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Apr 27. 2024

혜경이와 은경이

그날은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혜경이와 은경이가 학교를 며칠 빠진 날이라, 아이 둘과 함께 여기저기 두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주변 아이들의 소식통으로 집히는 곳이 있어서 물어물어 그 장소에 도착했더니, 거기에는 다른 학교 아이들도 몇 명 더 있었다. 학교에 안 가고 백화점이나 그 주변을 서성이던 아이들....


혜경이는 우리 반 아이였고, 은경이는 혜경이의 언니였다. 엄마는 재혼을 해서 서울로 갔지만, 새아빠가 두 아이를 거부해 두 아이는 수원의 삼촌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것도 학구도 아닌, 버스로 20분 정도를 가야 하는 동네에 말이다.


​아이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긴 한숨부터 나왔다. 몰래 한숨을 몰아쉬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다른 학교의 한 남자아이는 6학년 나이인데 5학년 겨울까지만 학교를 다녀서 자기가 6학년 몇 반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일단 아이들에게 짜장면을 먹였다. 중간에 탕수육까지 시켰다. 어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다음날에는 각자 학교에 꼭 등교하라고 당부를 한 후에 가장 먼 동네에 사는 한 남자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그 아이가 사는 곳은 수원역 근처의 쪽방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집 중에서 가장 작은 집이! 세 명이 겨우 누워 잘 수 있는 작은방과 그 반만 한 부엌이 집 전체였다. 머리가 백발인 노 할머니께서 아이를 반기셨고, 중학교 1학년인 형은 연필을 깎고 있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생활비를 가져다준다고 할머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사가지고 간 딸기를 할머님께 드리고 이야기를 잠시 나눈 뒤 집으로 돌아왔다.


​혜경이와 은경이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다고 느끼셨는지, 모시고 살던 시어머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여!"


나는 처음에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님은 내가 두 아이를 입양이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신 거였다. 내가 시누님에게 조카딸의 옷을 가져다 입히고, 두 아이를 계속 챙기는 것을 보시면서. 사실 난 그럴만한 자격이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첫아이 난산 이후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도 둘째 아이 낳을 생각조차도 못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두 아이는 학교에서도 내 딸들처럼 내 곁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공부가 끝나면 자매가 우리 교실에서 놀다가, 내가 퇴근할 때 같이 따라 나올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직원회의가 있어 아이들을 두고 교무실을 다녀왔는데, 옆 반 선생님이 걱정하는 소리를 하셨다. 아이들이 있는데 가방을 두고 오면 어쩌냐고, 아이들이 지갑에 손을 대면 어쩌냐고. 난 그냥 웃고 말았다. 난 그 아이들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내 지갑에 손을 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두 아이의 새아빠가 두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고, 두 아이는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동생인 혜경이가 우리 시누님 딸과 동갑이니, 지금은 40대 초반의 아이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들 한다. 아픈 자식도 있을 수 있듯이 아픈 제자도 있다. 함께하는 동안, 내  마음이 특히 많이 아팠던 아이들! 그래서 문득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제자들!


'잘 살고 있어야 할 텐데, 제발....  나는 잊어도 괜찮아. 그저 어디에서건 꼭 행복하렴.'

이전 13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