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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곰 Jun 17. 2023

[순간의, 스위스] 프롤로그


[2023. 5. 17.] 



혼자하는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해보려 길고 긴 13시간의 비행 여정을 쏟아보았지만 아무런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답은, 그래서 그저 고통을 견뎌보는 일이라고 뱉어버리고 치우려다가, 취리히의 호텔에 도착해 캐리어를 여는 순간, 으악! 하는 한마디와 함께 나는 힘겹게 답을 얻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눈물을 흘린 듯 곳곳이 젖어버린 내 캐리어 안의 몰골과 억지로 직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은 인생에 명존쎄를 당해봐야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범인은 바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일회용 세제. 설거지도 하고 밥도 해먹으며 돈을 좀 아껴보겠다던 하찮은-혹은 나 ‘같잖은’- 다짐 덕에 결국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라니. 하- 하고 한숨 쉬며 주저앉으려는 순간, 나는 어쩐지 나답잖게 맘을 고쳐먹는다. 결국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슬퍼할 만 한 일도 아닌 일에 시간을 지체해봐야 더 큰 감정의 오물들과 함께 이 사태를 치워내는 것도 결국 미래의 나일 것이다. 그리고, 결국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그리하여 일본부터 꾸역꾸역 싸온 휴족시간과 양말, 각종 티슈 등을 모두 버린 후 나는 최대한 숨죽여 살려낼 수 있는 물건들을 살리려 새벽 내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내게 남은 것들을 둘러봤을 때, 생각보다 최악은 아님에 외려 다행이란 맘마저 들었다. 적어도 친구를 위해 준비해온 선물들은 망가지지 않았으므로. 아니, 이 작은 세제 따위가 내 삶의 우선순위에는 침범하지 못했으므로



그리하여 혼자하는 여행은, 결국 내 손으로 덤덤히 이뤄나갈 내 생을, 연민하지 않고 마주보며 나아가는 자세를 기르는 일이 아닐까. 오늘도, 내일도, 어떤 날에도 결국 내 스스로의 삶을 따르는 일. 늘 나를 돕던 사람과 환경에서 벗어나 온전히 다시 내가 되어보는 일. 그리하여 결국 내게 안온한 휴식처로 돌아갔을 때, 그 작은 순간순간 안에서 행복해낼 수 있는 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스위스 여행이 시작됐다. 부디 이 길 끝에서 뿌리깊은 산처럼 담담한 내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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