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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곰 Jun 17. 2023

[순간의, 스위스 #4] 핀란드에서 온 그녀



[드디어! 친구와의 만남!]



지하철 역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오랜만에 나는 많이 설렜다. 갑자기 스위스에 가게 되었을 때만 해도 당연히 오지 못할 줄 알았던 보영이가 스위스에 온다니! 얼마나 자신의 많은 것들을 희생해 여기까지 왔을지 잘 알기에, 그 한발 한발을 당연함 대신 고마움으로 가득 채워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보영이와 만나 기차역을 걷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빳빳하게 펴지는 기분이었달까. 든든한 내 지원군이 옆에 있다니 나는 세상 부러울게 없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항상 내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매번 내 편을 들어주기 보다 바로 그 순간 내게 필요한 판단을 정확하게 해주는 사람. 내게 가장 쓴 소리를 많이 해주는 친구지만, 한 번도 그 말의 진심을 의심해 본 적도, 그 말 하나하나에 상처를 받아본 적도 없는 고마운 친구. 살면서 이런 친구를 하나쯤 만났으니 내 인생이 복받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보영이는 항상 내게 ‘정도’를 보여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그런 보영이와 알프스를 거닐 수 있다니! 애인과 함께하지 못해 떠나는 그날까지 못내 서운했던 그 맘도, 보영

이와 함께 그린델발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훌훌 날려버리고, 우리는 그린델발드까지 도착했다. 뭘 하지 않아도, 서로의 시간과 삶을 존중하며 공존하는 우리. 보영이 앞에서는 내 생각도 말도 무장해제 되어 늘 가장 밑바닥의 내 언어들을 꺼내놓는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도, 맥주를 한 잔 하면서도, 우리는 결국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헤집어 다시 정리해본다. 서로 잘 알고 있던 서로에게 맞는 그 정답을.



내 인생에서 좋은 친구들이 늘 곁에 있다는 건 얼마나 축북된 일일까. 항상 마음을 써주고 또 아껴주고 지켜주는 좋은 친구들. 보영이가 10년동안 회사에서 고생한 선물이라고 트로피를 주는데 그 자리에선 울지 않으려고 애써 웃긴 표정을 지어 익살을 떨었지만, 너무나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내가 흘려온 땀과 눈물의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녀 덕분에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숨을 참으며 견뎌냈던 10년의 시간이 모두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잘 해낼 줄 알았어, 넌 가치 있는 사람이야, 라고 마라톤 반환점에서 박수를 쳐주는 코치와 만난 듯 말이다.



우리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확언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40대에도, 50대에도 우리가 여전히 우리답게 서로 앞에 마주 할 수 있는 좋은 친구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더 좋은 관계란 결국 더 좋은 나 위에 쌓아올려야 하는 것임을, 그리고 서로를 향한 끊임 없는 애정과 노력이 필요한 것임을, 이제 잘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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