게 느껴진다는 걸 알았다. 돌아보면 내가 그 아이를 지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한 것은 없었다. 그냥 조금 더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감사하게도 아이의 폭력은 조금씩 줄어들더니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는 나를 보고 많이 웃었고,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아이로 바뀌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아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 큰딸이 서너 살 정도였고, 그 아이가 초등 3학년생이었으니 지금 나이가 40대 초반이 되었겠다.
"00야~ 어디에서건 잘 지내고 있기를, 선생님에게 웃어주었듯이 많이 웃으며 살고 있기를 빈다. 선생님이 너 많이 좋아했던 거, 너 그때 알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